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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K-Food· ODA

뚜벅이들의 만찬, ‘코스 요리’ 안 부러워

by 큰바위얼굴. 2013. 10. 29.

뚜벅이들의 만찬, ‘코스 요리’ 안 부러워

[한겨레 2013.10.24]

 

누리꾼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서울의 길거리 맛집 지도. esc가 기획하고, 2011년부터 맛 지도를 만들었던 한화데이즈(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겸 페이스북, 유튜브)가 제작했다 (클릭하면 확대). 한화데이즈 제공

[esc] 요즘 인기 폭발 길거리 음식 열전

떡볶이, 튀김, 어묵의 건재함을 파고들며 길거리 음식의 새로운 강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잡채호떡, 지팡이 아이스크림, 왕플 등 쌀쌀한 가을바람 앞에 긴줄을 세우는 인기 먹거리들을 맛봤다.

2013년 10월. 서울 남대문시장은 호떡 불판만큼이나 뜨겁다. 바로 그 호떡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부터 호떡 노점에 긴 줄이 선다. “요새 완전히 떴어요. 부럽죠.” 상인들의 증언이다. 겨울철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호떡. 낯선 이에게 어깨를 붙이고, 흘러간 가요처럼 서글픈 가을바람을 등에 업은 채, 긴 줄에 편승해 맛본 호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호떡이 아니었다. <우리 생활 100년, 음식>에 실린 사진에는 1930년대 호떡 파는 꼬마 노점상이 있다. 추측하건대 꿀호떡일 게다. 그 호떡이 변하고 있다.

뚜벅이들의 만찬, 길거리 음식은 이제 평범한 호떡이나 떡볶이, 어묵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개성과 아이디어로 무장해 도시 탈환에 나섰다.

충남 천안에서 올라온 김혜미(32)씨, 일명 동윤 엄마는 부끄러워하면서 말한다. “호떡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우리 동네와 달라요.” ‘게이트(gate) 3’ 간판 앞 노점의 호떡을 들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인데 납작하지 않다. 도톰하고 갈색이다. 크로켓이 연상된다. 내용물도 다르다. 푸짐한 당면과 부추, 당근 등이 만개한 꽃처럼 제 성질을 못 이기고 튀어나온다. 따로 간판이 없는 노점의 사정상 이곳을 ‘게이트 3’ 호떡집이라고 하자. 차림표에는 ‘해물야채호떡’, ‘김치야채호떡’, ‘야채호떡’, ‘꿀호떡’이 1000~1500원이란 가격과 걸려 있다. ‘야채호떡’이라 하나 이것은 엄연히 ‘잡채호떡’이다. 과거 채소 반죽에 삼립식품 ‘야채호빵’의 속재료과 같은 걸 넣은 호떡을 ‘야채호떡’이라 불렀다. 이것은 오직 당면 위주의 잡채뿐이다. 튀김 같은 바삭한 식감도 큰 특징이다.

 

1시간가량 줄을 서야 먹는 남대문시장 잡채호떡 노점 앞.

 

21년 전부터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주인 김정균(42)씨는 15년 전에 남대문시장에서는 자신이 처음 개발했다고 한다. ‘남대문 잡채호떡의 원조’라 주장한다. 상인들은 ‘게이트 2’ 호떡집이 먼저인지 김씨가 먼저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내가 분식점 군만두를 보고 아이디어 냈어요.” 굽는다기보다 튀긴다는 표현이 더 맞다. 약 18ℓ가 든 기름통에 호떡이 둥둥 떠 있다. 3분이면 먹을 수 있다. 새우, 조개, 오징어, 김치도 재료다. 하루 평균 1000개가 팔린다. 남대문시장의 ‘만두의 시대’가 가고 ‘잡채호떡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1년 전부터다.

현재 시장에는 잡채호떡집이 예닐곱군데. ‘게이트 2’, ‘게이트 5’ 앞 노점과 저녁 4시쯤에 나오는 ‘이가네 호떡’이 유명하다. 특히 긴 줄로는 ‘게이트 2’ 호떡집이 1등이다. 오후 4시에도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700~1000원의 저렴한 가격이 손님을 끌어당긴다. 노점 앞 기업은행 남대문시장점 벽에는 ‘은행 안에 호떡 반입 금지 협조바랍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점은 한때 호떡 냄새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 인사동의 길거리 음식도 무시 못할 존재들이다. 원래 이 동네 강자는 쌈지길에 있는 ‘똥빵’이었다. 먹는 것과는 상극 중 상극인 똥. 그 모양의 풀빵이다. ‘똥치미’ 캐릭터로 만든 이 풀빵은 4년 전부터 날개 달린 듯 팔렸다. 주인 백성호(48)씨는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관심이 많다”며 <비비시>(BBC)를 비롯한 국외 방송에도 소개됐다고 한다. 인사동을 메운 이들은 ‘똥’을 한 개씩 들고 다녔다. 지난 5월부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양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의 크기인 유(U)자 모양의 ‘지팡이 아이스크림’이 정상에 올랐다. 거리는 U자의 물결이다. 이 아이스크림을 파는 ‘구멍가게 갤러리’는 역시 긴 줄이 선다. 겉은 옥수수과자, 안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3000원. “완전 신기해요. 서울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날 거예요.” 수학여행차 전남에서 온 사창초등학교 6학년 김하늘양에게 서울은 빌딩숲도 아니고 화려한 네온사이도 아닌, 지팡이 아이스크림이다. 친구들도 한마디씩 한다. “중독성 있어요. 겉은 바삭, 속은 달콤해요.” 까르륵 웃는다. 조춘호(39) 사장은 원래 종로 쪽 어귀에서 노점을 했다. 지난 5월에 지금의 터로 옮긴 뒤 ‘급 인기몰이’ 중이다. 특허도 냈다. 그는 23살부터 인사동 붙박이었다. 인사동의 명물 ‘궁중타래’만 17년간 만들어 팔았다. 우연히 인천 월미도의 길거리 음식, 지팡이과자를 보고 뇌가 번쩍했다. 그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은 조씨의 아이디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줄 몰랐어요.” 외국인들도 사로잡았다. 두번째 방문이라는 인도네시아인 이르나 아달레이나(51)는 “재밌다. 맛있다. 또 오면 먹으러 올 거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터키의 전통, 살렙 아이스크림(야생 구근을 말려 가루로 만든 살렙에 우유와 설탕 등을 넣어 만든 것)을 파는 노점은 중력을 비웃듯 거꾸로 들어 묘기를 펼친다. 인절미처럼 쫀득해서 안 떨어진다.

 

 

서울 남대문시장에 있는 잡채호떡집. 게이트5 앞에 있다. /박미향 기자

 

반을 쪼개면 푸짐한 당면과 야채가
튀어나오는 고소한 잡채호떡
보통 와플 두배 크기에
달콤 바삭한 맛의 왕플
2000원이면 뱃속 든든

 

길에서 시작했지만 대형마트까지 입점하는 등, 제도권에 입성한 길거리 음식도 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 감자 한 개를 기계에 넣자 얇게 잘린 감자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나온다. 꼬치에 꿰자 길이가 성인 팔만하다. ‘회오리감자’다. 이봉구(43) 사장은 2006년에 감 깎는 기계를 보고 이 먹거리를 개발했다. “2007년 명동, 대학로에서 시작했는데 현재 롯데마트, 백화점에도 입점했어요. 중국 대규모 프랜차이즈업체와 손잡고 중국에서도 팔아요.” 호텔 요리사 출신인 이씨는 주방을 떠난 뒤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었으나 아이엠에프(IMF) 폭탄을 맞고 줄곧 식품기계 제조업을 했다.

‘비닐팩 칵테일’도 대학로의 명물. 4~5년 전부터 신기해 찾는 이가 많다. 주인 김민규(45)씨는 “요즘 속상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어려 보이면 신분증 확인해요. 그 확인을 안 한 다른 지역 팩 칵테일이 최근 언론을 타면서 인식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길거리 음식도 우여곡절 인생사를 비켜갈 수는 없나 보다. 최근 최고 스타는 ‘왕플’이다. 일반 와플보다 대략 두 배 크기인데 가격은 2000원. 주말에는 왕플 노점이 있는 혜화역 1번 출구가 긴 줄로 혼잡하다. 1년 반 전에 시작한 김도일(54)씨는 “와플 하면 비싸잖아요. 여긴 주머니 얇은 젊은이들이 많아요. 맛은 (전문점과) 같고 가격은 싸고, 그게 비결”이라고 한다.

음식평론가 김학민씨는 길거리 음식의 뿌리를 장터 음식으로 본다. 장이 서는 날은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간단한 요깃거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지금 길거리 음식은) 60~70년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된 상황과 관계있어요.” 도시가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을 만든다. 그런 이유로 부산도 대표 명소다.

 

길거리음식, 회오리감자와 회오리소시지감자. /박미향 기자

 

남포동 씨앗호떡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페루산 대왕오징어다리를 그릴에 굽는 곳이나 스페인 전통음식 추로스를 파는 노점도 생겼다. 대왕오징어다리꼬치 노점을 하는 최영의(58)씨는 “피프광장에서 우리가 유일하다”면서 고소한 향을 피운다. 바로 옆에는 ‘남포타코야끼’가 풀빵기계에서 익어간다. 지난 3월 연 추로스 노점은 인기 폭발이다. 30㎝에 1000원. 문수진(46)씨는 대학생 딸이 아이디어를 주자 일본에 건너가 직접 배워 왔다. 문씨의 어머니 임선이(69)씨가 한마디 한다. “내가 이 자리에서 40년 넘게 액세서리 노점 했지. 옛날에는 오징어 장사밖에 없었어.” 옥수수, 찹쌀, 계핏가루에 우유와 버터를 넣어 반죽한다. 주문하면 바로 튀겨 따스한 온기가 살아 있다. 미대를 다니는 문씨의 딸이 안내판을 만들었다. 추로스는 모녀 3대의 작품이다. 타이 여행을 다녀온 이들에게는 낯익은 ‘로띠’도 새 얼굴이다. 식품회사 연구원이었던 이기민(46)씨는 타이 출장길에 반해 “내 일을 해보자” 결심하고 거리로 직장을 옮겼다. 연구원답게 우리식을 가미해 새 맛을 개발했다. 만드는 광경은 묘기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밀가루 반죽을 모눈종이보다 더 얇게 편다. “안 찢어지냐고 물어요. 오랫동안 훈련했지요.” 가격은 3500원. 6가지 맛. 요즘 부쩍 유튜브, 블로그에 오른다. 반한 관광객들이 올리는 것이다. 남포동 피프광장에 대구의 유명 만두, 납작만두도 상륙했다. 대구 만두가 간장에 찍어 먹는다면 이 거리는 고추장 양념과 양배추 무침에 비벼 먹는다. 남포동 떡볶이 노점도 뭔가 다르다. 어묵 사이로 떡꼬치가 보인다. 일명 ‘물떡’. 우리 가래떡을 꼬치에 끼웠는데 짭조름한 맛이 특징이다. 70년대 과자만 모은 노점은 재미있는 눈요기도 제공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광장은 밤을 친구삼은 이들의 발길로 더 북적댄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의 씨름 편을 보면 엿장수가 보인다. 지금의 길거리 음식과 다르지 않다. 어디까지 진화할까! 초밥도 에도시대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길거리 음식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서울 인사동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팡이아이스크림. ‘구멍가게갤러리’에서 판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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