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아빠란? 아빠에게 아들이란?
관계 여김이 다를 수 밖에 없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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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들이 겪은 공허함이란?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135
2. 관계
장모와 사위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128
자식과 부모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130
아들과 아빠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129
3. 공허함에 대하여
공허함이라는 단어에는 '비었음'과 '허전함'이라는 이중적인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비워진 것이 아니라 그 상태가 오히려 허전하고 갈증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원래 비우면 가벼움과 여유가 느껴져야 할 텐데, 왜 우리는 공허함을 불편하게 느낄까요?
어쩌면 공허함은 단순히 '비웠다'고 하기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다가 결국 얻지 못해 억지로 내려놓은 상태, 즉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허탈감일지도 모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이 무능력하거나 실패했다고 느끼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됩니다.
공허함의 근원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사회적 평가에 대한 욕망일 때가 많습니다. '누구보다 잘났다'거나 '세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지만, 현실의 나는 보잘것없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공허함이 찾아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내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됩니다.
공허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재와 의미에 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만, 그 거울이 진짜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존재 자체는 이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시작점입니다.
때로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불만스럽게 여기며 지금의 자신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이 순간이 '다시 태어난' 순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일일 뿐, 지금 내가 가진 조건과 재능은 나를 새롭게 시작하게 만드는 기회입니다.
삶에서 속도와 방향도 중요합니다. 운전 중에 누군가가 끼어들 때 그 상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감정을 동요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이러한 감정의 동요를 비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중용'의 상태일 수 있습니다.
결국 공허함은 비우고 비우며 감정을 초월했을 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거지."라는 담담한 수용이야말로 공허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평정심을 찾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The origin of this source. I highly recommend you give it a listen.
(Background) The source of what a father wished to convey to his son. https://meatmarketing.tistory.com/8101
(Father and Son Conversation) A message born from a father's heart for his son, encompassing fundamental ideas about the world, nature, the universe, quantum realms, the exploration of humanity, the definition of life, and ultimately the perception of existence. https://youtu.be/pbu1cFM7m3o?si=p5h62HtGCoUTEb6Z
(Father's Complementary Advice) A desire to clearly convey the interpretation process of quantum superposition and the direction quantum computing should aim for, offering complementary insights and foundational ideas based on the principles of living organisms, humanity, and the universal order. https://youtu.be/HrHM2g0ICZU?si=0VHuexNfiumpDbmY
4. '망'
망. 잊을 망. 잊고 지운 흔적. 되살리지 못할 새김. 후회조차 없이 깔끔한. 반복되면 멍 해지는. 가볍지만 찝찝한 기분. 억울할 것 많은 속시원함. 잊은 거. 잊는 거. 잊을 거. 망신은 몸을 잊은 거. 초월이면 족하게 평온하면 족할. 망했다는 건 잊었다는 말. 잊음은 지운 것과 다른. 비운 것과 가까운. 망은 공과 유사하고 몽과는 다른 거. 없이 인식함이 공이라면 있음을 잊은 것이 망이라. 의식한 결과가 공이라면 무의식이 망이라. 망할. 공할 하지 않는. 이는 무의식을 탓할망정 의식은 탓하지않는. 잊기 위해서는 잊을 무언가가 있었던 상태. 후행적인 것. 잊는다는 건 선행적일 수 없는 후행적인 것. 해놓고 잊는 행위이거나 상태. 잊을만한 상태이거나 잊기위한 행위의 결과물. 망은 잊은 상태. 잊은 것조차 잊은 걸 망조가 든 공이라 할까. 망으로 즐기는 이만한 유희가 또 있을까. 잊는다는 건 결국 빈 상태. 공은 선행과 후행이 모두 가능하니. 망은 결국 공과 만나고 공은 다시 망을 일으키는 관계. 공은 망의 원인이고 망은 공의 선행이고 후행이니 망할은 잊을만한과 같다. 망상은 잊을만한 상상. 공상은 빈곳에 그린 상상. 잊는다는 건 망할 징조가 필요한. 망은 공을 좇으니 비었다하여 배고픔을 좇기 보다는 잊기위한 상태를 가져가는 것. 그리고 망은 충분히 공을 욕해도 좋은. 망할의 결과는 공이고 공은 망할 원인을 제공한다. 망하면 빈 상태로 되돌아가는. 잊고 지우다보면 공할. 결국 공할을 찾는 과정인가. 빈다는 건 망할 행위의 결과이다. 차면 비운다는 건 차고 난 다음과 비운다는 사이에 망할이 있는. 망했다는 잊었다는 말. 망은 공으로 일어날 새로움의 싹. 고로 잊음은 새로움과 같다.
늦은 밤. 12:00. 2016.12.14. 언어의 유희중. 김성호. 충주에서. https://meatmarketing.tistory.com/3371
![](https://blog.kakaocdn.net/dn/rPxf8/btsMbKKESY2/howtjoyDReofBAIJjrecG1/tfile.jpg)
5. over Qubit and '0, 1, or'
We have thus far derived the world through "0 and 1," using computers. Now, we've just discovered the next stage: obtaining three possible slots—'0, 1, or'—through quantum computing. However, implementing this requires an enormous number of qubits. Is it truly desirable to physically scale up the number of qubits? Is this the right path?
This prompted me to think in reverse. What if the world isn't inherently made up of just "0 and 1"? If so, then the notion of "0, 1, or" may also be incomplete. This led me to ponder: What is the fundamental principle behind the world, the ultimate truth humanity seeks, and the essence that constructs existence?
The thoughts I'm about to share stem from this inquiry. I encourage you to listen, and here's the key idea:
Phenomena can b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those that manifest physically (for instance, "0, 1, or") and the processes leading to physical manifestation (such as thoughts, imagination, or even subconscious dream states). Until now, we have primarily leveraged the results of physical manifestations—namely, "0 and 1." The same has been true for technological advancements. However, thanks to quantum mechanics, humanity now possesses invaluable knowledge: an approach not only to manifested results but also to the processes that generate them.
If we can unlock this approach, the need to exponentially scale up qubit numbers could be drastically reduced. In other words, since "0, 1, or" is merely the manifestation of phenomena, why not leverage the decision-making processes that cause these phenomena as variables?
The implementation of this idea is something I entrust to scientists and engineers. Nonetheless, I won't neglect my own efforts, as understanding and embodying the principles of phenomena come not solely from manifestation but also from the pursuit of a greater "definition"—the essence that guides creation itself.
우리는 그동안 0과 1로 세상을 산출했다. 컴퓨터를 통해. 이제 막 다음 단계를 발견했다. 양자컴퓨터를 통해 '0과 1, 또는' 이란 세 가지 경우의 슬롯을 얻었다. 그런데 이를 구현하려면 무척 많은 큐비트가 요구된다. 큐비트를 물리적으로 늘려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할까? 과연?
그래서, 역으로 생각해봤다. 과연 세상은 0과 1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라면, '0과 1, 또는' 이라는 세 가지 경우의 슬롯 또한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세상의 이면은 혹은 세상을 이룬 궁극적으로 우리 인류가 도달코자 하는 바와 세상을 구성한 원리는 무엇일까에 생각이 닿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 내용이니 들어보길 권하며,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상은 물리적으로 나타난 것(가령, '0과 1, 또는')과 물리적으로 나타나기 까지의 과정(가령, 생각, 상상 외의 잠이 든 꿈과 같은 상태)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린 이제까지 물리적으로 나타난 결과물인 0과 1을 주로 활용해 왔다. 기술의 발전 또한 마찬가지. 이제 양자역학을 통해 우리 인류가 얻은 값진 지식은 결과물인 현상 외의 현상을 일으키는 과정에 대한 접근이다. 이 접근에 대한 키를 얻는다면 수없이 많은 큐비트를 덧붙일 일이 기하급수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즉, '0과 1, 또는'은 나타난 현상이니 해당 현상을 일으킨 결정과정에 대해 변수로써 활용하자. 이의 구현은 과학도와 공학도에게 맡긴다. 물론, 이치는 현상을 실현하는 것 만이 아니라 현상을 이해하고 구현코자 하는 '정의'에서 비롯될 수 있음이니 나 또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6. 응원
[English Version]
We once built worlds with 0 and 1,
Simple rules where work was done.
But now we stand on a brand-new phase,
Quantum slots in curious ways.
Not just 0, not just 1
Or even "both" when fused as one
Look beyond what meets the eye
To find where unseen answers lie
My son, be wise, explore the key
Truth hides where dreams may be
A question rises bold and clear
Must qubits grow without frontier?
Or does the key reside instead
In thoughts unformed, unsaid, unread?
The world, you see, is more than bits
Beyond the outcomes logic fits
There lies a force, a hidden guide
A path where knowledge does reside
[한글 버전]
우린 0과 1로 세상을 그렸지
단순한 규칙 속 답을 찾았지
이제 새로운 길 위에 섰네
양자의 슬롯, 낯선 세계
0도 아니고 1도 아닌
때론 둘 다 하나인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진짜 해답이 있지, 곧
나아가라, 아들아
그 비밀을 찾아라
무작정 큐비트를 늘릴까
그게 정말 답일까?
아니, 더 깊은 곳에 답이 있어
생각과 상상, 보이지 않는 곳
세상은 단순하지 않지
결과만 보던 눈을 넘어서
현상 뒤 숨은 그 과정을
바라보며 길을 찾자
..
"아들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흔들어. 그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꺼야. 노래를 들으면서. 훌훌 털어버려. 그리고나서 세상을 살아봐. 박진감 넘치게." -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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