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 이는 특히 관계에서 무척 중요하다. "내 마음은 말야..."하면서 내놓는 말은 모두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주장이다. "저는요.." 하며 꺼내는 말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를 위한다라는 건 이처럼 자기 중심적이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 또한 이 정도는 아니어도 내가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저는 저대로 해야할 도리를 다하고 있으니 지나친 간섭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건 자기를 옹호하고 방어하기 위한 말이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자기"에 초점을 두고 있으니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다가도 감정이 오르면 어쩔 수 없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난 그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두리번 거리는 건 처음 액션이고, 모른 척 잠이 드는 건 두번째 헐리웃 액션이다. 나 또한 답답함을 버리고자 노력한다. 내가 개입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실망을, 누군가에게는 바람을 집어넣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특히, 이처럼 중간에 끼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하니 이처럼 졸린 눈을 비비면서 글로 풀어본다.
우리는 흔히 "위한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누가 누구를 위함은 정말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데.." 하면서 온갖 생생을 낸다. 어쩔 때는 나댄다 라는 평을 듣고, 어쩔 때는 쓸데없이 나선대에 따른 자기반성을 하다가도 때때로, 아니 종종 우쭐거림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치켜뜬다. 이 또한 바로 그 "위한다"라는 걸 옆에서 보았을 때의 표현들이다. 이처럼 해석이 자기중심적인 건 결국 "위한다"라는 지향점이 "자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가 누구를 위한다라는 것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위함"의 정체가 과연 상대에게 향했느냐의 여부이다.
나는 너를 위한다. 내가 이 만큼 생각하니 너 또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렇게 따르지 않으려면 따로 살면 된다 라고 한다.
저는 저대로 충분히 해야할 역할을 다 하고 있으니 저에게 그에 맞는 자유를 주십시오 한다.
한 쪽은 어머니요, 다른 쪽은 아들이다. 참으로 일상적인 다툼이다. 흔히 있을 법하지 않은가? 그러니 잠에서 깬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없다. 그 분위기에 휩싸이는 순간 잠은 다 잤다. 다시 돌아가 보자.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라는 말과 "위한다는 건 결국 자기중심적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
(1면) 자기방은 (어머니가 바라는 것처럼)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 다만, 그 깨끗함은 순도 100%를 말함이 아니다. 단지 정리정돈 수준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일까? 바람이 지나치게 큰 걸까?
(2면) 내방 정도는 내가 정리정돈 하면서 내 스케줄에 맞춰 사용하고 싶다. 단지, 그 시점은 만 하루가 아니다. 내 스케줄이라함은 고무줄처럼 탄력적이다. 앓느니 죽지 하는 말처럼 그럼 내가 하고 말지, 입 아프게 왜 이렇게 말하겠냐는 공감을 얻는다. 그래도 그 바람은 "새싹의 의지"다. 무시할 수 없다.
:::::: (생략) ::::::::: 이하 입력값이 새주소를 입력하려니 뻑이 나서 지워졌다. 하, 내 맘 같지 않다. 잘 정리했었는데 다시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에이, 정말.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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