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양/어떻게살것인가

지금 하고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by 큰바위얼굴. 2024. 2. 21.

 
우리는 비교를 즐긴다. 너와 나, 또한 우리 자체를 놓고 다른 나라나 민족, 심지어 있을 수 있는 우주와 비교할 날도 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지구 탈출을 계획하고 있으니 수많은 별 들, 은하 중에서 살만한 터전을 찾아야 하거나 태양계 자체를 이동시켜야 할 수도 있다. 이만큼 비교는 강력한 동기 부여의 수단이다.


비교하는 순간, 기분이 좋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기분이라도 안 좋아질라치면 온종일 침울하다. 더구나, 닿을 듯 말듯한 내 노력 여부에 따라 정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마저 든다면 며칠 내내 침울해지기 일쑤다. 그 중 단연코 최고의 테마는 승진이다. 마치 직장이 최고인 양, 삶의 지향인 양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메 승진은 단연코 비교 대상의 최고봉이다. 입사 동기나 동문 동기와 비교해서 어느 지위에 있다면 뿌듯하게 여긴다. 그렇지 못하다면 고개 숙이거나 동문회에 불참한다. 이처럼 승진이 아닌 비교는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쓰인다. 


비교하는 순간,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살펴보자. 좋은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가깝게는 배우자에게, 가족에게, 나아가 친구에게, 직장 동문에게 전하는 순간, 상대의 위치에 있는 나도 모르는 많은 비교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게 전해진다. 결국 되돌아 와서 무리지은 끼리끼리 기분 좋고나쁨에 따라 어울림이 달라진다. 더구나, 한 순간에 그칠 좋은 기분 때문에 책임감 보다는 루틴한 일처리에 실망할 수많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교 하고 비교 당하는 여김은 어김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든다. 비교로 인한 우월주의와 성과주의는 그래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환경을 조성한다. 마치 성과지향을 위해 비교를 하게 되고 비교를 강요한데 따라 거꾸로 불협화음과 시기질투, 더욱 인정치 못한 인사라도 나타나면 불만불평은 극에 달하게 되고 인정받지 못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더욱 증가하는 악순환마저 일으킨다. 그래서 단언컨데 비교 자체는 설득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긴 하나, 인생에 있어 비교하거나 비교 당하는 걸 좋아할 이는 하나도 없다고. 이렇게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다. 비교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내 자신감조차, 살아가는 방향조차, 내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활을, 나아가 임시직장으로 인해 평생인생이 흐트러지기 일쑤다.



갑작스럽게 커피 쿠폰을 받았다. 뜻밖의 선물에 의문이 들어 연락했더니 심란함을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그래서 전해준 말의 전말이 바로 비교 하거나 비교 당하지 않을, 자유로운 본인의 삶 자체에 초점을 두라고 조언을 했다.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에 속해 있기 때문에 솔직히 쉽지 않다. 비교 하는 걸 자연스럽게 대하고 받고, 의견의 대부분이 비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울리면 어울릴 수록 비교하는 삶이 녹아든다. 너를 위해서 라는 설탕처럼 달콤한 조언이 지향하는 삶을 흐트러놓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것만 해도, 가족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금이 좋다는 걸 잊은 듯해서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건강 만땅, 행복 만땅인 상황이니 만큼 욕심이 앞선다. 건강 만땅, 행복 만땅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해온 시간들이 밀려나고 건강과 행복을 다시 실험대에 올려놓기 위해 저울질 한다. 물론, 환경을 바꿔 변화를 통해 그 상황 속에서 값진 경험과 서로에 대한 감정을 보다 더 잘 소통할 수도 있다. 다만, 당사자들이 모두 이를 인지했을 경우. 그래서 마지막으로 전한 것이 남편과 아이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라고 조언했다.


비교하지 말고, 보람을 찾는다면 Ok!


승진이 단지 비교우위라거나 뒤처진 피해복구라거나 하는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면 분명 바뀐 환경에서 '견뎌야' 하기 때문에 내내 힘들 것이라고. 견디는 삶은 본인 뿐만아니라 가깝게는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가족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되고 까딱하다가는 본질을 잃어버릴 상황마저 닥칠 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굳이 견디는 삶을 살 필요가 있을까? 모두 아니라고 마땅히 그렇다고 답변할텐데, 과연 그러한가?


보람은 승진을 염두에 둔 환경 변화에 있지 않다.


보람은 지금 하고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내 주변, 내 현재 상황 속에 있다. 주어진 조건과 여건 속에서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나 행동, 활동이 모여 보람을 만들지, 앞으로 있을 기대하는 미래상을 고려한 환경변화에 있지 않다. 이는 환경을 바꾸든 현재에 안주하든 바뀌지 않는다. 결국, 보람이란 걸 아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한다. 아하! 맞아. 그래 하고 손뼉을 마주쳐야 하리라. 맞다 맞아. 비교 No, 보람 Yes.


승진은 달콤한 듯 쓰디쓴 진딧물. 가려워 때려해도 원하기 때문에 싹 다 비울 수 없다. 그래서 승진을 다른 말로 기대라고도 칭할 수 있겠다. 기대 만큼 미련한 것이 없으면서도 기대 만큼 만남에서 짜릿함과 쩌릿함을 선사하는 감정 또한 드물다. 기대를 갖고 기대를 품어 이뤄내는 수많은 성과들, 마치 원동력인 듯하다. 과연 기대는 원동력일까? 기대 만큼 착각 속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용어가 있을까? 기대 만발, 한 껏 기대하고 갔는데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는 실망을 한다. 기대는 하면 할수록 실망 빈도를 높힌다. 거꾸로 기대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실망하지 않을 경우의 수를 늘린다. 그래서, 지향해야 할 바가 도출된다. 굳이 선택할 수 있다면, 기대를 늘려 실망할 것인가, 기대를 줄여 희망을 품을 것인가.


비교와 기대. 남에게 있거나 앞에 있기에 허상에 가깝다.


앞으로 허상과 무척 투쟁할 일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가상 이란 단어가 붙기라도 하면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홀로그램과 꿈, 잠, 상상, 공상, 연상 등등 보여지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과의 범주에서 우린 육체적 삶을 지향할 것인지, 정신적 삶을 지향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감정이 육체적 자극 보다 정신적 충족감에서 진실로 다가옴을 볼 때 지속가능한 발전이 육체로부터 정신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니 현상이 앞으로 상상 너머 허상 마저 넘볼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보이지 않기에 갖고 싶고 갖고 싶기에 바라는 마음이 앞서면 현실이 상대적으로 궁핍해진다. 현실과 이상을 모두 챙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뇌를 양분해서 쓰거나 몸을 나눠 쓰지 않는 한 현실과 이상, 혹은 비교와 중용, 기대와 평정심을 확연히 나눠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수양이란 용어와 수행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일례로, 블로그의 테마 중 수양과 실천이란 이름을 사용한 면에는 이처럼 지향점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향하는 바를 바로 세워야 한다.


혹은, 명확히 한 후 나서야 한다. 만약 환경에 변화를 주려면 환경변화에 맞닿는 가족과는 긴밀하지만 가벼운 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높은 파고를 넘을 때 유리한다. 나는 무쇠팔 태권브이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인지하려는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 (1)비교 하거나 비교 당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겠다 라고. 그러면 비교에서 비롯된 수많은 욕망 덩어리들이 분명 떨어져 나가고 진정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있어서 환경 변화가 이로운지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막연한 기대 만큼 큰 욕심은 없다. 그녀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 라는 여김은 특히나 무분별하다. (2)직장은 임시직이다. 인생을 나이대 별로 쭈욱 선을 그어본 후, 30대, 40대, 50대 이후의 60대, 70대, 80대, 90대, 100대의 늘어난 기대수명 만큼 벌이가 될 것인지, 가족과 행복한 여정이 될 것인지, 자라난 아이가 충분히 보고자라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인지, 근로소득으로 과연 은퇴이후 소득을 충당할 수 있는지, 만약 (거의 확실하지만) 근로소득이 대안이 아니라면 어떤 소득을 늘려야만 하는지, 거기에 수반되는 지식과 공부할 부분은 무엇인지, 아무도 심지어 대부분의 선배들조차 회의나 술자리 어디에서도 30년 일해서 60년을 살아야 할 때 준비할 내용을 잘 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후배들이 물어보지 않아서 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60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 - 물질적 육체적 현실적 요소 = 돈 혹은 보람된 평생일터 - 을 만들었다고 자신한다면, 그 다음 동시에 진행할 건 지향점이다. 비교하지 않겠다. 비교 당하지 않겠다. 임시직장에서 주어진 만큼 다하겠다. 60이후 삶을 살아갈 기반을 만들겠다. 건강할 때 경험을 쌓겠다. 이야기를 전개하겠다. 인류에의 궁극을 탐구하겠다. '있음'으로 시작된 인생, 우주팽창의 에너지원으로써의 기능 외에 '없음'에의 견지를 유지하겠다. 등등.  김성호.

 

1708150031285.jpg
3.37MB


 

1708150171072.jpg
1.80MB

 

20240217_145832.jpg
2.97MB

 

'수양 > 어떻게살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고 바라는 바를 명확히 한다.  (0) 2024.03.18
가스 안전점검  (0) 2024.03.13
  (0) 2024.02.06
작디 작은 마음  (0) 2024.02.06
하지만 달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아니겠나?  (0) 2024.01.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