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한우를 최고로 치는 사회
한국일보 2015.9.10
요즘 언론이나 SNS를 중심으로 한우 등급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2014년 현재 한우는 약 280만 두, 육우(젖소 거세우)의 경우는 92만 두 정도 사육되고 있는데 한우는 약 80만두 정도 도축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 무려 66.2%가 1등급을 받았다.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원래 한반도의 한우는 역사나 동요 속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황소, 흑소, 칡소(얼룩소), 적소 등 종류도 다양했다. 소는 집안에서 식구로 대접받던 가축이었고, 함부로 도축이라도 하면 나라에서 벌을 주던 귀한 노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는 유제품의 원료를 얻기 위해 기르거나 고기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육되고 있기에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한우는 방대한 양의 과학과 데이터가 접목된 엄청난 노하우와 돈이 들어가는 ‘산업’인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1++A등급 한우.
한우의 등급제만 봐도 축산업에 데이터와 과학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1++등급, 1+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등위등급 이렇게 6등급으로 나뉘는데 이건 육질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또한 육량등급이라고 해서 도체(원래 소)의 중량, 등지방두께, 등심단면적을 측정해서 고기 양의 많고 적음을 나누는 등급도 있다. 이는 1++A등급, 1++ B등급, 1++C등급과 같이 A, B, C를 붙여서 다시 나누며 표기할 때는 육질등급과 같이 붙여 적용한다. 이렇게 나뉘는 한우의 육질등급과 육량등급 중에 일반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육질등급은 근내지방도, 지방색, 육색, 조직감, 숙성도 이렇게 5가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데 그 중에서 근내지방의 함량과 지방의 색깔은 한우 등급을 ++나 +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판정기준이 된다.
바로 이 등급을 나누는 방법이 SNS 상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도 고기요리를 팔고 있는 요리사이지만 이 문제 제기는 옳다고 본다.
한우건 육우건 수입산 소고기건 간에 지방이 많을수록 더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 소고기 뿐이겠는가? 돼지고기도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이 기름기가 적은 등심이나 안심보다 판매량이 높다. 사람들은 닭고기도 가슴살 보다는 기름기가 많은 다리살이나 껍질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그 어떤 고기라도 일부러 기름만을 굽거나 먹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고기를 굽거나 삶고 나면 하얗게 기름이 굳는데 이걸 찬물로 설거지 하면 세제를 사용해도 잘 씻기지 않는다. 불포화 지방이 더 많이, 더 넓게 살 속에 퍼져 있다는 이유로 더 높은 등급으로 판정을 해주고 있는 등급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우가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며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국민 건강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일부러 지방이 더 많이 포함되도록 정책적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요즘 한우는 31개월에 도축을 하더라도 600kg을 훌쩍 넘긴다. 예전에 한반도의 소는 400kg을 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고 한다. 억지로 비만 체형을 만든 셈인데 그걸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는 과연 이로울까 싶다.
물론 일본의 고베산 소고기처럼 일부러 곡물 비육만을 해서 마블링이 많아지도록 키우는 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목초를 먹이고 운동량을 늘리면 소는 우리가 어렸을 적 먹던 소고기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곡물을 먹이고 운동량을 줄이면 근내지방이 늘고 소고기 특유의 냄새가 줄어든다. 요즘 세계적으로 다시 곡물보다는 초목을 먹이면서 건강하게 키우는 소를 좋은 소고기로 인식하는 추세인데 우리의 축산업은 역으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걱정스럽다.
몇 해 전에 캐나다에서 함께 일했던 일본인 친구와 지역 특산물로 한우가 유명하다는 지방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구이집에 간 적이 있다. 파는 부분은 등심, 꽃등심, 안심, 갈비살 등 살코기 뿐이었고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얼마 안 나오는 내장은 왜 없냐고 물었더니 솔직히 내장은 기름이 너무 많이 끼어서 내장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고기를 구워 먹던 중간에 그 친구가 놀라면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본인들도 고베산 소고기의 부드러움과 지방을 좋아하긴 하지만 고베산 소고기를 한국인 만큼 한번에 많이 구워 먹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한우를 키우는 농가의 문제점이나 한우의 등급을 매기는 축산업 전반의 문제 같은 거창한 주제나 한우를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하며 아는 척을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너무 지방 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또 너무 많이 먹지 않는가 생각해 볼 문제란 말이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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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마블링 ‘무죄’
경향신문 2015.9.13
이른바 ‘쿡방’ ‘먹방’과 같은 먹거리 프로그램들이 방송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런데 식생활에 대한 높아진 관심 속에 덩달아 뜨거워진 사안이 있다.
잊을 만하면 수면 위에 오르고 있는 쇠고기 근내지방, ‘마블링’ 얘기다. ‘눈꽃’이라 부르며 근육 속에 고루 퍼져 있는 지방의 높은 분포비율에 환호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로 극찬을 했던 마블링. 요즘은 어떠한가.
마블링을 ‘포화지방의 결정체’ ‘콜레스테롤 덩어리’로 치부하며 ‘성인병 발생의 온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 원인을 마블링 중심의 쇠고기 등급제라 꼬집으며 등급판정 기준을 도마에 올려놓고 있다. 게다가 호주 등 축산 선진국의 청정우 이미지와 한우 근내지방을 비교하며 축산물 소비문화에 대한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앞서 의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다른 나라는 근내지방이 높은 쇠고기를 좋지 않은 쇠고기로 인식하고 있을까? 국내 최고 등급인 1++등급 쇠고기 등심의 지방함량은 19%이다. 그렇다면 호주는 어떨까? 호주의 등급체계는 1~9등급까지 총 9단계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높은 등급인 9등급은 지방함량이 21%로 오히려 한국의 1++등급보다 높다.
또한 우리와 비슷한 등급체계를 보이고 있는 일본은 1~5등급 중 최고인 5등급의 지방함량은 31.7%(부위에 따라 44.9%까지 보이기도 한다)에 이른다. 즉, 우리나라만 근내지방을 기준으로 잘못된 등급을 부여한다는 비판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2009년 9월18일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횡성한우의 캐나다 수출을 위해 ‘캐나다우육수출협회 연례 마케팅 세미나’에서 횡성한우(1++등급)와 캐나다 쇠고기(Prime, AAA, AA, A등급)의 비교 시식회를 진행한 것이다.
대표적인 육류소비 시장에서 벌어진 행사에서 횡성한우는 미각과 더불어 시각적 품질 판단에서도 캐나다 최고급육과 비교해 최고 평가를 받았다. 맛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다만 캐나다와 같이 육류 섭취량이 많은 나라에서는 지방함량에 따라 일상생활과 특별한 날로 구분해 즐기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10.3㎏으로 하루 평균 28g 정도이다(2014 농림수산식품 주요 통계, 농림축산식품부). 이 소비량을 모두 1++ 한우 등심으로 먹더라도 총 지방 섭취량은 5.3g에 불과해 1일 지방 공급량인 79.6g(2012 식품수급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6.7%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쇠고기 소비량의 큰 차이는 외면한 채 마치 쇠고기가 불량식품인 것마냥 비판하는 목소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마블링 중심의 등급체계 개편을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한 냉철한 판단도 필요하다.
등급판정 기준은 그야말로 기준이다. 즉, 길이를 재는 ㎝나 무게를 재는 ㎏과 같이 하나의 척도로서 마련됐다. 일부 이익집단이 그들의 가치를 투입해 마련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두루 활용할 수 있을 가치판단의 잣대를 두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쇠고기등급제이고, 등급판정 기준이다. 사회의 기조가 변화한다고 해서 기준이 바뀌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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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 있으면 좋다?..."지방 많은 소고기일뿐"
연합뉴스 2015.9.14
지방함유량 등으로 소고기 등급을 매기는 현재의 등급판정기준을 식품영양과 안전의 관점에서 새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좋은 소고기임을 인증하는 '소고기 등급제'는 고기의 신선도나 안전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농림부의 '축산물 등급판정 세부기준'에 따라 현재 국내산 소고기에 대해서는 근내지방도(지방함량), 고기색깔, 지방색깔, 조직감, 성숙도를 기준으로 등급을 결정한다.
지방을 많이 함유할수록 1++ 등급을 받으며, 지방이 적으면 3등급을 받는다.
고기 색깔(육색)이 선홍색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고, 검붉으면 낮은 평가를 받는다. 지방색깔이 하얄수록 좋고, 누런색이면 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정부가 지방함량과 색깔에 근거해 소고기 등급을 매기면서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마치 좋은 고기라는 잘못된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김 의원은 "마블링은 단지 지방일 뿐이고, 지방은 몸에 쌓일 수 있기에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견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국민의 영양 관리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국민에게 성인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지방을 많이 먹도록 권장하고, 소비자는 1++과 같은 지방많은 소고기를 비싼 가격에 먹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런 소고기 등급제를 국내산 소고기에만 적용할 뿐 수입산 소고기에는 적용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현재 수입산 소고기는 해당 국가에서 판정받은 등급을 자율적으로 표시하면 된다. 이 때문에 수입산 소고기에 국내산 소고기처럼 1++과 같은 꼼수로 표기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애꿎은 국내 축산농가와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김 의원은 "식약처가 영양 및 안전과 무관한 소고기 등급제를 방관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농림부 등 관계부처뿐만 아니라 소비자, 축산농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도개선추진단을 만들어 안전성, 도축일자 같은 유용한 정보를 담은 등급제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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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 등심 등급 내려갈까…식약처 "농식품부와 협의"
[국감현장] 식약처장 농식품부와 협의의사 표시
머니투데이 2015.9.14
식품의약품안전처 김승희 처장이 마블링(지방)이 많이 들어갈수록 좋은 제품으로 평가받은 현행 쇠고기 등급체계 기준을 개선하고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14일 밝혔다.
김 식약처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마블링에 좋은 등급을 부여하는 현행 쇠고기 등급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김 의원은 국감 3차 질의에서 "마블링이 많이 들어간 쇠고기가 영양 면에서 우수한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 의견이다"며 "비만을 비롯해 건강에 해롭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쇠고기 등급이 신속도와 안전성과 무관하다"며 "현행 쇠고기 등급기준을 전반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국민건강 문제라 다른 부처와 협의를 강구했으면 한다"며 "지방함량 등 영양 정보를 표기하거나 우유처럼 도축일자를 표기하는 것도 (소비자) 알 권리를 충족하는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김 식약처장은 "(기관 차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적극 협의하고 결과를 따로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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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링 꽃등심의 수난
국민일보 2015.9.18
이 때문에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이 많은 고기가 좋은 고기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포화지방이 몸에 많이 쌓이면 건강에 좋지 않은데 왜 마블링 위주의 등급을 매기냐는 것이다. 소에게 풀이 아닌 곡물사료를 먹여 만든 인위적 지방질이 뭐가 좋으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 축산농가에서는 마블링이 많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 소들을 비좁은 축사에 몰아넣고 옥수수 등 곡물을 강제로 먹여 키운다.
며칠 전 국회 보건복지위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문제가 제기됐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부가 국민에게 성인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지방을 많이 섭취하도록 권장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어 식약처가 농림축산식품부 등과 협의해 등급제 개선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농식품부 산하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요지부동이다. 제도를 바꾸면 축산업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소비자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진짜 품질과 상관없는 서열식 등급을 고집할 게 아니라 고지방·저지방 식의 영양 정보를 다양하게 표기해 소비자들이 선택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 사회적 대화가 유행이니까 생산자·소비자·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기구에서 보완책을 논의하는 것도 괜찮겠다. 계속 수수방관할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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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조회결과> "마블링"
마블링은 마케팅의 요소 중 최고다. 시장에서는. 그만큼 욕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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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 ‘팔판정육점’
경향신문 2015.9.17
최근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철물점, 지물포, 전파사, 전기상, 쌀가게, 사진관 등을 구경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터넷쇼핑몰과 마트에서 뭐든 살 수 있는 데다 임대료 상승도 이들의 폐업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주요 상권에서는 식당 등의 유흥업종에 밀려 자리를 지켜내기 힘겹다. 정육점도 그렇다. 빨간 등을 켜고 고기를 팔던 푸줏간의 기억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고기를 사러 가면, 우선 부위와 근량을 말해야 했다. 국거리냐, 구이용이냐 같은 것 말이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은 “기름은 빼고요”였다. 돼지고기의 태반이 비계이고, 쇠고기도 거의 그럴진대, 그걸 빼고 팔라니 정육점 아저씨가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어찌어찌 고기를 사들고 가면, 그나마 어지간히 붙어 있는 비계를 보고 어머니가 타박은 하지 않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비계를 빼달라고 하는 고기 주문이 야박하다는 걸 모르실 리 없었을 것이다. 아주 돼지비계만 사러 가는 일도 있었다. 미국산 콩기름이 ‘식용유’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하기 전에는 비계는 아주 귀중한 유지(油脂)였다. 그걸로 호떡도 만들고 신김치도 볶았다. 퍼렇게 날이 선 칼로 숭덩숭덩 고기를 썰고, 신문지로 둘둘 말아 담아주던 그 옛날의 정육점 아저씨들 생각이 난다. 동네 정육점은 다 사라져가고, 그이들은 뭘 먹고 살고 있을까. 고기 껍데기에 퍼렇게, 또는 뻘겋게 찍혀 있던 검인 도장도 기억난다. 밀도살 방지용 도장이었다.
고기는 곡물과 함께 도시를 이루는 식량의 핵심이었다. 곡물수송차량은 교통순경도 피해가는 특권이 있었듯이, 고기를 운반하는 차도 ‘지육운반차’라고 딱지를 붙이고 다녔다. 보통 화물이 아니니, 다들 좀 알아봐달라는 유세였다. 그럴 만도 했다. 추석만 되면, 뉴스에선 서민생활과 직결된다는 고깃값 단속 소식이 올라왔다. 물 먹인 소도 단골 기사였다. 그래도 그때는 고기 반 근을 사더라도 사람 사이의 소통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바코드를 붙여 랩으로 얌전하게 포장된 ‘붉은 살’을 사서 요리한다. 그것이 본디 살아 있는 생명의 어떤 부위였다는 인식 따위는 중요치 않다.
북촌 한쪽에 팔판동이라는 멋진 이름의 자그마한 동네가 있다. 그곳에는 1940년부터 고기를 팔아온 팔판정육점이 있다. 3대 노포다. 엉덩이를 슬슬 쓸어보기만 해도 고기 질을 알아맞혔던 전설적인 정육 명장 이경수 선생에 이어 아들 준용씨가 칼과 고기를 거는 고리를 이어받았다. 대형마트가 막강한 구매력과 시장장악력을 앞세워 고기 시장에서 큰손이 된 이 바닥에서 개인 정육업자로 고군분투 중이다. 여전히 최고의 고기만을 다룬다는 자부심과 프로의 칼솜씨로 윤기있는 가게를 만들어가고 있어서 반갑다. 마실 가듯 삼청동과 북촌 구경을 갈 일이 있거들랑 들러서 고기 ‘한 칼’ 끊어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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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5.10.13
"마블링 위주 등급 오해 소지"
판정 기준 개선 움직임에
농가 "사육방식 또 바꾸나" 반발
쇠고기의 지방 함유량, 즉 ‘마블링’을 기준으로 하는 ‘1++’ ‘1+’ 등 현행 쇠고기(소 도체) 등급 판정 기준을 바꾸는 문제를 두고 축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블링 많은 소를 키우는데 역량을 집중해온 축산 농가에 타격이 클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12일 축산업계에 따르면 축산물품질평가원(축평원)은 최근 3차 전문가 협의회를 열고 등급 판정 기준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축평원은 내년 상반기 중에 개선 방안을 발표한 뒤 유예기간을 거쳐 바뀐 등급 기준을 시행할 예정이다. 안용덕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과장은 개정 방향에 대해 “마블링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보다 줄이고,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등급표현 방식을 바꾸고, 등급 표시 의무화를 없애는 것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마블링 위주의 현 판정 기준이 마치 쇠고기 등급이 높을수록 품질이 좋은 것처럼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현행 쇠고기 육질 등급은 1++부터 1+, 1, 2, 3등급 5개로 나뉘는데, 가장 중요한 판정 기준은 지방 함유량이다. 이런 마블링을 기준으로 일단 예비 등급을 매긴 뒤 고기 색깔이나 조직감, 성숙도 등에서 하자가 있을 경우 등급을 내리는 방식인데, 이 때문에 다른 조건이 우수해도 고기에 지방이 적으면 낮은 등급 판정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투플러스(1++) 등 등급에 대한 명칭 자체가 쇠고기의 가치 평가를 나타내는 듯한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등급이 축산 농가에 마블링 많은 소를 키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등급이 높은 쇠고기에 수요가 몰리고, 그 결과 높은 등급 쇠고기의 가격이 올라 대다수 축산 농가가 마블링 있는 소를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89년 등급제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쇠고기의 마블링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온 축산 농가를 중심으로 등급 개정 방침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쇠고기 등급에서 마블링 비중이 떨어지면 품종 개량 등 지금까지 들여온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은 물론 소득 하락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시 한우 농가의 한기웅(48)씨는 “지금까지 정부가 축산 농가에 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등급제를 따르도록 독려를 해온 결과 농가들이 적잖은 비용을 들여 현재 등급 기준에 최적화된 사육 방식을 만들었는데, 하루 아침에 등급 기준을 바꾸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블링 높은 쇠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우려도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한우협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인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10.3㎏으로 하루 평균 28g 정도인데, 이 소비량을 전부 1++ 한우로 먹더라도 총 지방 섭취량은 5.3g에 그쳐 1일 지방 공급량(79.6g)의 6.7%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축산 농가가 등급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친환경 축산을 펼쳐온 농가는 지금까지 기존 등급 제도 때문에 등급 판정에서 다소 불이익을 받았다. 석희진 친환경축산협회장은 “소비자의 건강과 동물 복지 등을 고려하면 등급 기준 개선은 꼭 필요하다”면서 “등급을 개정하면 마블링 비중을 높이기 위해 소를 30~35개월씩 장기 비육하는 관행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이성택기자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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