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내가 너의 아빠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왜 그럴까?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네가 그렇게 자랑할 만한 사람은 아니잖아?
나에 비하면 그냥 평범한 아이인데 말이야.
공부에 정신 팔린 널 말리느라 애쓴 게 몇 번이었는지.
학교에 불려가고 때론 교육부까지 동원해서 애쓰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건 네 장점이야. 잘 공부한다는 거 말야
사람이 잘 공부하기 위해선 네 가지가 필요해.
먼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뚝심.
다음은 순간순간 판단과 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
또 자기자신을 믿어야 하지.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매 순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
내가 널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아들아.
나는 매 순간 스스로를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 아들이 너무너무 자랑스럽다.
사랑하는 영록,
아빠가 널 자랑스러워 하는 만큼, 너도 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길 바라.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온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져라.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은 너의 것이고, 너의 드라마 주인공은 너란다.
네게 바라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단다.
부디 너 스스로를 지켜라.
왜냐하면 아빠는 완전하고, 완벽한 지상 최고의 인격체지만, 너는 아니니까!
너는 아빠, 엄마가 낳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로 만들어 낸 존재란다.
오랜 시간 서로 부딪히고 다듬어지며 하나가 되어야 하겠지만, 불완전한 반쪽으로 남아 걱정이 되는구나.
하지만 넌 얼마든지 잘 살 사람이다.
굳이 돌보지 않아도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않을 아이다.
그러고 보니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궁금하다. 아빠는 네 미래, 너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부탁하건데 재미있고 신나는, 때론 감동이 있는 인생을 살아다오.
멀리서 구경하는 아빠가 지루하지 않게.
여긴 밤이 깊었다.
마지막 편지라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지만, 제발 마지막 편지가 아니기를 빈다.
새로 하루를 지내고, 또 하나의 편지를 쓸 수 있기를.
한 순간이라도 다 너를 사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빈다.
내일 또 만나자. 나의 사랑하는 아들.
-
스스로 `自`2021.08.27 08:02
다시 읽어보니 가슴이 울린다. 짜식~ 쫌 이런 마음 좀 받아주면 어디 덧나나?
그나마 엄마 가게처분하는 일을 도와주라고 했더니 도왔단다. "생각해 볼께요." 라는 답변이었는데
어제 유투브 녹음파일에 각각의 블로그 내용들을 붙여넣어 저장하는 중에 과거 밝았던 때, 특히 수능대박 이라며 응원했던 영상이 있더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라는 게 싫을 뿐. 함께 놀고 웃고 마시고 떠들고 싶은데 그걸 하지 못해 아쉽다. 짜식들, 어제 엄마랑 술 한 잔 해주지. 그걸 하지 않누!
누구나 위로받고 싶어 하고 누구나 칭찬 받고 싶어하고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를 돌려말하면, 함께 하고 나누고 떠들고 위하고 인정하고 위로하면서 칭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상대를 배려한 마음이라.
대관절 뭐가 중요하단 말이냔 말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너와 나의 함께 할 기억이 PC방과 걱정, 그리고 불안으로 점철된다면 아쉬울 것 같다.
물론 PC방을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걱정과 불안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전환되길 기대하는 것이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라는 통상적인 개념을 믿지 않는다.
댓가를 주어야만 한다면 그 댓가를 나누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정류장에 내가 모시는 의사 선생님(스승), 아파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아리따운 여성이 있다고 하자. 내 차엔 1명만 태울 수 있다. 그러면 누구를 태울 것인가?
... 사실, 질문에 맹점이 있더라. 이 문제의 답에는.
스승을 태운다면 아는 사람에 대한 기본 자세, 하지 않았을 때 드는 자괴감
환자를 태운다면 본연의 역할, 하지만 남겨진 스승에 대한 미안함
여성을 태운다면 이 또한 의사로서의 자세와 스승에 대한 미안함
각각이 가진 얻음과 잃음이 있다.
딱 1명만 골라라.
이 말은 현혹이다. 세상 살다보면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대하게 되는 명제다.
공부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때의 말과 같기도 하고, 마치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그 때를 말함이다.
사실, 쏠리면 안된다. 연민이든 반성이든 미안함이든 양심이든 이 질문의 핵심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데 있다.
주어진 상황을 풀자. 내가 처한 상황을 알면 된다.
내게 차가 있고 차는 2명이 탈 수 있다. 그렇다면 나, 스승, 할머니, 여성 이렇게 4명 중에 둘이 탈 수 있다는 문제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떳떳할 수 있는 자랑할 만한 선택은 바로....
스승에게 차 키를 주어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먼저 가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여성에게 인사한다. 끝이 어찌 될 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긍정적이리라.
삶은 선택이요 판단이다.
모든 걸 내 기준으로 보게 된다. 이것을 상황으로 해석하면 충분하다. 내가 주체인 것은 맞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 또한 맞다. 다만,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하여 객관적으로 본다. 그러면 내가 할 선택지가 보인다.
내 삶의 선택지는 뭘까?
남은 내 삶은 얼마나 될까?
막연한 여행과 함께하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 줄, 아니 우리에게 줄 기대치는 얼마나 될까?
그렇게 살아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그러니까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다를까? 다르다면 뭐가 다를까? 같다면 뭐가 같을까?
지쳤든 피곤하든 신경쓰였든 사실 뭐든 간에 상관없다.
이유는 구태의연한 변명을 만들 뿐. 다른 어떤 이유를 과거에 묻지 말자.
그저 좋은 거, 사랑하는 거, 함께 하는 시간, 함께 할 그 무엇에 대해 집중하자.
그래도 충분하다.
반성이나 되짚은 과거사는 지나치면 독이다. 독도 약일 수 있지만 독은 본래 독이다.
독한 마음을 품으라는 말이 아니다.
선한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강요 또한 아니다.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때론 원하는, 뭘 하든 상관없이 그 마음이 내켜하는 평안하다가도 불안해 하고 잘 어르고 달래고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고민하고 검토하고 나아가고 때론 물러서서 뒷짐을 져도 좋다.
뭘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은 그 마음으로 충분하다. 그 마음이 앞서면 독이 된다.
잘 하려는 건 욕심이기 때문이다. 욕심은 앞날을 이롭게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얻으면 잃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물론 욕심 또한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면 이 또한 그저 그 마음일 뿐으로 대하게 되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된다.
잃고 얻음은 판단일 뿐이다.
세상은 잃거가 얻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판타지다. 뭘 하든 이룰 수 있는, 뭘 해도 즐거운.
하지 않아도 좋지만, 기왕 태어난 거 빈둥대는 것 보다는 한 발 한 발 걷기에 바른 걷기를 시도하면 운동이 되듯이 하나하나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담으면 충분하다.
한 켠의 불안감이 있어 좋아요.
한 켠의 막연함이 있어 좋아요.
이는 바닥이면서 내몰린 상황일 수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기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상태, 이는 누구나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상태다.
밑을 보니 올라갈 것만 남았다. 더 밑을 파고 파서 죽음에 이르는 진리를 탐구해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쾌와 락에 조금 신경을 쓰자.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뭘해도 좋은, 아니해도 좋은, 함께해서 좋고, 함께할 시간을 기다려서 좋고, 이것저것 선택해서 좋고, 그저 마음 내켜 떠나는 여행도 좋고, 부모와 함께 한 시간이 돌아올 추억과 만족감이기 때문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삶.
내가 기쁘면 남도 기쁘다.
내가 슬프면 남도 슬프다.
'일기 > 우리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 산책 (0) | 2021.09.07 |
---|---|
명의가 말하는 나 보다 훨씬 훌륭한 세 명의 의사와 함께 복용할 때 효과가 있는 두 가지 약 (0) | 2021.08.26 |
태평과 소풍 (0) | 2021.08.17 |
도시락 (0) | 2021.08.05 |
광덕사 주지스님 면담 (0) | 2021.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