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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카페에서

by 아리빛 하나 2026. 3. 7.

(아들) 해외여행을 한번 가야 할 것 같다. 스스로에게 주는 여행. 각오를 다지거나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게 아니라, 텅 빈 상태로 떠나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게 아니지.

오히려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의심하고, 질문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살 거야, 어차피 인생이란 이런 거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해. 다만 직업이라는 코드를 아직 제대로 꽂지 못한 탓에 막연한 부담이 남아 있다고 봐.

(나는) 주어진 길을 걸어왔다. 결혼을 앞두고 직업이 필요했고,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어. 어떤 일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내가 짠 기획이 실행되는 순간의 기쁨이 있었다. 주어진 것들 사이에서 발견한 순수한 재미였지.

초창기에는 시키면 하는 맹목적인 면이 강했다. 그게 내 성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국민권익위 공무원의 죽음을 보며 생각했다. 꽤 괴로웠다면, 그 자리를 그렇게 지켜야 했을까. 죽음보다 퇴사가 낫지 않을까. 감정이 한순간에 매몰되기 전에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저렇게까지 애써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어떤 가치인가. 그렇다고 길고 길게 맞춰가며 사는 것이 무슨 가치인가. 생명의 연장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지금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살 수 있다.

몸은 꾸준히 단련하고 있다. 루틴하게 가면서 단련되는 느낌이 있다. 건강에 신경 쓰면서 뭔가를 하는 것, 이게 튼튼하게 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긍정적인 생각, 불안을 잘 정리하고 체념보다는 호기심 쪽으로 여는 것. 수용보다 적극적으로 물음표를 찍는 태도. 세상 다 받아들이고 체념하다 보면 가만히 있게 되고, 관계도 멀어지고, 점점 어려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아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몰랐을 때처럼. 세상의 변화에 어머 저게 왜 저래? 하며 발랄하게 반응하는 것. 그게 제2막을 여는 기분이 아닐까.

지금 내게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 터전이 있고, 선택할 수 있지. 나이 때문에, 몸 때문에 스스로를 제한하지만 않으면 된다. 70이든 90이든, 그건 문제가 아니다. 김성호.







텅 비어야 보이는 것들

텅 빈 상태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각오를 다지거나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컨셉도 목적도 없이 그냥 떠나는 것.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순간 여행은 이미 자유롭지 않다. 어쩌면 삶 전체가 그렇다. 목적을 품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씩 부자유해진다.

확신이 부족해서 질문하는 게 아니다.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의심하고 글을 쓴다. 이렇게 살 거야, 어차피 인생이란 이런 거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으면 된다. 다만 아직 꽂지 못한 코드 하나가 남아 있어서, 그 주변을 맴도는 막연함이 있을 뿐이다.

돌아보면 많은 것이 선택이 아니었다. 결혼을 앞두고 직업이 필요했고, 제시된 길 중 하나를 골랐다. 어떤 일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구상한 것이 실행되는 순간의 기쁨이 있었다. 주어진 것들 안에서 발견한 순수한 재미. 선택지가 좁았다고 해서 그 안의 의미까지 좁은 것은 아니었다.

죽음보다 떠남이 낫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직위와 책임과 체면이 뒤엉켜, 자리를 떠나는 것이 더 큰 죽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 그토록 괴로웠다면 그 자리를 그렇게 지켜야 했을까. 감정이 한순간에 매몰되기 전에,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저렇게까지 애써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어떤 가치인가. 그렇다고 길고 길게 맞춰가며 흘러가는 삶이 무슨 가치인가. 생명의 연장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더 선명해진다.

체념하지 않으려 한다. 다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다 보면 관계가 멀어지고 세상이 좁아진다. 수용보다 물음표가 필요하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태도. 그게 나이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방식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몰랐을 때처럼. 세상의 변화에 어머 저게 왜 저래? 하며 눈을 반짝이는 것. 그게 쇠락이 아니라 제2막의 시작이라면, 늙는다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카페 창가에 마주 앉아 당신에게 말한다.

살면서 많은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다. 주어진 조건, 주어진 시간, 주어진 역할들. 그 안에서 버텨왔고, 때로는 그 안에서 뜻밖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했다. 당신도 알 것이다. 우리가 함께 버텨온 것들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이것이다.
텅 비어 있어도 괜찮다고. 지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터전이 있고 선택이 있다고.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으면 70이든 90이든 그건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텅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저마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
커피잔을 감싸쥔 당신의 손을 바라본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지나온 것들, 주어진 것들 안에서 찾아낸 것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을 살아낸 것들. 그걸 함께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사람과 함께 텅 빈 채로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김성호 w/ S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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