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달이 잡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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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좋아, 여러 단어를 떠올려 보자. 나이, 성장, 세상, 행복, 실수, 지혜, 여유로움… 또 뭐가 있을까? 아, '노터치'도 있겠다. 단어 자체로서의 '노터치'도 존재하지. 바람, 기억, 희망, 성공, 실패, 재미, 흥미… 아, 내가 떠올리는 단어들이 짧구나. 의미 부여 없이 그냥 단어만 나열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자동차' 같은 단어를 넣기는 애매하네. 물론, 누군가에게는 자동차도 의미 있는 단어일 수 있지.
자동차는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한때는 운전을 너무 하고 싶어서, 자동차를 갖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단순한 이동 수단이 되어버린 것 같아. 운전하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설레거나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한 세대로 본다면, 나는 여전히 자동차에 대한 어떤 욕망을 다 채우지 못한 것 같기도 해.
앞으로 자동차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변할까? 조만간 운전의 재미나 스릴을 직접 경험하기보다는, TV 속 레이싱 경기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는 시대가 될 것 같아. 연필을 쓰던 시대에서 타자로 넘어가듯, 운전도 그런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거지.
자동차 운전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질까? 아이들, 아내, 가족, 부모… 여러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이 정말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선택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돼.
예전에 크레인 기사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크레인과 함께 넘어져 죽을 뻔한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 다시 크레인을 탈 수밖에 없었지. 그의 딸은 로스쿨에 진학했지만, 그는 위험한 직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었어. 만약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면, 그는 다시 크레인에 올라갔을까?
비슷한 맥락에서,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려 보면, 과거에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관광업의 일부였어. 단체 여행을 기획하고, 코스를 짜고, 맛집을 찾아가며 직접 안내하는 일이었지. 단순한 '운전'이 아니라, 경험을 전파하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데 '관광'이라는 말 자체가 단순히 '돌아다니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경험을 남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야.
결국, 직업이라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살아 있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찰나 같은 순간들이야. 우리가 '왜 그랬을까?'라고 질문해도, 명확한 답은 없는 경우가 많지.
파이어족 이야기도 떠오르네. 어떤 사람들은 40대에 조기 은퇴하고 자유를 누리지만, 결국 다시 일을 찾는 경우가 많아. 여행만 다니다가도 결국 자기 전문 분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결국,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단순히 생계 때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는 거야.
오늘 주제는 자동차인가? 달인가? 아니면 '경험'일까? 자동차도, 달도, 그리고 우리가 가진 욕망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 한때 갖고 싶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것이 되고,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지. 공기나 집처럼, 없어서는 안 되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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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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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달을 가렸다.
또 한 번은 산이 달을 가렸다.
결국 사진에 담는 걸 포기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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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창밖을 보면, 바람은 불고 해는 기울어 있다.
시간은 참 공평하게 흐른다지만, 내겐 그게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은 저 벽을 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벽 앞에서 서성이기만 하는 걸까.
어느새 커피는 식고, 서류는 쌓이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만 남는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책상을 정리하다가 문득,
구겨진 메모지 속에서 언젠가 적어둔 문장을 발견한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
그래, 현실이야 시궁창일지 몰라도,
그렇다고 멈출 순 없잖아.
이왕이면 발버둥이라도 쳐보자.
시궁창이라면 기어라도 나가 보자.
뒷걸음질 치다 우연히라도 빛이 닿을지,
발끝에 작은 돌멩이라도 걸려 우연히 다른 길이 보일지,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내쉬면서 다시 하루를 주워 담는다.
이렇게라도 나아가는 게,
어쩌면 나만의 방식으로 벽을 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둠이 내려앉는 창밖을 보며,
오늘도 그렇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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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달을 가렸다. 또 한 번은 산이 달을 가렸다. 결국 사진에 담는 걸 포기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잡으려 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 그러나 결코 닿지 않는 곳에서 달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건물과 산은 내 시선을 가로막았고, 달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가려다 발을 헛디딜 뻔했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섰다. 무모한 욕망으로 발을 들이밀면 모든 것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달을 향한 마음까지 멈춘 건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늘 달을 쳐다보며 꿈을 꾸었다. 달이 내게로 내려와 손에 들어올 것 같았고,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달은 그저 저 멀리 떠 있는 존재로 남았다. 멀고, 차갑고, 쉽게 닿을 수 없는 것.
세상은 치열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아귀다툼처럼 거칠었고,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며 각자의 몫을 챙기는 곳이었다. 그 안에서 달을 바라보는 일은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달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곳엔 손에 잡히지 않아도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누군가는 꿈을 헛된 것이라 말한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쫓는 건 어리석음이라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꿈은, 이상은, 잡히지 않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손에 쥘 수 없는 것이기에 더 간절해지고, 그 간절함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달을 잡으려 한다. 손으로 붙들 수 없더라도, 적어도 그 빛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달은 언제나 거기 있다. 내가 걸어가는 길 어디에서든,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그러니 나는 다시 한 번 달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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