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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알기/경제기초

대통령의 낙하산

by 큰바위얼굴. 2018. 7. 22.

[강천석 칼럼] '대통령의 낙하산'

조선일보 2018.07.21 03:13

 

경제와 正面 승부만이 대통령 지지 받쳐줘

국민 興 돋워 국가 動力 삼을까, 남의 뒤나 캐라 할까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젊은 시절부터 봐왔던 분 이야기다. "노무현은 성미가 급해요. 오래 참지 못하고 상대의 말허리를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와요. 문재인은 동의하든 않든 끝까지 경청합니다. 그런 태도가 호감을 줍니다." 다음 부분이 중요하다. "노무현은 상대의 말이 옳으면 즉각 받아들입니다. 문재인은 대화 전(前)과 대화 후(後) 입장 변화가 드물고 더뎌요. 신중하다 할까, 집착이 강하다 할까."

 

노무현은 이라크에 국군을 파병했다. 골수 좌파 지지층의 반대가 대단했다. 노무현의 입장 변화는 이라크를 위한 것도 미국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야만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영(陣營) 논리로 보면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국 경제의 대외(對外) 환경 보고를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좌파 주류(主流)가 함께 들고일어났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트럼프가 그 협정이 '미국의 재앙(災殃)'이라고 펄펄 뛰겠는가. 문재인 정권에서 실세(實勢)로 불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때 노무현에게 등을 돌렸다. 중국은 서해(西海) 바다가 자기네 호수라도 된 듯이 휘젓고, 막강(莫强) 일본 해상자위대는 미 7함대를 배경으로 그 뒤를 쫓고 있다. 노무현이 강정 해군기지라는 작은 둥지라도 틀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까. 노무현의 실용주의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19일 조사에서 61.7%를 기록했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란으로 60.8%로 내려앉은 이후 최저치다. 여권(與圈)이 움찔하는 눈치다. 대통령 지지도를 받치는 두 기둥은 감성적 지지와 정책적 지지다. 감성적 지지는 인상·성품·매너가 왠지 호감이 간다는 것이다. 정책적 지지는 특정 정책 덕분에 살림이 나아지고 사회가 밝아지고 나라가 안전해졌다는 정책 효과에 대한 반응이다. 까닭 없이 올랐다가 이유 없이 엉덩방아를 찧는 게 감성적 지지의 특징이다. 정책적 지지 효과는 온돌 바닥처럼 쉬 덥혀지지도 않지만 쉬 식지도 않는다. 문 대통령은 감성적 지지가 높고 정책적 지지는 낮다.

 

훌륭한 경제 성적표는 대통령에게 낙하산(落下傘)과 같다. 다른 지지(支持) 엔진이 꺼져도 안전 착륙을 가능하게 해준다.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마감하자 아버지 부시 대통령 지지도는 90%를 돌파했다. 승리의 잔이 채 식기도 전에 그의 지지도는 경제 성적 높이로 급락(急落)했고 재선에 실패했다. 반대로 클린턴은 그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경제 호황(好況)이 낙하산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사다리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다. 사다리를 만든다고 최저임금도 급하게 끌어올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성장률은 낮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영세 소상공인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선순환(善循環) 주장을 되풀이했다.

 

부산을 가겠다고 고속도로를 탔는데 부산 표지판은 사라지고 평양 표지판만 계속 나타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2배로 높여야 할까. 방향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대통령의 '경청 자세'를 칭찬하면서도 '답답할 만큼 더딘 변화'를 염려하던 분의 이야기가 실감(實感) 난다.

 

대통령을 구름 위로 헹가래 쳤던 남북, 미·북 정상회담 효과는 사라졌다. 보다시피 칼자루는 김정은이 쥐고 있다. 칼날을 쥔 트럼프는 당분간 도리 없이 끌려다녀야 할 판이다. 문 대통령도 뾰족한 수가 없다. 누가 구속되고 누구에게 어떤 중형(重刑)이 선고돼도 국민은 더 이상 통쾌하다 하지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우세스러운 장면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대통령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것은 '정치의 승리'가 아니었다. '한국은 지금 비정상'이라는 증명사진이었다.

 

대통령의 승부처는 경제다. 우리는 신이 나고 흥(興)이 오르면 평소의 두 배 세 배 일을 너끈히 해낸다. 그런가 하면 남의 뒤를 후비고 팠다 하면 가마솥도 구멍을 내는 국민이기도 하다. 국민의 두 기질(氣質) 가운데 무엇을 북돋워 나라의 동력(動力)으로 삼느냐, 그것은 대통령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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