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농사 뒤이어 전화농사가 대세?
농정당국은 상품 판매자도 아니면서
왜 만드는 것보다 사는 선택을 권할까
농작물이 농민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고? 아니다. 넓은 들판 누렇게 물들 때까지 벼를 키운 건, 거짓말 조금 보태서, 8할이 휴대폰이다. 육묘장에 전화 걸어 모판 예약하는 게 흔한 풍경이다. 이른 봄부터 논 한 자락 잘 고르고, 정성스레 볍씨 소독하고, 파종해서 못자리를 만드는 농민은 만나기 어렵다. 양쪽에서 못줄 잡고 여럿이 논에 들어가 손으로 모내는 건 초등학생들 체험삼아 하는 일이지, 요즘은 다 기계를 쓴다. 정확하게는, 그것도 휴대폰으로 해결한다. 논 몇 마지기 안 되는 처지에 일 년에 한 차례 쓰자고 이앙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앞으로는 병충해 방제도 드론 가진 사람에게 전화 걸어서 부탁할 판이다. 벼 수확도 모내기와 마찬가지, 휴대폰만 있으면 콤바인이 제 날짜 맞춰 대령한다. 19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다방 농사’에 뒤이어, ‘전화 농사’가 요즘 농업 경영의 대세인가? 농사, 어렵지 않다. 땅만 있으면 된다. 아니, 휴대폰도 있어야 한다.
고되게 일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지 않느냐고,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테다. 농민은 일부러라도 고생해야 한단 말이냐고 비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낭만적 감상(感想)에 취해 농업 노동을 예찬하려는 게 아니다. 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농사의 일부분을 맡길 때마다, 또는 필요한 농자재를 외상 주고 사올 때마다, 심지어 금융기관에 가서 이자를 주고 ‘돈’을 사올 때마다, 그게 다 ‘돈 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따져봐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자주 지나는 도로 한쪽 옆으로 제법 넓게 논이 펼쳐진 자리, 누군가 축사를 크게 지어 올리는 모습을 봄부터 눈여겨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한우 100마리는 들어갈 듯하다. 동네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짓고 있는 축사의 주인은 나이 젊은 이십대 청년인데 한우 사육은 처음 시작하는 거란다. 와우! 그렇게 젊은 나이에 저런 대규모 축산 경영체를 창업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한우 한 마리 키워 팔면 요즘 시세가 500만 원 정도 한다던데. 하긴, 비슷한 또래에 딸기를 재배할 스마트팜 유리온실을 짓겠다고 30억 원을 농협에서 융자 받은 청년도 있다는데, 수백 평짜리 축사 따위에 놀라면 우스운 일이겠다. 젊은 농업인들이 대규모 투자를 공격적으로 감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 과감함에 찬사를 보내야 할까?
한우 축사를 지은 젊은이는 대형 소비자협동조합으로부터 건축 자금을 빌린 것이다. 소를 다 키우면 돈 빌려준 그 거래처에 납품한다는 전속거래 계약을 맺었을 터이다. 송아지 입식 자금, 사료, 질병 관리에 필요한 약품 등 필요한 자본 및 투입재 중 상당 부분을 거래처로부터 공급 받거나 융자 받는 조건일 테다. 이른바, ‘수직계열화’라고도 부르는 현상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길 일일까? 그런 스타일의 농업 이면에는 위험이 적지 않게 잠복한다는 점이 문제다. 계약상 ‘갑’에게 예속될 위험, 금융권이 요동치면 한방에 훅 갈 위험, 농장이나 축사에서 일할 시간에 자금 조달이라는 금융 활동에 매달리게 되는 정체성 상실의 위험 등등. 농가 및 농장 외부의 시장에서 투입재나 자본을 조달하는 비율을 높이려는 경향은 1990년대부터 한국 농업의 여러 분야에서 이어졌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급급할 뿐 정작 ‘자기 농사’는 제대로 짓지 못하는 이를 빗댄 표현이 바로 ‘다방농사’라는 말이다.
농사는 생물학적 과정에 힘입어 유기물 형태의 산출물로 전환하는 일이다. 산출물, 즉 농축산물의 시장 가격이 장기간 높게 유지된다면 대출을 받아 투입물을 비싸게 사들여도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중장기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투입재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는 것, 이를 두고 ‘이중 쥐어짜기(double squeeze)’라고 부른다. ‘이중 쥐어짜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농민의 체감은 말할 것도 없고, 농업 통계를 대략 훑어보아도 드러난다. 2008년에 농업생산액은 약 43조 원이었던 것이 2017년에 48조 원으로 증가했으나, 농림어업부가가치는 같은 기간에 오히려 2000억 원 가량 감소했다. 생산액은 증가했는데 부가가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투입 쪽의 비용이 상승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대략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외부로부터 자금을 계속 융자받으며 규모를 확대해 마진(margin)의 총량을 유지하는 것이 한 가지 방향이다. 아니면, 돈 주고 사올 것을 직접 만들거나, 전화 걸어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시키던 농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방향이 있다. 혼자 ‘만드는 것’이 어려우면 협동하여 만드는 방안도 있다. 이는 제도주의 경제학의 고전적인 질문이다. “살 것이냐, 만들 것이냐?” 전자는 악순환이고, 후자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 어느 한쪽이 언제나 절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칼로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구별되는 전략적 선택도 아니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어중간한 균형이나 절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는 선택’이 날이 갈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왜 농정 당국은, 금융업자도 상품 판매자도 아니면서, ‘만드는 선택’보다 ‘사는 선택’을 더 권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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