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상생기금, 한중FTA 피해구제 가능할까
연합뉴스 2015.11.30
(세종=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전제로 야당과 농민단체 등이 요구한 무역이득공유제 대신 농어촌 상생협력·지원사업 기금 조성이 대안으로 선택됨에 따라 그 실효성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무역이득공유제는 한중 FTA 체결로 이득을 보는 산업의 이득 일부를 농수산물 등 피해산업에 지원한다는 것이었으나 정부와 재계의 반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30일 여야정협의체는 1조원 규모의 상생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무역이득공유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기술·법리적 문제 등으로 도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신 민간기업, 공기업, 농·수협 등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재원으로 매년 1천억원씩 10년간 1조원의 상생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자발적 기금 조성이 연간 목표에 못 미치면 정부가 부족분을 충당하게 된다.
이 상생기금은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관리·운영하며, 농어촌 자녀 장학사업· 의료 및 문화 지원·주거생활 개선·농수산물 상품권 사업 등에 쓰일 예정이다.
정부는 자발적 기부를 활성화하고자 참여기업에 세액공제, 동반성장지수 가점 부여 등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그러나 무역이득공유제와 상생기금에 대해 정부·재계, 농민단체 간에 이견이 지속할 것으로 보여 갈등이 재발할 여지도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무역이득공유제는 강제로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이어서 정부는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역시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에 난색을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FTA를 통해 기업 이익이 확대되면 세금 납부액도 자동 증가하는 만큼 농어업인 피해대책은 조세수입 확대로 마련된 재정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한중 FTA로 농수산업 분야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발적인 모금은 한계가 있다며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 정책조정실장은 "기업 자율 모금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해 농업 경쟁력 강화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라며 "사업 참여가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기업 홍보용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가 실질적인 재원 마련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농축산단체들로 구성된 'FTA 실질대책수립촉구 농축산단체 비상대책위원회'는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를 포함한 실효성 있는 FTA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지난 19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FTA 국회비준에 앞서 실효성 있는 피해대책을 끊임없이 요구했으나 실질적인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며 "막대한 이익을 보는 제조업 분야에서 막대한 피해를 보는 농축산업 분야에 이익을 공유하는 무역이득공유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생기금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려면 농어촌에 지원하는 금액이 실제 농어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철저히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보조금 개편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앞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농업구조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입한 농림 투·융자는 100조원이 넘는다.
20년 넘게 농업·농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했고, 여전히 농가는 낮은 소득과 부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 FTA 보완대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농어촌 상생기금은 자발적인 한·칠레 FTA를 계기로 2004년부터 농협과 경제5단체 등이 공동으로 추진한 '1사1촌 자매결연 운동'과 성격이 비슷하다.
이는 기업과 마을이 자매결연을 하여 일손 돕기, 농산물 직거래, 농촌 체험·관광, 마을 가꾸기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하는 사업으로 2013년 말 1사1촌 자매결연이 1만쌍을 돌파하는 등 성과를 거뒀으나 대기업 참여가 저조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농어촌상생기금, 어디에 쓸 것인가?
KREI 박시현. 2016.2.17
향후 10년간 농어촌상생기금으로 1조 원이 모아진다. 상생기금은 1조 원이라는 총액이 갖는 심리적 규모와는 달리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에 걸처 조성될 예정이다. 기금의 모집 및 사용 방법 등에 따라 실제 사용 액수가 차이가 나겠지만 농림수산식품부의 한해 예산인 15조 원에 비교하면 그 규모는 큰 편이 아니다.
액수가 크던 작던 농어촌 상생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농어촌상생기금에 대해서 기업의 팔을 비틀어 농업지원자금을 마련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FTA로 농업이 얼마나 많은 타격을 받고 있는 지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농업계가 또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기금을 출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각종 사회 공헌 활동을 농어촌상생기금으로 대체하고 기부에 따른 세제 혜택 등만을 챙기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농어촌 상생기금은 잡다한 기업의 농촌 봉사 활동 목록으로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농어촌 상생기금은 보다 분명한 사용처를 정할 필요가 있다.
상생 기금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상생기금의 출발점에서부터 보인 농업계와 산업계와 입장 차이, 기금의 조달 방법, 기금의 관리 주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용처에 대해서 불확실한 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조성되는 상생 기금의 용도로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나 농촌 활성화와 같이 명분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포괄하는 범위가 넓고 그 효과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은 적당치 않아 보인다. 그 보다는 그 용도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서 그 효과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분야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국회에서 정한 농어촌 자녀 장학사업· 의료 및 문화 지원, 주거생활 개선 사업 등은 상생기금의 용도로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는 농어촌상생기금으로 깨끗한 농촌 가꾸기 사업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이 질서가 잘 잡힌 깨끗한 나라라고 평가한다. 특히 서울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나라의 속살이라 할 수 있는 농촌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쳐져 있다. 언뜻 보아서는 깨끗해 보이는 농촌도 한 걸음 다가가서 찬찬히 살펴보면 다른 모습이다. 농촌에는 매년 약 700만 개 이상의 농약병, 20만 톤의 이상의 영농 비닐이 투하되고 있지만 그 수거율은 높지 않다. 농촌에는 각종 농기계가 증가하고, 농업용 시설 등이 새로 생긴다. 도로의 발달로 농촌에는 외지인인 갖다 버린 물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일들이 한 두 해도 아니고 근 4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농촌에 들어오는 물질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처리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농촌의 쾌적성은 매년 뒷걸음 치고 있다. 도시와 같은 편리함도 제대로 못 누리면서 농촌이 가지고 있는 쾌적함마저도 점차 훼손되어 가는 것이 오늘의 농촌 현실이다.
농촌을 깨끗하게 가꾸는 것은 예산으로 일을 하는 행정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이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개인화된 삶의 방식에 익숙한 지금의 농촌주민에게 이를 강제하기란 어렵다. 농촌 주민들의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보상과 함께, 그 행동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일종의 캠페인성 사업으로 이를 농어촌상생기금으로 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목적과 결과가 분명하다. 또한 국민 모두의 공유 재산인 농촌을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과 기업인 그리고 도시민이 함께 가꾼다는 면에서 상생의 취지와도 잘 맞는다. 깨끗한 농촌에서 생산되는 좋은 농산물을 전 국민이 먹을 수 있고 전 국민이 쾌적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차원의 상생이다. 더 나아가서 이는 현세대와 후세대와의 상생이기도 하다.
1조 한·중 FTA 농어촌상생기금…'미르재단 데자뷔'?
한국경제 2016.10.30
슬그머니 통과된 '기업 준조세' 법안
매년 1000억씩 걷어 1조 조성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관리운영
기금출자 주체서 정부는 쏙 빠져
정부 "한·중 FTA 수혜 기업들 자발적 기부금 형태 될 것" 지난해 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조건으로 정부가 제시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 설치가 1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농어촌상생기금은 한·중 FTA로 이득을 보게 될 수출 기업들로부터 10년간 1조원을 걷어 피해 농어촌을 지원하자는 것으로, 일종의 무역이득공유제와 비슷하다.
정부가 기금 설치안을 제시할 당시부터 ‘기업 준조세 부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FTA로 이득을 보는 기업이 명확지 않은 데다 이득 규모를 따지기도 쉽지 않아 논란이 컸다. 하지만 지난 25일 ‘최순실 사태’ 와중에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는 관련 법안을 뒤늦게 통과시켰고, 이 과정에서 반(反)시장적으로 개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 출자 대상에서 ‘정부’ 빠져
지난해 11월30일 여·야·정 협의체는 한·중 FTA 타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1조원 규모의 농어촌상생기금을 조성키로 합의했다. 당초 야당과 농민단체 등은 조세 방식의 무역이득공유제를 요구했으나, 여·야·정은 산업계를 중심으로 1조원의 기금을 출연하자고 방향을 틀었다. 이에 산업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정책이며 또 하나의 준조세”라며 반발했다. 이후 여·야·정 합의로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과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개별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개별 의원안을 검토한 뒤 대안으로 합쳐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대안엔 당초 상생기금 출연 대상에 포함됐던 정부가 빠졌다. 이 의원이 발의한 안은 상생기금 출자자를 ‘정부 또는 정부 외(外)의 자’로 정했지만, 이번에 통과된 안에는 ‘상생기금은 정부 외의 자의 출연금으로 조성한다’고 확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정부는 출연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쪽으로 논의돼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통과된 대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형식적인 법률안 심사를 받은 뒤 다음에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가 합의로 처리한 만큼 국회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것으로 국회 안팎에선 예상하고 있다.
◆수출 기업들 10년간 1조원 내야
이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당초엔 10년간 1조원을 정부를 포함한 민간단체에서 출자하면 됐으나, 정부가 빠지면서 민간의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상생기금은 현재 누가 출자할지, 어디에 얼마를 쓸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관리 운영자만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 다만 무역이득공유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한·중 FTA 타결로 이득을 보게 된다는 논리에 따라 수출기업과 농협 수협 등이 부담하는 큰 방향만 결정된 상태다. 이에 따라 농협 수협,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수출 대기업과 섬유업체 등 수출 중소기업이 기금을 출자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기부금 형태를 띨 것”이라고 했지만, 산업계 관계자들은 “미르재단 등과 같이 비자발적인 형태가 될 게 뻔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국회 농해수위를 통과한 개정안엔 FTA 타결에 따른 정부 재정 투입 규모도 크게 증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FTA 타결에 따른 피해보전직불금을 산출하는 지급단가를 기준가격과 해당연도 평균가액의 차액의 90%로 규정하고 있는 기존 안을 개정안에선 95%로 높였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법안 통과에 따른 비용추계서를 보면, 개정안 통과로 2017년부터 10년간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재정은 2776억1100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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