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 식약처만의 십자가는 아니다
2017.9.24. MK뉴스
살충제 계란, 유럽산 E형 간염 햄·소시지, 질소(용가리) 과자 등 올해도 수많은 먹거리 안전 문제가 소비자 불안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식품영양학자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유럽에서 심각성이 예고되었던 살충제 계란, E형 간염 햄·소시지 파동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초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었던 사안도 있다.
먹거리 파동의 모든 책임을 식약처에만 돌리는 것은 사태 해결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식품안전과 관련해 정부, 업계, 소비자 각각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 파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례인 1989년 `공업용 우지라면 파동`은 식품안전이 당국의 책임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지라면 파동의 발단은 `우지가 식용이 아니다`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던 한 언론의 보도가 발단이 됐다. 해당 오보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해당 기업은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했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소비자는 라면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8년 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고 소 부산물에 대한 미국과의 식문화 차이에서 기인한 오해였으며 식용이 가능한 우지라는 사실이 발표되었으나 그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2015년 `백수오 사태` 때도 식약처가 2년여 동안 조사한 끝에 `이엽우피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기존 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났지만 소비자는 식약처가 사태를 숨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불신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 피해는 수많은 농민과 관계 종사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말았다.
햄버거 패티의 재료인 다진 고기가 덜 익었을 때 오염된 장출혈성대장균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에 대한 사건도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소비자는 HUS를 `햄버거병`으로 알고 있다. 제대로 조리만 하면 안전한 음식임에도 `햄버거포비아`라는 말까지 생기며 햄버거 자체를 거부하거나 먹게 되더라도 불안에 떨고 있다.
사람들은 먹거리 파동이 발생하면 식약처에 책임을 묻고, 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식품안전관리에 대한 책임과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로 업계는 식품 위생법, 식품공전 등 법규를 철저히 준수했는지, 언론은 정확하고 균형 있게 보도했는지, 소비자단체나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문제를 검증했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먹거리 파동의 특성상 초기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면 근거 없는 소문과 의혹을 막을 수 없다. 식약처의 과학적 조사와 조치에 상관없이 결국 남는 것은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과 불신뿐이다.
식품안전 문제는 과학적으로 접근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다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평가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의혹만 언급한다면 제2의 우지파동, 살충제 계란 파동은 언제든지 터질 수밖에 없다.
식품안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 생산자, 정부 사이에 신뢰가 구축돼야만 한다. 특정 조사 결과 등에 편중해 사실을 받아들이다 보면 의심과 의혹만 남을 수 있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루머나 의혹 등의 확산을 조기에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품안전에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최고 권위를 가져야 할 식약처의 조치들은 `뒷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식약처 역시 최근의 먹거리 파동 사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고 먹거리 불안에 떨고 있는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식품안전은 식약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먹거리 파동의 책임에서 식약처가 결코 자유로울 수도 없다. 국민이 먹거리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식약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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