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부의 유기농 인증 생각
한겨레 2015.2.2
‘산의 나무는 스스로 식량을 자급한다’는 말이 있다. 산의 나무는 누가 거름이나 비료 그리고 물을 정기적으로 주지 않는다. 지금 겨울을 나고 있는 과수원 토양을 들여다보자. 겨울풀 주변으로 복숭아나무 낙엽, 마른 가지, 말라 죽은 풀, 그 아래에는 시커멓고 냄새 좋은 부엽토와 지렁이 분변토가 있다. 그 아래엔 셀 수 없이 많은 토양생물들이 휘젓고 다니며 나무가 좋아하는 식량을 만들어낸다. 밭에서도 모든 생명들은 독립적이지만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며 그물망 같은 관계 속에 있다.
복숭아 열매는 나무가 키우며, 나무는 햇빛과 빗물, 흙의 토양생명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농부는 복숭아나무들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고 유지해주는 노동을 하는 존재일 뿐이다. 밭에서 살아가는 나무는 산의 나무와는 다르게 매년 농부의 살림을 책임지고 농부는 나무가 건강하도록 보살핀다. 자연스러움이 풍요로움을 의미하지 않기에 밭의 나무도 산의 나무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 잘 자라는 때가 있고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고 온갖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때로는 그 과정에 많은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농사에서는 균형을 깨는 요인에 인간의 욕심이 추가되고 균형을 빨리 복구하는 데 농부의 노동이 필요하다.
나의 유기농은 균형을 깨는 역할은 적게 하고 회복하는 노동은 많이 하며 작물과 더불어 주변 생물의 삶, 흙, 물, 공기의 상태까지 함께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논밭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여 작물의 건강한 생존과 적정 수확을 효율적으로 이끌어내는 농사다.
허나 아직은 농민이든 소비자든 ‘생산물에 농약이 묻어 있지 않은 안전한 농산물’ 정도로 유기농을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물질을 피해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유기농업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 인증제도가 유기농업의 여러 측면을 다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지리라 희망한다.
잔류 농약 문제에 덧붙이자면, 유통되는 모든 농산물의 출하 단계에서부터 관이 적극 관리하여 잔류 농약의 위험을 없애야 한다. 최근 잔류 농약 문제와 관련하여 우수농산물관리(GAP) 인증을 확대하려고 한다. 농약, 비료, 제초제, 성장호르몬 물질, 지엠오 종자를 사용하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이 인증의 내용인데, 이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식품안전성을 확보하려면 이런 인증제도를 추가할 것이 아니라 유통되는 모든 농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행정을 하는 것이 옳다.
농산물에는 인증제도들이 너무 많다. 갖가지 인증 표시들을 접하지만 내용을 정확히 아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고 농민에게는 마치 인증딱지 장사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농민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인증에 부합하는 농사를 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정해진 서류를 만들어 행정 절차를 밟고 제반 비용(사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을 부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관행농업 전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친환경 농업은 ‘유기농’ 인증 하나로 족하다. 복잡한 인증체계로 혼란만 가중되고 불필요한 비용 증가만 발생한다.
얼마 전 ‘이효리씨의 유기농 콩’ 사연을 접했다. 관련 법률에 따라 유기농 표시 여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게 해당 작물에 대한 전반적인 유기재배 매뉴얼을 제시하고 도와주어 유기농이 확산되고 유기농업에 대한 인식도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오늘도 밭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살펴본다. 복숭아나무, 감나무, 그리고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이 잘 살아가도록… 그들로 인해 나의 인생도 채워진다.
황성현 냠냠과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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