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자란 돼지, 더 건강한 먹거리로 보답한다는데
조선일보 2015.9.5
김연주(33)씨는 요즘 마트에서 달걀을 살 때 포장지를 살핀다. 등급을 따지거나 무항생제·유기농 표시를 찾는 것은 아니다. 초록색 '동물복지(Animal Welfare)' 마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동물복지 마크'는 닭·돼지 등 가축들이 본래 습성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사육시설을 갖춘 농장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는 인증마크다. 김씨는 "더 맛있고 건강한 먹거리라고 생각해 가격이 비싸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을 산다"고 했다.
'동물복지'는 인간의 필요에 따른 동물 이용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취지에 맞춰 2012년부터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산란계 농장 66곳, 돼지농장 3곳, 육계농장 1곳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지난 1일 경기도 이천 성지농장에서 돼지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일반 돼지 농장에서 어미 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폭 60㎝짜리 철제 우리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 동물복지 돼지 농장은 철제 우리 대신 개방형 축사와 풀밭을 갖추고 있다. / 성지농장 제공
횃대에 올라가는 닭, 풀밭에서 뛰노는 돼지
고기나 달걀을 얻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을 인도적으로 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1일 경기도 이천시 성지농장을 찾아가봤다. 이 농장은 3만㎡에 돼지 2200여 마리를 키우는 농장으로, 지난 6월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농장에 들어서면 150㎡ 크기 풀밭이 먼저 눈에 띈다. 이곳에 돼지 15마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풀을 뜯어 먹기도 하고 흙탕물에서 뒹굴기도 했다. 풀밭 양쪽에 있는 축사는 칸막이 없는 개방형이고 바닥에는 톱밥이 깔려 있다. 이범호 성지농장 대표는 "돼지들은 코로 땅을 파헤치는 습성이 있는데, 톱밥은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동물복지 농장의 핵심은 '넓은 공간'이다. 일반적인 돼지농장에서 어미 돼지는 폭 60㎝, 길이 2m 정도의 철제 우리에 갇혀 지낸다. 어미 돼지들은 그 안에 3~4년씩 갇혀 1년에 두 번 이상 새끼를 낳다가 도태된다.
닭 농장도 마찬가지다. 일반 양계 농장은 폐쇄형 우리에서 닭을 사육한다. 닭은 A4용지 3분의 2크기의 공간에 갇혀 날갯짓은 물론 본능적 행동 중 하나인 모래 목욕도 못한 채 자란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자란 닭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닭들의 깃털을 쪼는데, 이를 막기 위해 병아리 때 부리를 자르기도 한다. 돼지농장에서도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들의 꼬리를 물어뜯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끼돼지의 꼬리를 자르는 게 일반화돼 있다.
동물복지는 폐쇄형 우리 사육 방식을 금지한다. 동물복지 돼지농장의 경우 철제 우리 사용이나 새끼돼지의 꼬리 자르기, 항생제·성장 촉진제 사용 등을 할 수 없다. 닭농장의 경우 1㎡당 큰 닭 9마리 이하를 길러야 하며 닭이 올라앉을 수 있는 홰와 깔짚을 제공해야 한다. 부리 다듬기, 강제 털갈이 등도 금지돼 있다. 닭은 털갈이 후 더 자주 알을 낳는다. 이 때문에 일반 양계농장들은 더 많은 알을 낳게 하려고 닭을 굶기거나 물을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강제 털갈이를 유도한다.
닭들이 깔짚 위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있다. A4 용지 면적보다 작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일반농장 닭들과 달리 동물복지 양계농장의 닭들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다. / 새날농장 제공
동물에겐 고통 최소화… 사람에겐 건강한 먹거리 제공
'동물복지' 개념은 1964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루스 해리슨은 '동물 기계(Animal machines)'란 책에서 가축들이 좁은 공간에서 밀집 사육되는 비참한 현실을 알렸다. 현재 영국의 경우 달걀의 49%, 돼지고기의 28.2%, 닭고기의 5.2%가 동물복지 축산물이다. 스웨덴 닭고기의 90%, 네덜란드 달걀의 95%, 덴마크 쇠고기의 30% 역시 동물복지 농장에서 나온 생산품이다.
동물복지 인증제품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일반 축산물과 비교할 때 방사해서 키운 닭의 지방함량은 50% 낮고 달걀의 비타민E 함량은 100%, 베타카로틴은 280% 정도 높게 나타났다. 오메가 3 함량도 일반 축산물 대비 달걀은 178%, 돼지고기는 290%, 닭고기는 565% 이상 높았다. 동물복지 달걀은 일반 달걀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이 적게 검출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종호 농림축산검역검사본부 사무관은 "가축이 밀집 사육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적어져 면역력이 향상되는 등 건강상태가 좋아진다. 이는 질병 및 항생제 사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김계웅 공주대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동물복지의 취지는 좋지만 대규모 축산사업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방식"이라고 했다. 가축이 살아가는 데 넓은 면적을 제공하려면 비용이 증가한다. 소비자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물 복지 인증 달걀 가격은 400~500원 선으로 일반 달걀의 두 배 수준이다. 돼지고기 역시 20~40%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2012년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답변자의 58%가 가격 부담이 있더라도 동물복지 축산농장에서 생산된 축산물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재 생산되는 동물복지 축산물이 모두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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