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동거
경향신문 2016.6.9
이마에서 땀이 날 지경이다. 용기를 내볼까, 그래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굳게 마음먹지만 역시나 살며시 방문을 열며 주위를 살핀다. 어느 쪽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깐. 재빨리 방문 앞을 180도 훑는다. 다행히 보이지 않는다. 살짝 펜스를 열고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참았던 ‘근심’을 푼다. 볼일을 본 후 화장실에서 최대한 빠르게 주방에 딸린 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평상시 집에서의 모습이다.
32평 아파트에서 방 한 칸에서만 산 지 어느덧 4개월째다. 거실 소파에 편히 앉아본 지도, 아이들 방에 들어가본 지도 오래다. 그런데 루시는 나와는 딴판이다. 내가 사는 방 한 칸과 주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요즘엔 내 영역을 노린다. 급한 대로 펜스를 쳐놨지만 소용없다. 생각다 못해 어느 날부터 ‘인간’이란 한 종의 자격으로 영역표시로 맞서기로 했다. 매일 아침 루시와 첫 대면을 할 때면 내가 주로 머무는 방과 주방 쪽 벽면에 정수리를 비비고 등짝과 엉덩이를 문댄다. 루시가 아침마다 자기 쪽 펜스에 이렇게 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인간이 할 짓인가 싶다가도 생존을 위한 일이니 거를 수 없다.
루시는 2015년 11월생 수고양이다. 평균 15~18년을 산다고 치면 나의 중장년기를 고스란히 함께 보낼 것이다. 그야말로 ‘반려’인 셈이다. 내 인생에 단연코 고양이는 없었다. 엄마가 죄다. 몇 년을 두고 키우자고 애태운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상상도 안 했을 일이다. 결단을 내리면서 속으론 ‘원룸을 얻어 나가 살까’ 생각했을 정도다. 꼬리털만 봐도 무섭고 두렵고 싫었으니까.
한데 요즘 들어 루시를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이 커진다. 최근 TV에 방송돼 새삼 충격을 준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 실태 때문만은 아니다. 루시는 식구들이 아침에 나가면 12~13시간을 혼자 있는다. 어두운 밤 현관문 소리를 듣고서 울며 다가오는 모습을 볼 때면 “고양이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 3일간 여행을 가도 아무 상관 없다”던 고양이숍 사장의 말은 아무래도 거짓 같다. 중성화 수술도 그렇다. 수의사는 “땅콩(고환) 두 개를 떼어내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넘어갔지만 하나의 생명이 가장 기본적인 번식의 본능을 거세당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닐 테다.
루시가 바라본 지난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어두컴컴하고 불결하며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고양이 공장. 철창으로 된 비좁은 공간에서 발정유도제를 맞은 아빠 고양이와 잦은 출산으로 병든 엄마 고양이 사이에서 태어나, 젖도 빨지 못하고 경매를 거쳐 고양이숍에 옮겨진다. 라면박스보다 더 작은 유리부스 안에서 환한 조명에 스트레스 받으며 수많은 고객들의 손을 타다 지칠 때쯤, 몸값이 매겨진 후 어느 콘크리트 아파트로 또 옮겨진다. 사료와 물이 제공되긴 하지만 알 수 없는 낯선 공간에서 영문 모를 수술까지 받으며 다른 생명체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허용되고 포장된다. 주인의 변심이나 몹쓸 병 탓으로 어느 날 갑자기 버려지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루시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이 불편하다고 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견은 5만9633마리다. 통계에 안 잡힌 것을 포함하면 10만마리로 추산된다.
고양이는 통계도 없다.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이기심이 커질수록 ‘반려동물 시장규모’(농협경제연구소 기준 2020년 5조8000억원)는 더 커진다. 이달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개와 고양이, 토끼 등 애완동물의 상업적 판매를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조례안이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생산하고 팔고 구매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간의 흑역사’ ‘반려 잔혹사’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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