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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살처분 32.9% vs 1.1%…AI 참사 부른 밀집사육

by 큰바위얼굴. 2017. 1. 5.

살처분 32.9% vs 1.1%…AI 참사 부른 밀집사육


중앙일보 2017.1.5



3036만 마리 살처분 대란
친환경 농장 피해는 1곳뿐
공장식 사육방식으론 한계
“AI 대응에 수천억 쓰느니
친환경 양계로 전환 도와야”


4일 오전 세종시 전동면의 한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 닭 울음소리는커녕 사람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AI(조류인플루엔자) 예방 방역실시·외부인 출입금지’란 플래카드와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붙인 통제선만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 세종시에서 최초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닭이 감염된 농장이다. 병아리 30만 마리를 포함해 70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 이곳은 닭 한 마리당 사육 공간이 A4 용지 한 장에도 못 미칠 정도로 빽빽한 공장형 축산 농가였다. 이곳에 AI 바이러스가 퍼지자 순식간에 닭이 감염됐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에 위치한 산란계 농장 ‘쉴만한 농원’. 이 농원 이상근 대표는 2개 동에 총 1만2000마리의 닭을 기르고 있다. 닭은 넓은 사육 공간에서 종종걸음을 하거나 날갯짓을 하며 지냈다. 알은 연간 200~250개 정도 낳았다. 이곳에서 10여㎞ 떨어진 나주시 남평읍에서 AI에 감염된 닭이 발견됐지만 이 농장의 닭은 모두 건강했다. 이 대표는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일반 양계 농가의 닭에 비해 친환경 농장의 닭은 외부 바이러스 등에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까지 AI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메추리는 3036만 마리에 이른다. 피해는 산란계(2245만 마리)에 집중됐다. 전국에서 사육 중이던 산란계 가운데 32.9%가 살처분됐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친환경적 사육 환경으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산란계다. 89개 동물복지 인증 농장에서 기르는 103만3000마리 산란계 가운데 살처분된 닭은 1개 농장 1만3000마리(1.1%)에 불과하다.

32.9% 대 1.1%. 어떤 방식으로 키웠느냐에 따라 AI에 대한 저항력은 달랐다. 기존의 살처분 방식과 방역체계로는 해마다 독해지는 AI를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올해 AI 확산이 그 방증이다. 가축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공장식 밀집 사육과 원가 낮추기 경쟁을 반복하면 AI 대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친환경 땐 닭값 급등…“비싼 국내산, 값싼 수입산 이원화를”
장형관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방역을 제대로 못한 게 1차 원인이지만 대량 밀집 사육 환경 때문에 AI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며 “친환경 사육을 한다고 AI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6일 AI 발생 이후 3일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살처분 보상금으로만 2300억원(닭·계란·오리 등 가금류 합산)을 지급했다. 2003년 첫 AI 발생 이후 지금까지 닭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들어간 돈은 총 85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매몰 비용, 방역 비용 등을 더하면 최소 1조원 이상이 들어갔다. 국민 1인당 2만원 정도 부담한 셈이다.

사실상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의 예산을 살처분 등에 투입하기보다는 친환경 동물복지형 농장 지원에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종인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동물학대 금지가 아니라 국내 소비자 건강을 위협하는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양계산업을 친환경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인증제도는 공장식 밀집형 사육에서 벗어나 가축의 본성을 고려해 기르기 위해 정부가 도입했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농가에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농가가 상품에 마크를 붙여 판매할 수 있다. 2012년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2013년 돼지, 올해 오리까지 확대됐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보통 일반 양계장의 닭 한 마리당 사육면적은 A4 용지(0.06㎡)보다 작은 0.04㎡(20X20㎝) 정도다. 1㎡당 25마리를 사육하는 셈이다. 동물복지 농장(친환경 농장)의 마리당 사육면적은 0.11㎡ 수준이다. 1㎡당 9마리 정도 지낸다.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부소장은 “비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닭은 스트레스로 자신이나 주변 닭을 쪼아 피를 내는 ‘카니발리즘’이란 이상현상을 보인다”며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돼 면역력이 약해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장에서 사육한 닭은 다르다. 이상근 쉴만한농원 대표는 “넓은 공간에서 키우니 닭들이 습성대로 돌아다녀 운동량이 많다”고 말했다. 일반 양계장에선 알을 많이 낳도록 하기 위해 밤에도 전등을 켠다. 이 대표는 “밤에는 6시간 정도 불을 끈다”고 말했다. 닭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닭은 건강한 알을 낳는다. 닭이 앉아 쉴 수 있는 홰도 설치돼 있다. 전북 정읍에서 육계를 키우는 박희강 세연농장 대표는 “홰의 높이도 닭의 성장 속도에 따라 25~35㎝로 조절하고, 닭의 쪼는 습관을 위해 볏집으로 만든 블록도 넣어주고 상추 등 채소도 먹잇감으로 준다”고 말했다.


EU ‘밀집사육’ 2012년 법으로 금지…13년간 AI 발생 영국 3건, 스웨덴 1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옮기는 건 철새다. 철새의 이동거리가 방대한 만큼 AI는 세계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AI로 인한 피해 규모는 나라별로 다르다. 방역과 관리 수준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친환경 사육 방식의 도입 여부가 피해 규모를 가르는 중요 원인 중 하나다.


선진국도 AI 발생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미국에서는 칠면조·닭·오리 등에서 연례행사처럼 AI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 AI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유럽에서도 AI가 발생해 확산하고 있었다. 유럽 최대 가금류 사육국가인 프랑스에서는 지난 2일 중서부 지방인 되세브르 지방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덴마크·독일·스위스·스웨덴 등에서도 AI는 확산일로다. 1년 전에도 프랑스 서남부에서 AI가 극성을 부리면서 프랑스 대표 음식 푸아그라의 원료가 되는 집오리와 거위 사육이 한때 중단됐다. 일본에서도 한국이나 유럽과 비슷한 시기에 AI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이처럼 AI의 발생은 무차별적이지만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일본은 이번 AI 확진 판정 2시간 만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방역을 지시하고, 국가재난상황임을 선포하는 등 발 빠르게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200만 마리의 살처분만으로 상황은 사실상 진정됐다. 3000만 마리가 살처분된 한국의 15분의 1 규모다. 유럽도 확산 속도나 살처분 대상 가금류 숫자 등에 있어서 한국만큼 피해가 크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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