노계 (老鷄)
생글생글 병아리가 신나게 뛰어다닌다. 넘어지기도 하고 쪼아 먹기도 하고 아주 신났다. 이리 까지고 저리 깨지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놀고 먹는 게 전부인 것처럼 쏘다니더니 이성을 만나 사뭇 다른 감정에 빠진다. 친구가 연인이 되는 건 시간이 걸릴 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 넷이 되는 건 마치 정해진 순서인 양.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알들이 팔려나갔다.
눈을 비빈다. 눈꼽이 만져지니 더욱 세차게 비빈다. 노계는 쓸모없이 늙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는 말에 비유되기도 한다. 병아리는 노계가 된 것이 팔려나간 알 보다 반드시 낫다고 할 수는 없다해도 경험치나 들인 시간으로 본다면 그나마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지개를 한 껏 켜고 몸을 움직이면서 찰라 스쳐지나간 시간을 음미한다. 노계는 쓸모없기만 한 것일까? 일면, 나이들어가면 어김없이 도달할 건데, 영광스럽진 못하다고해도 분명 쓸모는 있을텐데. 그래서 오늘 뭘 하지? 생각한다.
노계는 팔릴 때조차 찬밥이다.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으니 한가득 찬 철장 신세에 고개를 떨군 채 죽음을 받아들인다. 체념한다. 다시 건강을 되찾는다면 과연 다를까 마는 늙어버린 몸 만큼이나 노쇄한 정신은 이미 요단강을 건넌 듯이 바라보기만 한다. 철장을 벗어나려고도, 뛰어나가려고도, 그 어떤 움직임조차 갇힌 공간에 만족해한다.
아마도 병아리 때 신났고 연인과 함께 했고 수많은 경험들이 이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만약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서 불만이 되었고 몸이 건강하다면 어떠할까? 만약 경험에 불만이 크고 몸조차 허약하다면 어떨까? 아니, 경험이든 건강이든 그 어느 것도 마음 먹기에 따라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떠할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는 건 동일하다. 다만 바라본 시야와 생각이 다를 뿐.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노계여,
행과 복이 있어 나눌 수 있다면 무얼 선택하겠는가? 복되고 복되다. 병아리는 노계가 되고 알은 다시 병아리가 되니 이어짐에 대해 조금은 진지해보면 어떨까? 가진 것 없이 눈을 감는 것이 남겨진 전부라고 하면, 눈 감고 숨 쉬는 몸에 갇혀 자유로워진 영혼이 갈 곳을 갈구하자.
이어짐이 그렇게 야속함에도 영혼이 흘러가는 건 또다른 이어짐이니 지향하는 바 그대로 이루어질테니 무얼 바라든 바라지 않든 다시 이어질 마음만 있다면 현생이 부럽지 아니할 것이고 마음조차 비운 상태라면 어딘들 어떠하랴.
육신의 이어짐이 영혼의 발돋음이 되니 경험하면서 체득한 걸 발판으로 나아가자.
노계여,
병아리 적 생각 말고, 지리하고 고고한 걸 바라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지 말아. 이승이 저승이 되고 저승이 이승이 되는, 아니 그럴 수 없으니 체념조차 노계의 선택이니 존중받아 마땅하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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