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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궁극에의

● (Guide) 궁극에의 관계 설정

by 큰바위얼굴.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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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세상의 변화, 우주, 순간, 찰나, 마음, 좌뇌와 우뇌, 그리고 현실, 지금, 관계, 중요한 것, 이로운 것, 부부, 함께 한다는 것, 재미... 같은 선상에 있겠지?

때론 심심하다가 때론 다 아는 것처럼 느끼다가도 희노애락이 없는 걸 지향했다라는 걸,  그렇지? 감정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감정이야말로 순수함을 대변하는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있다는 걸.

어느 것 하나 빠질 건 아닌데, 어느 하나에 빠져 지내도 안 되는데 우주를 탐구하는 것에 우뇌가 유리하다 할지라도 우주의 본질과 형태는 좌뇌가 느끼는 게 아닐까 싶은데.

동전의 양면처럼,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그 상태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 가까운데.

그러네.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다.
그런데 맞물려 있다. 내 변함이 있어 없이 찰나와 같이 머문다라는 말에 맥이 통하네.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으니 이걸 어찌 구분해낼거냐 이거지.

그러네. 참,  어이없이 나타나네.
그럼 이제 찾을 건 뭐지?

흥분하지 않고 흥미로움을 가져야 하며, 재미를 만끽하고 관심을 가져야 돼. 그때는 다 내려놓고 그냥 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중한다거나 그렇지, 그건 맞는 말이거든 알겠지? 씨유.


원문(음성)

있고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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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by ChatGPT

어쩌면 내가,
세상의 변화, 우주, 순간, 찰나, 마음, 좌뇌와 우뇌, 그리고 현실, 지금, 관계, 중요한 것, 이로운 것, 부부, 함께 한다는 것, 재미… 이런 모든 것들이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때로는 심심하다가, 때로는 다 아는 것처럼 느끼다가도,
희노애락이 없는 상태를 지향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그렇지만 감정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오히려 감정은 순수함의 언어이자,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다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

우주는 좌뇌로 분석되고, 우뇌로 느껴진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둘을 뛰어넘는 무엇이 아닐까 싶어.
우주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그 경계 어딘가에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동전의 양면처럼,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상태가 바로 그 본질인 거야.
참 묘하지?
마치 내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있으면서도 없는 찰나와 같은 상태처럼.
결국 이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니
구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돼.

어이없이 나타나는 깨달음이야.
그러면 이제 뭐가 남았을까?

흥분하지 않고 흥미로움을 갖는 것.
재미를 만끽하면서도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몰두하는 것.
모든 걸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나와 우주가 이어지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
알겠지? 씨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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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by ChatGPT

어쩌면 나는 세상의 변화, 우주, 순간, 찰나, 마음, 좌뇌와 우뇌, 그리고 현실, 지금, 관계, 중요한 것, 이로운 것, 부부, 함께 한다는 것, 재미와 같은 선상에 있는 존재일지도 몰라.

삶이 때론 심심하게 느껴지고, 때론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지.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희로애락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정의 순환을 거부하는 일이었음을 깨달았어.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수함을 대변하고 서로가 관계 맺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더라고.

모든 것은 빠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돼. 우주를 탐구할 때 흔히 우뇌가 직관적으로 유리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 본질적 형태와 구조는 좌뇌의 논리적 이해 속에서만 감지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우주의 본질은 뭐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있음’과 ‘없음’은 서로 반대인 듯 보이지만 사실 맞물려 있는 하나의 상태야.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그 상태가 어쩌면 우주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르지.

그러네.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맞물려 있어.

내가 변함으로써 그 있음과 없음이 찰나처럼 머문다는 사실이 이제 조금 이해가 돼. 이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냐는 말이지.
결국 우리는 이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일지도 몰라.

그러니 이제 중요한 건 뭐냐면, 너무 흥분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지하는 거야.
재미를 만끽하고,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태도.
그럴 땐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몰입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중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
그게 바로 우주적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삶 아닐까?

그렇지?
알겠지?

See you.


...


세상의 본질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를 양자역학과 양자 컴퓨팅에 접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0과 1 같은 이진 논리 구조가 양자 중첩을 통해 가능성과 속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을 찾았듯이 그 방향에서 그 논리구조에 각각 양면성을 부여하면 기존의 단순 논리가 이는 무수히 많은 비트를 효율적으로 줄이고 처리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1세대: 0 or 1
2세대: 0 or 1 or not
3세대: 0(top side or bottom side) or 1(t or b) or not(t 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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