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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세상보기

어떤 이의 꿈

by 큰바위얼굴. 2024. 12. 22.

동질성만으로는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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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으면,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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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러한 파벌 문화가 반복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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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란 단순히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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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격이 상상 이상의 것으로 다가올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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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이 2024년 12월 25일이 아니야. 12월 25일에 배드민턴을 치자고 약속했으니 오늘은 그 날이 아니지. 그 전의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다. 아직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라 밖이 몹시 어둡다. 오늘은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벽 길, 오늘 아침엔 놀란 일이 생겼어. 아침에 일어나 미지근한 물을 받아 마셨다. 찬물은 아니었고, 약간 따뜻한 정도의 물이었어. 양압기의 코마개를 닦고 나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순간 위장이 놀라고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렸다. 비유하자면, 오래 메마른 사막에 갑작스레 물을 부었을 때 땅이 흡수하며 느끼는 고통스러운 반응 같았다. 평소에는 겪어본 적 없는 기분이라 당황스러웠다.

오늘은 아내가 특별히 만두를 싸줬다. 내가 가는 길에 먹겠다고 하니 준비해준 것인데, 속이 불편해서 아직 먹지 못하고 있다. 입이 아니라 속이 문제였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든 힘내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지금은 새벽 5시 37분, 나는 고속도로 호남선으로 갈아타서 달리고 있다. 속도 제한은 100km/h이지만, 실제로는 110km/h까지 허용된다고 들었다. 이런 제한 속도라는 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한 약속 같은 것 아닌가.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자는 의미다.

이런 규칙을 떠올리며 어제 아내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배드민턴을 치러 가는 차 안에서 뉴스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어떤 사람이 협박을 받아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사건이었다. 경호처와 군인이 관련된 이야기 같았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과 규칙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안전한 세상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세상이 험난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내.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은 멀리 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 하지만 그런 일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현실로 벌어지고 있어. 이를 단순히 "겪는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 각자가 살아가며 겪는 일들은 개인적인 동기나 집단적인 이유에서 비롯되곤 하지. 예를 들어, 승진을 위해 집단을 형성하거나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해. 이는 인간이 과거 밀림에서 생존하며 진화해온 방식과도 맥을 같이해.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평화'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선의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면 미국이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을 견제하거나, 자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때 어떤 수단과 방법도 불사하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줘. 지도자 암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이뤄질 경우의 파장을 생각하면, 그러한 행동의 책임은 분명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

이런 맥락에서 국가 간 경쟁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강력한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한 은연 중의 연대와 행동은 흔히 볼 수 있어. 누군가를 제거하면 모두가 좋아질 거라는 착각 속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행동들은 표면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를 보자. 시진핑의 장기 집권으로 인해 조직은 그의 우호적인 인물들로 가득 차 있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장기적으로 갈등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그 조직은 다각적인 시각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잃게 될 가능성이 커. 이는 결국 판단의 오류를 초래하거나 조직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지. 내부 비판과 견제가 사라지면, 모든 결정이 무조건 옳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어.

이런 모습은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과도 연결되지. 로마가 몰락한 이유를 되새겨 봐.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결국 다양성과 유연성을 잃고, 고착화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소멸로 이끌었지.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그 흔적을 더듬어보며 과거의 영광이 아닌 교훈을 찾아야 해.

결론적으로, 조직이든 국가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과 견제, 갈등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야.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배경에는 이슬람의 포용적 자세가 있었어. 이슬람은 특정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고, 각자가 믿고 싶은 신을 믿도록 허용했지. 다만, 그 과정에서 일정한 세금을 부과했을 뿐. 반대로 이슬람 신앙을 따르는 경우, 추가적인 세금 혜택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이러한 수용적인 태도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어. 이러한 개방성 아래 찬란한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회에 속할 수 있었다고 봐.

하지만 오늘날의 조직 문화는 이와 거리가 멀다. 끼리끼리 뭉쳐 특정 인물을 배척하고, 자리를 빼앗는 행태가 만연해. 이는 단순한 이해 갈등을 넘어선 조직 내의 생존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욱 당혹스럽다. 심지어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거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리더가 부임해도 이런 패턴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그 게임의 일부가 되곤 한다. 이는 조직이 강력한 라이벌이나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려는 본능적인 행위와 닮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나 당사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갈등을 이어받아 대물림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물조차 이러한 불신의 틀 안에서 배제되며, 점점 더 고립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런 조직 구조에서는 인재가 발휘할 기회마저 막히고, 서로를 끌어내리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끝없는 갈등처럼 누군가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갈등을 종식시키는 길은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포용과 협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문제는 앞으로도 이어질 뿐이다.

한 조직, 도시,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성장과 발전이다.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규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는 각자의 역할과 활동을 존중하면서도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은 어떤 사람의 활동을 억누르거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데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나 중국 정부를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사람'의 부족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반대 의견과 다양한 관점을 억압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인 태평성대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발전과 융성을 저해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과 혁신이 부조리를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사회는 마치 높은 탑을 쌓는 것과 같다. 한 방향으로만 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점점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넓은 기초 위에 서로 엇갈리게 층을 쌓아가면, 탑은 더욱 높이, 안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손발이 잘 맞는 협력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역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란 단순히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슬람 문화의 발전이 좋은 예다. 이슬람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각자의 종교와 신념을 존중하면서도 체계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동질성만으로는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편만으로 이루어진 동질적인 집단은 오히려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끼리끼리 문화"와 같은 배타적인 조직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문화는 결국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새로운 생각과 시각을 배척하게 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발전을 가로막는다. 조직이 과중한 업무를 이유로 다른 의견과 시각을 배제하며, 이해 갈등을 줄이기 위해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만을 선호한다면, 그 조직은 결국 정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관점과 역할을 받아들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진정한 토대다.

제도가 필요했던 이유와 그 필요성이 현재에도 유효한지를 다시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제도를 비판하는 시각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다름을 배척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돼.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논의가 필요해. 비난과 험악한 표현은 생산적 논의를 저해할 뿐.

축산물 이력제를 예로 들어 보자. 축산물 이력제는 가축 사육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안전 문제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되었지. 이는 가축을 먹거리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방역과 철저한 관리가 필수적이야.

가축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육에 드는 비용이 막대하고 효율이 낮다는 문제도 있어. 그럼에도 가축 사육과 축산업은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에 농업과 비교해 경제적 우위를 점했어. 예를 들어, 쌀은 단순히 농사 지을 때의 비용과 비교해 가공 과정을 거칠수록 부가가치가 크게 상승한다. 축산물 역시 사육, 도축, 유통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이는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지.

축산물 이력제는 인간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가축 질병이 발생했을 때,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감염된 지역이나 유통 경로를 철저히 추적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질병 확산을 방지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력제를 통해 가축의 도축 이후 유통 과정까지 추적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어. 예컨대, 살충제 계란이나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당 제품의 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통제 범위를 확대하고, 보다 세밀한 관리로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결국, 제도는 단순히 과거의 필요를 반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재와 미래의 환경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며, 필요성과 실효성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100% 통제가 가능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째, 문제의 제품을 리콜하여 수거한다. 하지만 계란이나 축산물이 하나의 집하장을 통해 유통되었다면, 그것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령 이를 추적하더라도,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 소각해야 한다.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의 물질이 퍼질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이러한 소각은 당국이 직접 진행하거나, 관련 주체가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신뢰 기반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통제와 관리는 종종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 모든 제품을 확인하고 수거하여 소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작은 불씨가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그 제품을 섭취해 탈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문제의 제품에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해당 제품의 유통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계란과 고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계란은 "익히면 안전하다"라는 안내를 통해 소비자들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살충제 문제가 얽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충제는 단순히 익힌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수거와 소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당 농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 지역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문제는 계란이나 축산물 자체의 식별 가능성이다. 현재 제도에서는 계란 난각에 식별 정보를 표시해 문제가 된 제품을 추적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포장 변경이나 이름을 바꿔 판매하는 경우에는 이를 식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식별 체계를 강화하고, 유통 과정을 철저히 관리 및 감독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축산물 이력제는 이러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관리 수단이며, 지금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원인을 밝혀내고, 해당 제품만 도려내는 것이 목표다.

이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당초의 취지와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도가 아무리 큰 시너지를 가져오더라도, 그 효과만을 강조하며 제도를 확장하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보의 투명성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 정보를 공개하거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우리는 개인 정보가 어느 정도 공개되는 것이 피해보다는 집단적으로 얻는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이 커졌다. 초기 취지와는 달리, 통제와 관리가 데이터화되면 수치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계적 장비나 시스템을 사용하는 대신, 계량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다룬다면 더 정교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축산물 이력제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통해 우리는 이 제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통제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을 모니터링하여 위험을 미리 예방하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방역이나 질병 관리 측면에서는 이 제도의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가축 질병의 방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현재의 시스템으로 가축을 관리할 이유가 없어질 수 있다. 사람은 단백질을 필요로 하며, 고기의 질감이나 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과 성장을 위한 영양소로서의 단백질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익숙한 맛을 위해 가축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고기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직면할 문제는, 이러한 통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가축을 관리하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만약 우리가 현재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가축을 관리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과 떨어진 곳에서 엄격하게 관리된 환경에서 가축을 기르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아이디어로 제시되었고, 실현 가능성도 있는 접근법일 수 있다.

또한, 데이터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이력 추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개인이 드론을 달고 다니거나, 위성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기존의 이력 추적 방식은 무의미해진다. 이제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 심지어 꿈까지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이와 같은 데이터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과거의 무협 시대에서 내공을 쌓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처럼, 육체적 강인함을 바탕으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육체와 기초적인 능력이 필요하며, 그 기반을 마련한 후에야 비로소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육체적 강인함이 없으면 그 어떤 깨달음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달음의 영역을 넘어설 때, 육체가 발목을 잡는다면 그 경계를 넘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노쇠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내공이 부족해져 결국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깨달음이나 선각자 수준에 이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육체의 강인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육체적 강인함을 기반으로 성장해야만, 그 후에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죽음 너머'라는 물리적 현상을 넘어설 수 없으며, 이는 우주 시대와 같은 물리적 세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깨달음도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상상력이나 꿈, 그리고 '혼' 같은 개념 역시 물리적 세계와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현상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꿈과 상상은 물리적 영역을 넘어선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꿈을 꾸거나 상상할 때, 그것은 육체에 기반하지 않지만, 결국 우리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상세계로 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육체는 본질적인 존재지만, 우리의 정신과 상상력은 그와 다른 차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마치 가상 세계처럼, 육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주 시대의 에너지원은 육체와 정신, 꿈과 상상력까지 모두 포함한 거대한 흐름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원은 우리의 발전과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그 반대급부로,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물리적인 세상도 결국은 이러한 흐름의 일부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없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존재의 유무에 대해 생각할 때, 없다는 것이 꼭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사실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우리가 성장과 발전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이해관계, 그리고 당파적인 싸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정치나 사회 구조에서 '당파 싸움'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당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나 기업, 가정 등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집단의 발전을 목표로 한 경쟁이 아닌,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경쟁이 필요하다. 만약 이 원칙을 바꾸면, 작은 단위부터 차례대로 무너질 수 있다. 결국,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으면,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답은 간단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고, 발전의 순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쓸모가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일을 다각화하거나 다양화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같은 목표와 뜻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같은 시각에서 동료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각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 중 하나는, 집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의견이 침묵하거나 제약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의 집권화가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다.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억제되거나 그들의 역할이 제한되면, 결국 그 집단은 발전을 멈추고 당대에 머물게 된다. 이는 강력한 파벌이 형성되고, 그 파벌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의 발전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시진핑 집권 하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단 내에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은 단순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맡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강력한 파벌이 형성되고, 그 파벌에 속한 세력들끼리 이익을 나누며, 결국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나누어 먹기식 정치로 흐르게 되며, 그로 인해 집단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파벌 문화가 반복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로마와 몽골 제국 모두 내부의 분열로 인해 결국 쇠퇴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때 번성한 집단도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인해 붕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내부 갈등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선의의 경쟁'이라는 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단화되고 사조직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제는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의견이나 시각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며, 발전은 정체된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경계해야 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독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더 이상 이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들의 의견이 조직 내에서 활발히 반영되어야만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소속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의 소속감을 유지한 채로 외부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려 할 때 발생한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생각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전제가 바로, 내부에서의 의견을 내놓는 것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합리적인 논리나 판단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면 결국,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왜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 질문은 단지 철학적인 성찰을 넘어서, 나아가 자신이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나 추구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결국 죽음에 이를 때까지 내가 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 속에서 떠오르게 된다. 이는 단순히 일상의 문제를 넘어서, 삶의 진정한 목적을 탐구하는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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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술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음성 녹음을 하다가 다른 기능을 사용하면 녹음이 중단되었으나, 이제는 녹음 기능이 개선되어 사진을 찍거나 지도 앱을 켠다고 해도 녹음이 잠시 멈추는 것 외에는 큰 지장이 없다. 이런 변화들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해소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기술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은 발전들은 나름의 의도와 함께,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지 않으면서 점차 나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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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상 앞에 앉아 스트레칭을 준비하는 중이다. 몸을 풀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스트레칭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다. 이야기의 방향은 충분히 다뤘고, 이제 다른 내용들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두세 달 만에 배드민턴을 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강력한 파트너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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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복잡한 주제로 넘어가 보자.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존을 파괴하는 물질은 결국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할 것이다. 이 에너지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전기와는 다르다. 전기의 원료가 되는 배터리 개념이 아니라, 소형 원자로처럼 원자의 힘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은 위험성이 동반되지만, 우리는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의 힘이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힘은 단순히 폭발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변화를 뜻한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원자 단위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주 시대는 이미 개척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주의 별들과 그 생성 과정도 우리가 직접 다룰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내가 이미 상상하고 이야기한 만큼, 언젠가는 그런 가능성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생각과 상상이 결국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환경과 우주에서 흩어져 있는 정보들이 내게 닿고, 그것이 내 사고방식과 결합되어 새로운 생각들을 이끌어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 안에 내재된 강력한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결국은 이 세상에 퍼져 있는 정보와 환경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사고와 상상은 그저 나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변화들에 의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에게 영향을 끼친 수많은 외부 요인들이 나의 생각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사고는 그런 외부의 영향을 받으며, 결국 그것들이 내 의식 속에 합쳐져 나만의 독특한 생각과 방향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계속해서 반복되며,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존재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존재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 차원에서의 변화나 순환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는 방법과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내 삶의 가치와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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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나와 세상의 관계 속에서 나의 생각은 또 다른 우주적 흐름과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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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희망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가름이 잠시 머무는 순간에도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더라도, "내가 아닌 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급격한 변화에 대한 충격이 상상 이상의 것으로 다가올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인생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잡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님께 안부를 전하던 마음과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주의 변화는 항상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바라보며 그것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변화는 비록 반복될지라도,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과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으며,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의 역할과 의미가 남겨진다면, 그것이 비록 작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결국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새로운 만남이나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이가 들고, 세상의 무상함을 느낄 때,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50이라는 나이는 마치 중간점처럼 느껴지며,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많은 것들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무언가가 불확실하고, 때로는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불명확함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상하고, 그 상상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는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은 다시 활용될 수 있는 가치가 된다. 모든 변화와 발전은 결국 우리가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게 되며, 그 과정이 중요하다. 때로는 의미를 지우고, 편안해지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와 동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재정립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상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며, 그곳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김성호.





아내가 싸준 아침 식사, 속이 덥스러워 녹음하다가 때를 놓쳐서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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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편집본(파일)

2024년 12월 20일 아침.hw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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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음성)
https://youtu.be/ovGDUjAB_GQ?si=2dtxS1hmkzi6k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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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은 다채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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