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맥상 [
1과. (행태) 일관성 실종 重病 앓는 한국
조선일보 2016.3.24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비결이 뭔지 아세요?" 당시 올림픽 유치와 진행에 깊이 관여한 모 재벌 회장이 전해준 얘기다. 그는 "일관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은 물론 변변한 국제 행사 한번 제대로 치른 경험이 없었다. 그런 나라가 당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올림픽을 멋지게 치른 단초는 유치 직후 열린 회의에서 공개된 인사 원칙이었다. 당시 회의에는 중앙정부 공무원, 서울시 공무원에다 경기 단체 체육인 등이 참석했다. 모두들 들떠 있었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는 막막한 '초보'들의 집합소였다. 그 회의를 주도한 정권 실세의 첫마디는 "지금부터 여기 있는 사람은 올림픽 개회 때까지 인사 동결(凍結)"이었다. '할 수 있다'는 정신이 결실로 이어지려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리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는 "사격을 하다가 양궁을 하다가 다시 사격을 연습해서는 결코 금메달을 딸 수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사격과 양궁을 번갈아 연습하는 참 한심해 보이는 이런 일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과도한 비유일까. 얼마 전 대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대통령 임기가 2년이 남지 않게 되면 기업들은 서서히 창조경제혁신센터 업무를 대충대충 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정권을 잡은 쪽에선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기업인들은 십중팔구 '그러려니' 하며 의심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미운털 뽑아내기 사정(司正)'이다. 이전 정권에 가장 협조적인 기업과 기업인은 어김없이 수사나 처벌을 받든가 지루한 재판을 끌어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적응법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정권 차원에서 뭔가 요구할 때면 거절하지 말되 중간 정도 또는 중간보다 약간만 더 잘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한 경제학 전공 사립대 교수도 이렇게 말했다. "온 나라가 문제 지적(指摘) 능력은 최상급인데 문제 해결 능력은 최하급인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온갖 문제점을 무한대로 쏟아낸 뒤 해결책은 앞선 정권 것 싹 무시하고 자신만의 것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니 문제 해결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은 개념의 모호성에도 큰 맥락에서 앞으로 한국 경제가 추구해볼 만한 방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대원칙일수록 최소 10년쯤은 꾸준히 이어가야 그 결실이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단기 처방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환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어떤 처방도 없이 대증요법만 난무한다. 눈치만 살피는 공무원을 비판만 할 일이 아니다. 5년마다 과녁이 바뀌는 시대에 누가 죽으라고 뛰겠는가. 코치가 과녁을 자꾸 바꾸면 열심히 훈련할 자세가 된 선수일수록 더 힘들다. 권력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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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지속) “공직사회 발전 최대 걸림돌은 년마다 前정부 정책 뒤집기”
서울신문 2016.3.24
“5년 단임인 대통령제에서 행정부가 이전 정책을 뒤집는 행태를 계속 되풀이하는 게 큰 문제다.”
23일 인사혁신처 주최 제1회 미래인재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공무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을 거론하며 이렇게 요약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포럼은 ‘공무원, 진화(Evolution)냐 혁명(Revolution)이냐’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지낸 정 교수는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1987년 이후 집권한 핵심 행정부가 효과적인 정책 수행을 위해 직업공무원들을 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이전 정책 사업에 애썼던 공직자를 배척하는 행태를 5년마다 반복하다 보니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근본 원인으로 자리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은 1987년 이전에도 상존했지만 이후 한층 심화됐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공직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공무원들은 유럽 대륙계 국가 공무원들에 비해 오히려 경제학,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골고루 지식을 갖췄다는 얘기다. 다만, 잦은 인사이동을 지양해 전문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나친 수직적 명령체계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행을 위해선 수직적 명령체계가 도움이 되지만 의사결정에 혼선을 빚어 지연을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를 사례로 들었다. 앞으로는 유사시 행정조직에서 가장 전문성을 가진 부서장(메르스 사태의 경우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지휘권을 줘,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협력하도록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민봉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연공서열과 순환보직, 신분 보장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전보되는 바람에 일을 채 익히지 못해 업무 단절과 행정 비효율을 빚는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신분 보장은 저성과자를 솎아내는 작업을 방해하고 조직 폐쇄성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유 교수는 “업무 중심인 미국의 직위분류제와 달리 사람에게서 직무를 분리시키기 어려운 구조 때문에 조직·직무설계 미비로 업무의 시스템 기반이 취약하고 리더의 지시에 의한 역할 배정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순환보직으로 여러 부서를 이동하면서 형성되는 광범위한 인간관계에 따라 비공식적인 평가가 중요해지는 구조도 부작용으로 꼽았다. 이를 해결하려면 ‘제도 형성’이 아니라 ‘제도 변경’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어 국민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전문가 그룹이 두꺼운 부처, 또는 인사·재무·회계·정보·감사 등 지원기능 부서에서 인사혁신 조치를 하나라도 확실히 성공시켜야 다른 곳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중·장기 전략도 내놨다. 전문성이 높아야 직무분석·설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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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태. (소통) 정부-지자체 사사건건 정책마찰
국민일보 2016.3.23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올 들어 정책적 마찰을 잇따라 빚고 있다.
행정기구 명칭 변경부터 수상태양광 발전소 건설, 이전 공공기관의 활용방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23일 전국 광역·기초단체에 따르면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가 2018년까지 전국 240여개 지자체 3500여 곳의 읍·면·동주민센터 명칭을 ‘행정복지센터’로 바꾸기로 했다. 맞춤형 복지팀이 신설되는 복지센터의 강화된 복지기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이를 위해 오는 5월 중 30개 지자체 33곳의 읍·면·동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700여 곳의 현판과 안내판 등을 복지센터로 교체할 계획이다. 교체 비용은 1곳당 평균 300만원으로 이에 따를 경우 전국에서 내년까지 102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지방자치법(4조2항)에 읍·면·동 명칭변경 권한은 자치단체장이 갖도록 돼 있다.
일선 지자체들은 “2007년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로 명칭 변경을 한 이후 여전히 혼선이 계속되고 있는데 또다시 복지센터로 바꾸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부천시의 경우는 상황이 심각하다. 오는 7월부터 현행 3개구 36개 주민센터 체제에서 3개구를 없애고 광역동 개념의 10개 행정복지센터(책임동)와 26개 주민센터로 행정기구를 개편하려다 난관에 부딪혔다. 부천시가 행정체제를 그대로 개편하면 명칭은 같지만 기능은 다른 행정복지센터가 등장하고 주민센터는 그대로 남게 된다.
경기 안성시와 충북 충주시는 수상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 기관과 의견대립 중이다. 농어촌공사는 안성 고삼저수지에 18억원을 들여 면적 6500㎡, 발전용량 0.6㎿의 수상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에 안성시는 “농업용 기반시설인 저수지 설치목적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수질은 오염되고 생태계는 붕괴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충주시 역시 수자원공사가 충주호에 90억원을 들여 4만㎡, 3㎿의 수상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하는데 대해 “경관훼손으로 유람선 이용객이 줄고 관광활성화 차원의 수상레저 사업계획에도 지장받게 된다”며 맞서고 있다.
2012년 충남도청과 충남경찰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한 대전에서는 충남경찰청 이전부지의 활용방안에 대한 갑론을박이 반복되고 있다. 도청이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충남도청 건물과 부지는 정부가 800억원에 사들여 지자체에 양여 또는 장기대부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에 비해 충남경찰청 부지는 대전시와 경찰청, 기획재정부가 여전히 뚜렷한 활용방안에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전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경찰청 건물과 부지를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경찰청은 중부경찰서의 부지 내 신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물러서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신축한 지 20년 밖에 되지 않은 경찰서의 신축 이전은 예산낭비라고 맞서 있다.
이밖에 인천시는 청라국제도시와 영종도 하늘도시를 잇는 제3연륙교 손실보전금 1조2000억∼1조3000억원의 분담방안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상반된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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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 (지향) 문제는 경제인가, 바보 정치인인가
경향신문 2016.3.23
1992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상대를 몰아붙여 톡톡히 재미를 봤다. 경제 실정 책임을 뒤집어쓴 조지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져 연임에 실패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려 애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가 매우 위태롭다. 그야말로 위기다”라며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국내 경제상황은 녹록지 않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일자리 부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미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빚은 갈수록 늘어난다. 수출은 1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있다.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가계는 소비를 줄이니 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평등도 점차 심해진다.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저성장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정부도 한때 경제가 위기라고 했지만 ‘4·13 총선’이 다가오면서 다른 주장을 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일각에서 근거 없는 경제실패론을 제기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앞서 박 대통령이 “경제상황이 당초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정책효과가 본격화되면 경기 개선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한 낙관론의 연장선상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또 다른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며 오락가락했다. 김종인 대표의 말마따나 ‘대통령의 길 잃은 경제인식’이 국민을 혼란 속에 밀어넣고 있다.
새누리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총선 10대 공약을 보자. 공약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정책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 현실 진단이 가능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1~3번에 전진배치했다. 7~9번에는 소상공인 지원·공정사회(경제민주화)·서민금융 보호 등을 넣어 6개를 경제 관련 공약으로 채웠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경제 관련 공약은 4개였고, 18대(한나라당) 때는 2개였다. 경제 공약은 갈수록 늘어난다. 경제정책에 계속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비중만 따지면 새누리당에는 미치지 못해도 야당의 경제 공약도 다양하다. ‘문제는 경제’라는 인식에 여야가 공감하고 있으니, 총선의 최대 쟁점은 경제가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책선거’는 물 건너간 듯하다. 총선을 불과 20일 남겨둔 이맘때면 각 정당 정책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책은 뒷전에 팽개친 채 여야는 자기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박계 공천 학살’ ‘유승민 고사 작전’ ‘김종인 셀프 공천’ ‘대표 당무 거부’ ‘공천 불만 폭력’ 등 막장 드라마 연출에 여념이 없다. 원내 다수 3당은 ‘봉숭아학당 1~3반’을 방불케 한다.
문제가 경제라는 걸 알아도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야권은 ‘잃어버린 8년’ 운운하며 정부·여당의 경제 실정 약점을 들춰내지만, 사실 경제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가 나빠져도, 약속을 안 지켜도 유권자는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여당에 최대 의석을 안겨줬다. 게다가 지금의 일여다야 구도가 굳어져 이번 총선이 치러진다면 여당은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헛발질을 일삼아도 반사이익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한 야권 정치인들은 바보이다. 패한 뒤 한국인의 보수 유전자 탓이라는 둥 헛소리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6년 대한민국에 던지는 말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일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겨냥한 발언인데, 안 대표 역시 바보짓을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유권자들은 어떤가. 실현 가능성 높은 공약을 많이 제시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당선자의 공약 이행상황을 평가해 다음 선거에 반영하는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하지만 선관위 가이드북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바보 정치인들이 기울어진 선거판을 벌여놨어도 유권자가 현명하다면 바로잡을 희망은 있다. 어느 공약이 실현 가능하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투표에 앞서 기존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망둥이는 낚시에 걸려 올라오다가 떨어져도 이내 미끼에 달려들어 다시 잡히곤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관성에 따라 투표한다면 망둥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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