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독한 AI, 더딘 살처분… 산란계 정상화 1년 이상 걸릴 듯
서울신문 2016.12.26
역대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국내 가금 산업의 존립을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다. 전체 사육 규모의 4분의1 이상이 이미 도살된 산란계 산업의 경우 정상화까지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축산농가에 대한 살처분 보상금으로만 1500억원 이상의 국고 지출이 예상된다. 정부가 단호하고 예외 없는 초기 방역 대신 농가와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소극적인 대책을 내놓는 바람에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탄핵 과정의 국정 공백으로 AI 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에서도 정부는 자유롭지 못하다.
●경북·제주 빼고 모든 시·도 뚫려
첫 발생은 지난달 16일이었다. 전남 해남 산란계 농장과 충북 음성 육용오리 농장에서 AI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정부가 충남 천안 야생조류 분변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가 확진됐다고 밝힌 지 닷새 만이었다.
●오리는 전체의 24.1% 211만 마리 묻어
이후 충청·호남권 오리 농장을 중심으로 퍼지던 AI는 이달 초 경기 포천 등 산란계 농장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급기야 ‘AI 안전지대’로 남아 있던 경남의 양산 산란계 농장에서 지난 24일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이튿날 경남 고성 육용오리 농장에서도 폐사 신고가 들어왔다. 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8개 시·도 32개 시·군의 방역망이 뚫린 것이다.
26일 기준 531개 농가에서 2614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계란을 낳는 산란계는 국내 사육의 26.9%인 1879만 마리가 몰살됐다. 산란계를 낳는 종계는 전체 사육 규모의 44.6%인 37만 8000마리가 땅에 묻혀 말 그대로 ‘씨가 마른’ 상황이다. 오리는 전체의 24.1%인 211만 5000마리가 살처분됐다. 또 농가는 아니지만 대구에서도 AI에 감염된 야생조류 사체가 발견됐다. 대구지방환경청이 지난 22일 대구 동구 신서동 아파트단지에서 발견한 큰고니 사체를 국립환경과학원에 맡겨 검사한 결과, AI 바이러스(H5N6형)가 이날 검출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두 가지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됐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H5N6형은 병원성이 강해 폐사 속도가 빠르다. 반면 지난 19일 경기 안성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확인된 H5N8형 AI는 잠복기가 길어 발견이 쉽지 않고 전염도 막기 어렵다.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국내 농가를 끈질기게 괴롭힌 유형이다.
정부는 지난 19일부터 AI 위기경보 단계를 가장 높은 ‘심각’으로 올려 사실상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AI 확산세는 잡힐 기미가 없다. 특히 경남 최대 산란계 밀집 사육지역인 양산에 바이러스가 옮겨붙자 방역당국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지난 2일 창녕 우포늪에서 발견된 큰고니 사체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진됐을 때만 해도 정부는 가금 사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전국에 적용되는 AI 긴급행동지침(SOP)보다 훨씬 강화된 방역조치를 경남에서 시행 중이라며 ‘낙동강 전선’ 사수에 자신감을 보였었다.
●이동제한 위반 등 방역 허술
AI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살처분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살처분 발생 농가는 24시간 내 처리가 원칙이다. 살아 있는 닭으로부터 바이러스가 대량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살처분과 방역에 지금까지 7만 1520명이 동원됐지만 아직 살처분 대상인 50개 농가 159만 7000마리의 처리는 지연되고 있다. 성환우 강원대 수의학과 교수는 “신속한 살처분을 위해 자위대를 투입한 일본처럼 우리도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군 부대 인력의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역 허점도 문제다. 당국에 따르면 소독을 하지 않은 사례 8건을 포함해 이동 제한을 위반하는 등 방역 법령을 어긴 경우가 25건에 이른다. 일부에서는 효과가 떨어지는 ‘물소독약’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올해 초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시판 중인 소독제의 효능을 시험한 결과 170개 중 27개의 효능이 미흡하다고 판정돼 생산을 중단하고 모두 수거했다”면서 “다만 아직 반납되지 않은 약을 농가가 가진 경우가 많아 재수거를 하고 외부 기관을 동원해 효능을 다시 시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4년·2015년 AI 땐 2381억 들어
AI 피해 규모가 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들인 돈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는 가축을 살처분한 농가에 귀책사유에 따라 시가 수준의 5~80%를 제외한 금액을 보상금으로 준다. 지금까지 국비 1268억원, 지방비 317억원 등 1585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농식품부는 추산했다. 이 외에 생계안정자금(10억원)과 소득안정자금 등이 지급된다. 지자체가 부담하는 살처분에 드는 인건비(인당 13만~15만원)와 매몰비용 등은 별도다. 정부는 2014~2015년 AI 발생으로 2381억원의 재정을 쓴 바 있다. 이 차관은 “살처분 보상금에 편성된 올해 예산 280억원과 내년 예산 400억원이 부족하면 축산발전기금을 투입하고 그것마저 모자라면 예비비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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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독한 AI…매일 60만마리 도살
서울신문 2016.12.20
<※ 편집자 주 = 겨울철 불청객 정도라고 여겼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어느덧 재앙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통령 탄핵 사태에 가려져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사이, 무서운 기세로 창궐해 사상 최대의 피해를 낳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키우던 닭들을 모두 땅에 묻어야 하는 농민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계란 공급이 끊기면서 대형마트에선 듣도 보도 못한 계란 제한판매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AI의 현 상황, 방역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보는 긴급 기획 4꼭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H5N6형이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그 어떤 AI 유형보다도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전염성이 강한 탓에 가금류 농가의 피해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H5N6형은 2014년 4월 이후 최근까지 주로 중국, 베트남, 라오스, 홍콩 등에서 유행한 AI 바이러스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국내 야생조류와 가금에서 분리된 H5N6형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중국 광둥성(廣東省), 홍콩 등에서 유행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유전자 변이가 일부 발견됐는데, 이는 중국 H5N6형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시베리아, 중국 북동부 지역의 번식지로 갔다가 우리나라로 도래하는 과정에서 야생조류에 있던 저병원성 AI 바이러스 유전자와 재조합됐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H5N6형의 인체 감염 사례는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있었고, 17명의 감염자 중 10명이 사망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유행한 H5N1형은 2003년 이후 856명이 감염돼 452명이 사망했고, H7N9은 2013년 이후 795명이 감염돼 319명이 사망한 통계와 비교하면 인체 감염 위험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가금류 농가의 피해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한 달여만인 이달 19일 기준으로 도살 처분된 가금류는 1천911만 마리다.
곧 2천만 마리에 육박할 전망이다. 한 달을 기준으로 매일 평균 60만 마리씩 도살 처분된 셈이다.
2014~2015년 H5N8형 발생으로 669일간 도살 처분된 가금류 마릿수가 1천937만 마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역대 최단 기간 내 최악의 피해를 냈다.
현재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심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 데다 야생철새가 계속 국내 철새 도래지로 들어오고 있는 시기여서 피해는 지금보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대규모 도살 처분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다.
또 H5N6형은 닭보다 오리에 더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리보다 닭 사육농가 규모가 훨씬 커 피해도 양계장에 집중되고 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204곳 가운데 산란계 농가가 79건으로 가장 많고, 육용오리 78건, 토종닭 12건 순이다.
도살 처분 피해 역시 닭 농가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체 도살처분 가금류 마릿수 중 74%가 산란계·산란종계·육계 농가다.
이 중 도살처분 마릿수가 가장 많은 산란계 농가의 경우 전체 사육대비 17.8%가 도살 처분됐고, 번식용 닭인 산란종계의 38.6%도 도살처분됐다.
육계 농가에서는 AI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도살 처분된 곳이 일부 발생했다.
AI 확산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살처분 보상금 및 생계소득안정 등에 드는 국가 예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2014~2015년에는 살처분 보상금 1천392억 원을 포함해 총 2천381억 원이 소요됐다.
이번 AI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계란 수급 차질로 인한 가격 폭등 및 공급 대란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계란 수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잠복기가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감염 증상이 나타나는 H5N6형의 특성이 즉각 대처하는 데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추가 방역대책을 통해 아직 농가 발생 사례가 없는 경남북 지역과 제주도로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경기도 안성천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채취된 AI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H5N8형으로 확인되면서 방역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에서 두가지 형태의 AI가 동시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H5N8형이 이전 최악의 피해를 냈던 2014년에 발생한 유형이고 잠복기까지 길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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