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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고기 덜 먹자"며 수요일을 '無肉日'로 제정

by 큰바위얼굴. 2017. 12. 6.

"고기 덜 먹자"며 수요일을 '無肉日'로 제정… 경찰, '암소갈비'등 식당 간판도 철거

2017.12.06 03:11 조선일보



서울시가 매주 수요일을 고기 안 먹는 ‘무육일(無肉日)’로 제정하자 ‘실효성 없는 정책’이란 비판이 일고 있음을 보도한 기사(위·경향신문 1965년 6월 5일자). 하지만 1976년 소고기 파동이 일자 ‘정부가 무육일 제정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또 나왔다(매일경제 1976년 3월 19일자).



'매주 수요일은 무육일(無肉日)! 이날 하루는 소·돼지·닭 등 모든 고기를 일절 먹지 말고 식당·정육점에서는 고기를 사거나 팔지도 맙시다.' 1965년 6월 초 서울시가 내놓은 희한한 정책이다. 육류, 특히 소고기 공급이 부족해지자 내놓은 궁여지책이었다. 5~6월 농번기엔 소에게 일을 시키느라 도축량이 줄어 소고기 파동이 일어났다. 근본적으로 고기 수요는 늘어 가는데 축산업이 근대화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그 시절 정부는 소비를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맛난 것 덜 먹고, 경제 건설에 힘쓰자는 생각이 깔린 정책이었다.

그러나 '고기 안 먹는 날'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쌀이 모자란다고 분식만 먹는 '무미일(無米日)'을 제정했던 발상을 그대로 고기에 적용시킨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쌀은 매일 먹는 주식이지만 당시의 고기란 대중 밥상엔 어쩌다 한 번 오르는 귀한 반찬이란 걸 간과했다. 서울시는 하루 육류 소비량 통계를 근거로 '수요 무육일을 시행하면 1주일에 소 294마리, 돼지 30마리가 절약된다'는 식의 한심한 발표를 했다가 웃음거리가 됐다. 여성 단체는 "도대체 서민들이 고기를 먹으면 한 달에 며칠이나 먹는다고…'초식일(草食日)' 하루 제정으로 고기 소비가 줄어드나?"라고 비판했다. "고기를 상식하는 부유층에는 자극을 좀 줄지 모르겠다"고 이죽거리는 반응도 있었다. 그래도 정부는 '무육일'을 밀어붙였다. 1967년에는 매주 월요일로 날짜를 옮기고 이름도 '소고기 금식일'로 바꿨다. 특히 소가 모자라니 닭·돼지·토끼를 더 먹자는 정책이었다.

'고기 안 먹는 날'의 뿌리는 꽤 깊다. 6·25전쟁 중에 주 2일을 무육일로 정했던 이승만 정부는 전쟁 끝난 뒤에는 매월 25일을 '무주·무육일(無酒·無肉日)'로 선포했다. 비상시국이니 욕망을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이런 발상은 일제강점기 후반에 전시 체제라며 매월 8일마다 술과 고기를 금했던 것을 닮아 뒷말이 많았다. 게다가 1950년대의 무주·무육일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다. 대놓고 못 먹으니 뒷골목 요릿집에선 은밀한 술판이 오히려 더 극성을 부렸다. 일부 고위 공직자들조차 무주·무육일에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지탄을 받았다. 흐지부지돼 가던 무육일은 1957년쯤 사라졌다.

그런 실패의 역사가 있었는데도 1970년대 중·후반 극심한 소고기 파동이 빚어질 때마다 '무육일 부활론'은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1978년 1월부터 대전시에선 매월 17일을 한때 무육일로 시행했다. 심지어 1977년 2월 충남도 경찰국은 음식점들이 내건 '암소등심구이' '암소갈비' '송아지고기' 등의 육류 소개 간판들을 철거키로 했다. '육류 소비를 부채질하는 광고'라는 게 이유였다(경향신문 1977년 2월 22일자).

1주일에 하루 고기를 못 팔게 하면 소비량의 7분의 1이 줄어들 것이라며 시행했던 무육일은 대한민국 탁상행정의 대표 사례로 꼽을 일이었다. 50년 전의 그 투박한 정책은 오늘 우리 식생활 수준의 향상을 새삼 깨닫게도 한다.

1970년엔 국민 1인당 평균 1㎏ 정도였던 연간 소고기 섭취량은 2015년엔 10.9㎏으로 10배를 넘어섰다. 엊그제 보도에 따르면 한우를 더 쉽게 사 먹게 하려는 '소고기 자판기'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육식을 억누르려던 옛 시절과 180도로 달라진 '고기 권하는 사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5/20171205029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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