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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경제 법칙과 싸우는 정부

by 큰바위얼굴. 2018. 8. 18.

경제 법칙과 싸우는 정부

오피니언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 2018.08.18 03:12

 

낙관주의와 모험정신이란 경제 엔진 식고 있다

정책 전환 내년이면 늦어… 지금 핸들 돌려야

 

"경제 법칙은 참을성이 없어 정치의 시중을 오래 들지 못한다." 실업자 수는 IMF 구제금융 사태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던 1999년 이후 최악(最惡), 취업자 증가 폭은 2010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7월 고용동향 발표를 보고 이 말이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커온 사람치고는 드물게 온화한 성품의 이 경제학자는 극단(極端)에 치우친 이론을 배격했다. "경제는 이 국면에선 이 이론이, 저 국면에선 저 이론이 들어맞는 경우가 왕왕 있어. 독단적 이론을 극단까지 밀어붙여서는 안 돼." 미국인으로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가 여태 살아 '소득 주도 성장론'이 불러온 한국 경제 위기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혀를 끌끌 차며 "걱정했던 대로"라고 하지 않았을까.

 

항공기를 설계하는 사람은 유선형(流線型)으로 흐르는 동체(胴體)부터 날개·창문의 크기와 모양까지 물리학 법칙에 맞춘다. 비행기 살 사람이 주문한다 해서 법칙에 어긋나게 설계하지 않는다. 그런 비행기는 이륙(離陸)하지 못하거나 설령 이륙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곧바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문재인 정권 경제정책 특징은 하나같이 '경제 법칙에 도전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웃 일본은 최저임금을 1% 안 되게 올리면서도 살얼음 밟듯 조심한다. 한국은 올렸다 하면 8~9%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무원 17만명 증원, 건강보험 급여 대상 대폭 확대, 원전(原電) 가동 축소 및 LNG·태양광 발전으로 전환 등등 지갑을 열었다 하면 몇조원에서 몇십조원을 통 크게 푼다.

 

이렇게 설계한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면 그게 기적이다. 현 정권 경제정책 설계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들도 한국 경제가 활로(活路)를 열어가려면 구조조정, 특히 노동의 유연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실토(實吐)한다. 그런데도 '정권의 정체성(正體性)과 직결된 사안'이라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 지지 기반의 이익을 허물 수 없다는 뜻이다.

 

결정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의에서 '소득 주도 성장은 무죄(無罪)'라고 선고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면서 인민의 이익 우선을 강조한 것이 1979년이다. 한국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등장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7월 고용동향은 '참을성 부족한 경제 법칙들이 보다보다 못해 더 이상 정치의 시중을 들 수 없다'고 반기(反旗)를 든 것이다.

 

현 정권은 출범하면서 두 가지 깃발을 내걸었다. 하나는 '적폐(積弊) 청산'이고 다른 하나는 '일자리 정부'다. 자동차 핸들을 돌리면서 휴대폰 통화를 하면 사고 위험이 4배나 높아진다고 한다. 사람의 집중력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 눈엔 정부가 적폐 청산과 일자리 만들기 중 어느 쪽에 더 열심인 것으로 비쳤을까.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들여놓았고 취임 첫 지시로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후론 소식이 감감하다.

 

그러나 적폐와 전쟁은 수그러들 기색이 없다.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기관을 한 바퀴 휩쓸더니 요즘은 사법부를 집중 포격(砲擊)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와 벌이는 전쟁도 적폐 청산과 맥(脈)을 같이한다. 역사 교과서 안의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건드리더니 초점(焦點)이 대한민국 건국(建國) 시점 문제로 이동했다. 대기업과 벌이는 싸움은 일방적 구타(毆打)에 가깝다. 국세청·검찰·경찰·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고용부 등이 총출동한다. 사람을 잡아가거나 몽둥이를 든 인물이 설치는 사회는 '척하는 사회'가 된다. 공무원은 '일하는 척', 기업은 '투자하는 척', 국민은 '따라가는 척' 할 뿐이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5개월이 지났다. 대통령 임기는 60개월이다. 전임자 모두 취임 3년 반이 지나자 권력 누수(漏水)가 시작됐다. 방향을 전환하려면 지금 핸들을 꺾어야 한다. 내년이면 늦다. 경제의 엔진은 미래를 밝게 보는 낙관주의와 그에 바탕을 둔 모험정신이다. 그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경제 법칙과 싸워서는 안 된다. 법칙과 싸워 이긴 전례(前例)가 없다. 대통령 8·15 경축사처럼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국가'다. 정상(頂上)이 저기 보이는데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 대통령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적폐 청산, 이만하면 됐다. 미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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