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공직 인사혁신 실험 이근면 퇴임 인사혁신처장
MK 2016.6.26
삼성에 뒤지지않는 100만 공무원집단…전문성 떨어지는건 60년된 人事시스템
"아쉽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인사혁신처장에서 물러난 이튿날인 지난 25일 성남시 판교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이근면 전 처장은 20개월 공직생활을 마친 소회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 전 차장은 30여 년간 삼성그룹에서 인사전문가로 일한 경험을 살려 공직사회를 혁신해 달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2014년 11월 인사혁신처장으로 부임했다. 이후 성과연봉제 확대, 고위직 성과미흡자 선별, 자기계발 휴직제 등 다양한 개혁조치로 공직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등의 반발로 마음 고생도 많았다.
이 전 처장은 인터뷰 내내 말을 아꼈지만 공직사회에 대한 아쉬움과 국가 미래에 대한 염려를 토로하기도 했다. 이 전 처장은 "공무원은 정책 입안은 잘하지만 사후 관리를 잘 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서 "상당히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서 실행은 낮은 수준에 멈추고 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무원 100만명,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40만명의 생산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라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현 공직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1~2년마다 자리가 바뀌는 순환보직제를 들었다. 다음은 이 전 처장과의 일문일답.
―이임사에서 "(인사혁신처장이라는 자리에) 미생으로 왔다가 한 집을 만들고 나머지 한 집은 '빅'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바둑에서 완생이 되려면 두 집은 나야 하는 것 아닌가.
▷두 집을 완벽히 만들지 못했지만, 포석은 마무리했다는 뜻이다. 유능하고 반듯한 공직사회 실현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 사실 20개월 만에 두 집을 다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의 인사혁신이 시작을 했으니 점진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둑도 한 집과 빅 한 집이 있으면 끝나지 않는다. 내가 후회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어쨌든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공직사회가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사람의 육성과 활용, 다시 말해 인사를 책임지는 집단이 민간에 비해 취약하다는 거다. 민간 기업에는 인사담당 임원(CHO), 나아가서는 인사담당 사장까지 있다. 사람을 운영하는 게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껏 정부의 인사 관리는 사람의 육성·활용보다는 누구를 임명하는가에 무게중심이 있었다. 100만명에 이르는 공무원의 육성과 교육이 민간 기업의 인재·역량 개발에 비해 뒤처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9급으로 공무원을 시작해 정년 퇴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어떤 전문성을 쌓았는지, 퇴직 후에도 활용할 전문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오늘날에는 이런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공무원 전문성이 민간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다.
▷민간 기업과 비교해 전문성 부족이 각 직역에 존재한다. 순환보직제도에 문제가 있다. '여러 분야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축구에서 풀백부터 센터포워드까지 두루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가(이 전 처장은 공무원들이 한 보직에서 오래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필수보직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했다. 또한 직무 특성에 따라 직위를 '장기근무 전문가형'과 '순환근무 관리자형'으로 구분하는 '투 트랙' 제도를 도입해 전문가가 자부심을 가지고 장기근무할 수 있는 별도의 인사체계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더구나 순환보직제도는 '공무원의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낳는 원인이 된다. '1~2년 있으면 다른 보직으로 옮길 텐데' 하는 생각에 지금 당면한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생긴다. 공무원은 정책 입안은 잘하지만 사후관리를 잘 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상당히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서 실행은 낮은 수준에 멈추고 만다. 사후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사 관리적 측면에서 프로세스와 매니지먼트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현재의 직급 체계에 대한 불만도 많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학벌·학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식은 손에 쥔 스마트폰 안에 다 들어 있다. 지식을 어떻게 융합해 가치를 창조하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60년 전에 만들어진 현행 직급 체계로는 여기에 대응할 수가 없다. 전문성을 강화하고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고성과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랫동안 삼성에 있었다. 삼성맨과 공무원을 비교한다면.
▷집단의 평균치는 삼성에 뒤지지 않는다. 공무원 집단의 우수성은 민간 이상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공무원에게 제값을 매겨주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흔히들 편하게 살기 위해 공무원이 된 것 아니냐고 하는데, 다수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에게 제값을 매기고, 잘 이끌어준다면 더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관건은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인사 관리를 하느냐에 있다. 공무원 100만명,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40만명의 생산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다.
―성과 보상제도를 거부하는 공무원도 있다.
▷왜 하향 평준화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근로자들이 일을 한다고 해보자. 왜 그중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 기준으로 보상을 받으려고 하느냐. 상향 평준화를 하자는 게 내 지론이다.
―공무원 조직에 대한 신뢰는 어느 정도인가.
▷인사는 곧 신뢰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인사 관리가 안 된다. 집단을 믿고 쓰느냐, 믿지 않고 쓰느냐는 큰 차이를 낳는다. 집단을 믿으면 훨씬 많은 성과를 낸다. 믿지 못하면, 각종 점검과 규제를 만들게 된다. 사람들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철조망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회가 공무원을 너무 안 믿는다. 복지부동이 감사 때문이라는 얘기가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 공무원이 정년퇴직하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려고 해도 사전에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 심사를 차관급 이상 고위공무원이 하고 있는 게 정부의 현실이다.
―인사혁신처장으로서 제일 잘한 것을 꼽는다면.
▷첫째는 공직가치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는 것이다. 상벌은 사람을 단기적으로 바꿀 뿐이다. 장기적으로 바꾸는 것은 가치다. 35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공무원헌장을 올해 1월 1일부로 새롭게 바꾸어 선포했다. 헌법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게 봉사하자는 공직가치를 밝혔다(새 헌장에는 '민족중흥'과 같은 구시대적 가치는 빠지고 창의성과 전문성, 다양성 등의 가치가 담기기도 했다).
둘째는 교육이다. 지금껏 공무원 교육에는 투자 개념이 없었다. 나는 투자로 보자고 했다. 사람마다 가진 능력과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삼성에 혈연·학연·지연이 없는 이유가 뭐겠는가. 바로 교육 덕분이다. 삼성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교육에 투자를 많이 했다. 덕분에 학연·지연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마지막 질문이다. 국가 운영과 관련해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규제 개혁을 위해 관련 법률 하나 고치는 데 평균 407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뭘 하나 바꾸는 데 1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면 우리가 외부 환경 변화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스피드 있게 변화할 수 있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가져야 한다.
■ '공무원 모두와 혁신 상상하자'…강의 마지막엔 이매진 노래 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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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장 방에 들어갔다가 또 기사 마감 시간을 놓칠 뻔했어요."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의 방을 다녀온 기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얘기를 한다. 늘 그의 방은 열려 있고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취재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이는 기자와의 대화를 '국민과 소통'으로 여기는 그의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이 전 처장은 단 한 명의 기자를 앉혀 놓고도 세 시간 넘게 직접 사인펜을 들고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공무원 인사 혁신을 위해 자신이 해야만 하는 '사명'을 설명한다. 강의가 어찌나 열정적인지, 늘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기자들도 한번 들어가면 장시간 계속 쏟아지는 이 전 처장의 열변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는 것. 특히 이 전 처장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삼성에서 30년 이상 인사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쌓아 온 실무 경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민간 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의 '대부'로 통한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말미에 비틀스의 명곡 '이매진(Imagine)'을 들려주는 그의 소통 방식도 흥미롭다. 인사 혁신을 위한 이 전 차장의 꿈을 공무원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비틀스 노래에 담겨 있다.
그만큼 이 전 처장은 각 부처에 인사관리 전담 부서와 인력을 반드시 둬야 하며 이들을 각 부처 사정에 정통한 인사관리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래야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보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공무원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하고 떠난다는 이 전 처장은 "앞으로도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 경영적 차원에서 인재 경영의 길에 헌신해 또 다른 멋진 100년의 미래를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말하며 지난 24일 인사처 문을 나섰다.
■ 이근면 전 처장은…
△1952년 4월 15일 서울 출생 △서울 중동고,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졸업 △삼성그룹 입사(1976년) △삼성코닝 인사과 과장(1982∼1986년 ) △삼성데이타시스템 인사지원실 실장(1994∼1997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2005∼2009년)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부사장(2009~2011년) △인사혁신처장(2014년 11월~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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