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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나의 이야기

거울 이야기: "너에게 나는 뭘까?"

by 큰바위얼굴. 202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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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산책길, 강아지 해나랑 예티와 함께 나왔다. 어제는 이불을 덮는 나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며 나무라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나를 너무 막대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자다 말고 일어나 불을 켜고, “어디 얘기 좀 해보셔야 하냐”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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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이야기 속에서, 그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평소 당신이 어울림 속에서 나를 소재로 삼아 얘기하더라도 최소한 내 자리는 있을 거라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 외면당한 채, 마치 다른 얘깃거리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섭섭했다. 전화를 통해 이런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너도 뭐 다르냐”는 말이 계속 반복되었고, 과거와 현재의 갈등으로 주제가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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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풀리지 않는 한 접근하지 말라며 혼잣말을 했다. 해결이란 게 무엇일까? 내가 만족할 때까지, 혹은 당신이 관계에서 선을 지켜줄 때까지일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엉뚱한 모습을 보이는 나는 대체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고민한다.

세상 속 반복되는 흐름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당신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나는 더욱 흔들린다. 토요일에, 서로가 어느 차량이 빠른지를 놓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신호등에 다다라서 보니 상대 차량이 이미 앞서 있던 걸 보며 “이럴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심정을 표현했는데 인정하지 못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데, 정말로 놀랐던 걸 표현한 건데.

그런데도 상대는 내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내가 반응하고 답하는 모든 것이 마치 허공에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내 인정 욕구를 꺼내놓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내 말을 수긍하거나 관심을 주지 않고, 나와 있을 때에도 다른 데 주의를 기울인다. 말을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져만 간다.

그렇게 전화를 걸 때 내 속마음은 “나를 너무 외면하지 말아줘”였지만, 상대의 반응은 마치 “나는 너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식으로 느껴졌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계에 푹 빠져있는 모습, 점점 멀어지는 감정들 속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져가는 듯하다. 내 인생에서 이미 사라진 인연들처럼 느슨해진 고리에서 다시 다가오는 감정들이 들린다. 함께하면 더 좋은 관계들이 무엇인지, 그들을 위한 마음을 글을 통해 전하려는 나를 따뜻하거나 날카롭게 깨우쳐주는 이들은 마치 내 자화상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말처럼, 내가 행동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곧 그녀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가깝다” 또는 “멀다”, “허무하다”는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20여 년을 함께 살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 당신은 내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을 때까지 혼자 지내. 나와 살 자신이 있다면 그때 만나.” 이런 말들이 가끔 너무도 선명하게 들린다.

배드민턴이 그녀에게 준 영향을 보면, 그녀의 세계 기준이 내 곁을 떠나 주변 이웃 관계로 넘어간 듯하다. 그녀는 이젠 더 이상 나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관계에 대해 이미 체험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왜 그녀는 나를 일정 기준에 맞춰 대하려 하고, 그만큼 나도 대하기를 바라며, 나를 온전히 나로 보지 않고 그 기준으로 보려 하는 걸까? 그럴 때는 듬뿍 대하지만, 그만큼 대답을 요구하는 느낌이 든다.

이건 보상 심리일까? 흔들릴 때마다 상처를 입는 건지, 그녀의 히스테리성 말투와 차가운 눈빛이 느껴진다. 마치 우리가 그저 그런 관계일 뿐이라는 듯 차갑고도 무미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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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뱉어낸 말은 다가갈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말을 해도 전해지지 않고, 결국엔 그녀의 입에서 “정리나 똑바로 해라, 너나 잘해라”라는 말이 나올 뿐이다. 나는 그렇게 돌려 말해도 그녀는 같은 말로 나를 대한다. 진심을 보여달라는 내 마음이 닿을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녀도 함께 좋아할 수 없는 걸까? 내가 관심 갖는 것을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은데, 왜 그렇게 마음을 나누지 못할까? 일상이 깨지는 것을 싫어하며 새로운 자극을 막는 그녀의 태도 속에서, 나는 삶의 재미와 흥미를 찾고 싶다.

지금 내 말조차도 내 본심을 드러낸 걸까? 도대체 내 진심은 뭘까 묻고 싶다. 내가 인정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인정하거나 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잘하고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뭘까 궁금하다.

요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만큼 잃어버린 상실감도 있지만, 인생에 별거 있나? 내게 즐거움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구나 부딪히며 사는 것을 좋아서 견디는 건 아닐 텐데,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든 소설이든, 글을 쓰거나 주식을 하거나, 산책을 하든, 결국 내 모습 속엔 삶의 재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삶의 방향을 지탱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지만, 이제는 내가 행동하는 것이 꼭 상대에게 그대로 반영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더 이상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모습이 꼭 나라고 여기지 않는다.

거울은 단순히 나를 비추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해석되어 나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와 같다. 그것은 나에게 “함께 살아가려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인생에서 내려놓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결국 이번 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축복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연과 하나 되는 과정 속에서, 내 몸을 이루는 원소들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 흔적들이 이어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며, 다시금 전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터널을 지나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 대화를 시도할지, 아니면 그저 묵묵히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따뜻했던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왜 달라졌는지 의문이 든다. 햇살 아래 어제도, 그제도 걷고 산책했다. 내 진심은, 내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바람과 그녀의 바람은 무엇일까? 달리고 뛰며 건강을 찾으려는 이 삶에서, 낯설지만 지루하게 살기엔 아깝다고 여겨진다. 부딪히고 섞이며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거울에 비친 그녀의 말과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만족스러울 때, 그게 바로 잘 산 것 같다고 느껴질 것이다. 나를 나로 보지 않는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거울은 내 눈 밖에 있고, 거울 속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바라보고, 느끼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거울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내가 거쳐온 거울들이 어느새 인생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몇 년이란 시간이 이 세상을 구성하고,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 면면들이 결국 세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앞서 나가며 끝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다면, 그 답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 답을 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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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싸운다. 속내를 풀어보았다. 노골적으로. 마음으로 읽혀지길 바라면서, 김성호 w/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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