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유통연구소 외면하는 유통업계
서울신문 2015.4.7
“글쎄요. 3년 전만 해도 보고서가 꽤 나왔는데 요즘은 다들 시장에 대응하기도 급급해서….”(A백화점 마케팅팀 상무)
“솔직히 저희도 답답합니다. 간간이 유통학회나 증권가에서 발행하는 보고서를 참고하는 게 다예요.”(B대형마트 홍보팀 과장)
지난 2월 본지는 신년기획 ‘국경 없는 쇼핑시대’를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글로벌 유통공룡’의 한국 상륙과 국내 유통업계의 해법을 심층적으로 조명한 기사에 적잖은 반향이 잇따랐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유통업계의 현실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한 백화점은 올 유통산업 전망조차 내놓지 못했고 또 다른 대형마트는 국산 제품의 판로가 확대될 것이라는 순진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편의점업계 역시 매출 목표만 수립했을 뿐 유통산업의 생태계 변화에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유통업계가 기본적인 통계자료마저 언급조차 못하는 것은 제대로 된 유통연구소가 없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2007년 유통산업의 싱크탱크를 표방하며 유통산업연구소를 세웠지만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패션유통연구소로 이름을 바꾸고 그룹 산하 미래전략센터에 관련 업무를 넘겼다. 이후 미래전략센터와 패션유통연구소는 임직원 대상의 내부 자료를 만드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신세계(004170)그룹의 유통산업연구소도 지난해 미래정책연구소로 이름이 바뀐 뒤 독립 조직에서 기존 부서로 통폐합됐다. 한때 30명에 달했던 인원이 5명으로 줄자 매년 정기적으로 발간하던 ‘유통업 전망보고서’와 같은 양질의 보고서도 자취를 감췄다. 현대백화점(069960)그룹도 영업전략실 산하에 현대유통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인력이 3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유통연구소 없는 유통업계의 현실은 글로벌 기업의 공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정보기술(IT)업계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KT는 2008년부터 KT경제경영연구소 산하 IT포털 ‘디지에코’를 통해 매년 수백건의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고 SK텔레콤은 올 초 스마트폰 과몰입 등의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착한ICT연구소’까지 신설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유통산업은 어느 분야보다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유통연구소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비용이 들고 운영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유통연구소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미래도 점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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