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가 만들자는 ‘국회판 김영란법’
한겨레 2015.2.8
‘판결이 판관의 이해관계나 정실에 좌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에 속을 끓이던 황제는 속주의 총독들을 다잡기로 한다. 특별한 윤허가 없이는 고향의 관직을 맡을 수 없도록 했다. 총독은 물론 그 자제들까지도 관할구역 안의 주민과 혼인하거나 노예나 토지, 집을 사는 일을 금지했다. 고집스런 황제는 25년간이나 닦달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의 공직 부패가 근절됐을까? 그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새삼스레 콘스탄티누스 시대를 뒤적인 것은 ‘김영란법’ 때문이다. 생살여탈의 권한을 틀어쥔 로마의 황제조차 어찌하지 못한 공무 관련 뒷돈 거래는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골머리를 썩이는 난제다. 김영란법도 그 해법의 하나로 제기된 것인데, 원안은 기존 형법이 망라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부정과 일탈을 막아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판’으로 버전이 바뀌면서 취지와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이 김영란법을 그 김영란법으로 알고 있다면, 국회 정무위 법안을 두고 “제가 원래 했던 것과 너무 다른 이야기”라고 한 김영란 전 대법관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회 법사위에 넘어가 있는 김영란법은 더이상 그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될 만큼 심하게 변질됐다. 애초의 김영란법은 적용 대상을 공직자로 한정했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는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직원들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의원들 스스로도 그렇게 하기가 군색했던지 ‘공무수행사인’-왜 유독 언론과 사립학교 종사자만 해당하는지는 설명이 모호하다-이라는 기이한 용어를 창조해내더니, 법안 축조 과정에서는 은근슬쩍 ‘공직자’라고 규정해 버렸다. 민간영역인 이 두 직군을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해 억지로 공직자에 포함시키는 본말전도가 이뤄진 것이다.
적용 범위도 이들 모두의 ‘가족’(민법)까지로 한껏 확장했다. 그 결과 작년 기준 경제활동인구 2653만명 가운데 물경 “1786만명”(정무위 회의록) 안팎이 이 법을 어길 소지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게 생겼다. 한집에 사는 식구들 속내도 알 수 없는 게 요즘 세상인데, 사돈의 팔촌까지를 수시로 챙겨야 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오가작통법’을 연상시키는 이런 식의 포괄입법은, 의원들 자신이 법안심사 과정에서 고백했듯,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관련 기관은 더욱 비대해지게 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경찰과 검찰은 권한과 몸집이 더욱 커지고, 법관 수도 대폭 늘어날 것이며, 이 법의 집행기관이 될 국민권익위원회는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검찰 간부의 예상은 기우일 수가 없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 누구든 사찰할 수가 있게 된다. 특히 전국 경찰이 10만여명인데, 마음먹고 따라다니면 누구든 처벌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사실상 전국민에 대한 사찰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명령이니 요구니 하며 ‘국회판 김영란법’을 기어코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오래된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사악한 환경이나 부도덕한 관행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믿지 말라. 법을 지나치게 믿거나 법에 의존하려고도 하지 말라. 처방 차원에서 탄생한 제도는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쉬우며, 오히려 탄압의 도구로 악용되기 십상이다.”(루이스 브랜다이스 미국 연방대법관) 선의의 제도만으로 세상이 좋아지리라 믿는 것은 물정부지의 소치이거나 지적 태만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통합진보당의 해산도, ‘과거사 사건’을 수임한 민변 변호사 수사도 모두 ‘합법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명분이 아무리 타당해 보여도 법은 함부로 만들 일이 아니다.
강희철 사회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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