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어떻게 드십니까? 1++ '마블링'의 딜레마
MBC 2016.3.28
고기 사이에 든 하얀 지방질로 맛과 풍미를 더해주는 마블링입니다.
현행 소고기 등급은 마블링 함량에 따라 1++, 1+, 1,2,3의 5등급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마블링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정부는 소고기 등급 판정 기준을 개선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 한우 농가는 마블링이야말로 수입 쇠고기와 맛에서 차별화되는 한우의 경쟁력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맛없는 소고기를 비싼 값에 먹게 된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
미식 동호회 회원들이 같은 부위지만 등급이 다른 한우를 구워 맛을 품평하는 자리.
[김필화]
"얘는 입 안에서 딱 씹는 동안에 기름이 입 안에 쫙 들어오는 게.."
[신상열]
"맛은 다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기름이다라고 얘기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건 가장 연한 거에요 사실은.."
이들이 비교한 고기는 모두 한우 채끝부위로 지방이 고기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최고등급, 즉 투 플러스(1++) 등급의 한우와 지방보다 붉은 고기 부분이 더 많은 2등급 한우 2등급 한우를 한 달 정도 숙성시킨 '드라이에이징' 한우. 세 종류입니다.
어느 고기가 맛있을까.
평가는 다양합니다.
[김필화]
"드라이에이징이 제일 나은 것 같아요. 느끼하지 않고 연하기 때문에.."
[문상순]
"나이가 좀 든 사람한테는 거친 자연미 그대로의 맛도 즐길 줄 알기 때문에 부드러움이 전부다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2등급이 맛있다.)"
그래도 대부분 투 플러스 한우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줍니다.
[장나영]
"특히나 한우 하면 대표적인 게 투 플러스라고 생각을 하고 선호해서 찾아 먹는 것도 투 플러스고, 기름이 숯불에 닿아서 내는 풍미 그다음에 입 안에서 기름이 확 하고 터지는 수분감 촉감.."
마블링이 잘 된 한우, 좋아하시나요?
한우는 근육 속에 박혀있는 지방, 즉 마블링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집니다.
그런데 최근 소고기 등급 판정 기준을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맛과 건강을 놓고 마블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한우 코너.
대부분 1등급 이상이 진열돼 있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소비자들이 마블링이 많은 한우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동현]
"아무래도 등급이 높으면 좀 맛이 있다라는 생각이 좀 들고요. 그래서 사먹을 수 있으면 등급이 높은 걸 사먹으려고 하죠."
현재 우리나라 한우는 3등급과 2등급, 1등급, 1등급 원 플러스(1+) 1등급 투 플러스(1++) 등 다섯 등급으로 분류됩니다.
평가 항목은 마블링뿐 아니라 지방색, 고기 색, 조직감, 성숙도 등 모두 5가지지만 사실상 마블링이 등급을 결정합니다.
마블링 양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주고, 나머지 항목은 하자가 있을 때만 등급을 하향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김관태 본부장/축산물품질평가원]
"(다른) 4개 항목에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근내지방도(마블링) 위주로 최종 평가를 하게 되는 그런 등급제가 되겠죠."
등급 차이는 곧 가격 차이.
투 플러스 등급의 한우는 지난달 기준 도매가격이 1kg당 2만 1천 원대로, 1kg에 1만 원 정도인 3등급 한우보다 두 배 이상 비쌉니다.
소매점으로 가면 가격 차이는 서너 배까지 벌어집니다.
이 때문에 한우 농가들은 투 플러스 등급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기 위해 품종 개량, 사료 개발, 도축 시기 조절 등 사육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왔습니다.
약 20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경기도의 한 농가.
최고등급 한우를 얻기 위해 풀과 곡물이 함께 들어 있는 혼합사료를 하루 3번씩 먹입니다.
32개월이 될 때까지 충분히 키운 다음 도축을 합니다.
[우영묵/농장주]
"첫 번째는 종자 개량, 두 번째는 철저한 사양관리, 소의 성장 균형을 만들어줌으로 해서 가마솥에 밥을 어떻게 해야 맛있는 밥이 만들어지듯이 소고기도 그런 개념에서 고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블링 중심의 현행 등급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달라진 소비자의 기호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주부 이재인 씨.
고기를 살 때 마트나 일반 정육점보다는 생활협동조합 매장을 자주 이용합니다.
마블링이 거의 없는 2등급 이하 저지방 고기를 구매하기 위해서입니다.
건강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재인]
"느끼할 때도 있고 가족끼리 먹는 거니까 건강에 별로 좋지도 않을 거 같고 기름이 많은 걸 고르는 편은 아니에요."
실제로 작년 12월 한 소비자단체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소고기 마블링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답했고,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답변도 64%나 됐습니다.
높은 등급을 위해 소를 인위적으로 살찌우는 사육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옵니다.
전라남도에 있는 한 한우 농장.
조영현 씨가 운동장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소들의 털을 빗겨줍니다.
[조영현/농장주]
"나도 해줘요. 지금 털갈이할 때라.."
3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이 농장에선 곡물사료나 볏짚이 아닌 알팔파와 라이그라스라는 두 종류의 목초만 먹입니다.
행복한 소에서 건강한 고기가 나온다는 철학으로 축사에 음악도 틀어주고,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도 마련했습니다.
[조영현/농장주]
"이렇게 풀만 가지고 기르는 소를 '그래스 페드'라고 그러고 '그래스 페드' 소고기는 육질이 씹히는 감이 아주 좋거든요. (섬유질이) 부서지면서 알곡을 씹는 아주 구수한 국물 맛이 계속 나게 되거든요."
이 농장에서 나온 소들은 지방량이 적어 대부분 2.3등급을 받았지만 담백한 맛 때문에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조영현/농장주]
"(마블링을 얻기 위해서는) 오래 키워야 되는 그런 부분이 되고 그러다 보니까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하는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까 소고기 가격이 비싸거나 아니면 그 건강에 해로운 문제가 생기고.."
현행 등급제도에 대한 비판 중에는 고기 맛을 기름 맛으로 느끼게 만들도록 소비자 입맛을 왜곡시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진영/식재료 연구가]
"2등급 3등급이 맛없는 게 아니라 지방이 없을 뿐이에요.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데 사람들이 지방의 맛에만 너무 집착하니까 상대적으로 맛없어 보이는 거지만 마블링 중심의 현재 등급제는 너무나도 (맛을) 획일화를 시켜버리니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지방 비율이 20% 가까이 되는 투 플러스 등급 자체를 없애는 등 이제라도 저지방육 생산 체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언현 명예교수/건국대학교 식품생명과학부]
"모든 것을 생산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투 플러스에다 맞추지 말고 원 플러스도 좋다는 걸 인식시켜서 조금 더 가격을 낮춰가지고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이 생산자입장에서도 나는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축산 업계는 마블링을 중심으로 한 소고기 등급제야말로 한우가 경쟁력을 갖게 만든 1등 공신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소고기 등급제가 도입된 건 고기 품질에 대한 관심이 낮던 시절인 1992년.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한 소고기 시장 개방을 앞두고 한우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김홍길 회장/전국한우협회]
"세계화 물결에 우리나라 농업, 농촌을 막고자 하는 그런 취지로서 차별화된 한우를 만들고자 이 등급제를 시작했어요. 시작을 했는데 우리나라 소고기가 제일 좋은 부분이 이제 마블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뉴스데스크(1990년 7월 20일)]
"지하수를 주입해 무게를 늘린 후 도축해서 팔아온 도축장 직원과 판매업자 등이 경찰에 잡혔습니다."
등급제가 도입되자 1990년대 초까지 뉴스의 단골 메뉴였던 '물 먹은 한우' 가 사라졌습니다.
고기가 냉장 상태에서 하루를 보낸 뒤 등급 판정을 받게 됐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3개 등급으로 시작했지만 품종 개량과 사육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 1997년 원 플러스(1+)등급이, 2004년에는 투 플러스(1++) 등급까지 추가됐습니다.
한우의 마블링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거세 우의 경우 무려 80% 이상이 1등급 이상을 받을 만큼 고급화에 성공하면서 소고기 시장을 지키는 데 나름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주선태 교수/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국내 소고기) 시장은 이미 양분돼 있습니다. 맛있는 근내지방이 많아서 맛있는 한우 고기 시장하고 근내지방은 부족해서 맛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저렴한 싼 수입 소고기 시장. (수입 소고기) 이게 60%를 차지하고 있고 (한우) 이게 40%거든요."
그렇다면, 수입 소고기의 마블링 함량은 어느 정도일까?
마블링의 원조인 미국은 소고기 등급을 모두 8단계로 나눕니다.
하지만, 최고인 '프라임' 등급의 마블링 함유량은 8%에서 10% 정도로, 우리나라 중간 등급인 1등급과 2등급 사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반면 일본은 소고기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는 데, 최고급 등급인 5등급의 지방 비율이 최대 31.7%에 달합니다.
우리는 지방량을 강화한 일본식 모델을 따라온 셈입니다.
한우 등급을 결정하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지난해 9월부터 소고기 판정 기준을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수용한 겁니다.
[김관태 본부장/축산물품질평가원]
"마블링 양이 아닌 마블링 형태, 그러니까 근내 지방도의 형태를 거칠고 많은 떡 지방같이 생긴 것을 섬세한 지방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만들 것입니다."
1,2,3등급이라는 서열식으로 된 등급명칭도 소비자들에게 "낮은 등급의 소고기가 질이 낮은 소고기"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새로운 명칭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그러나 한우 농가들은 제도 개선을 하더라도 마블링이 좋은 고기를 높게 쳐주는 큰 틀만큼은 절대 손대서는 안 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소고기 섭취량이 적기 때문에 마블링 때문에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건 과장된 우려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2013년 기준 10.3kg으로 미국이나 호주의 3분의 1도 채 안 됩니다.
[김홍길 회장/전국한우협회]
"저는 그 마블링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들 건강을 그렇게 해친다고 보지는 않고 있고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서 (등급제를) 조금 보완하는 것까지는 저희들이 생각을 하고.."
또 20년 넘게 쌓아올린 마블링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포기하는 건 그 자체로 큰 손실이라는 게 한우 농가들의 입장입니다.
[우영묵/농장주]
"(한우) 종자를 엄청난 정부도 투자를 해서 만들었거든요. 그럼 지금 저지방육 해야 한다고 그래서 만약에 그렇게 제도를 바꾼다고 하면 그 종자소 어떻게 할 거에요?"
한우 농가들은 규모가 영세한데다 사료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 생산 원가가 비쌉니다.
따라서 등급이 낮은 소고기로는 비슷한 품질의 미국이나 호주산 소고기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입니다.
[주선태 교수/경상대학교 축산학과]
"제가 전문가로서 축산학과 교수로서 보기에 마블링 없는 2등급, 3등급 고기를 만들어 가지고 수입육하고 경쟁하는 것은 다 같이 죽자라는 것밖에 안 돼요."
일부에선 등급이 낮은 소고기를 한 달 정도 숙성시켜 육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 이른바 '드라이 에이징'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건조 숙성 육은 맛 자체가 다를뿐더러 딱딱해진 표면을 상당 부분 잘라내 손실이 크고 부패하지 않도록 전문 시설과 기술이 필요해 가격이 투 플러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싸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정부는 오는 6월 소고기 등급제 개선안 초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다만, 등급제 기준을 바꾸는 건 축산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만큼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건강에 좋은 고기를 선택하고 싶은 소비자의 권리와 수입 소고기에 대항하는 한우 농가의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축산이슈 > 시장상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무원 힘내세요~" (0) | 2016.03.31 |
---|---|
디플레이션 공포 from 시사in (0) | 2016.03.31 |
달걀값 하락세 심화 (0) | 2016.03.24 |
2016년 3월 한국이 앓고 있는 亂脈相 (0) | 2016.03.24 |
중국 자본, 농업기업 신젠타 인수 성공할까? (0) | 2016.03.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