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경향신문 2020.1.9.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 The Courier online 홈페이지 갈무리

2019년 4월 이 지면에 나는 “열렬한 육식주의자이긴 하지만, 고기를 생산하는 데 얼마나 많은 환경 비용이 지불되는지 잘 알고 있다”라고 썼다. 그리고 2019년 11월 결국 고기를 끊었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를 보고난 후였다. 

육식을 최대한 멀리한 지 이제 두 달쯤 되었다. 혼자 먹을 때는 해산물과 유제품도 거의 먹지 않는다. “열렬한 육식주의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게도, 채식 중심의 식단은 별로 괴롭지 않다. 실은 즐거운 면도 제법 많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각의 경험이 있고, 긍정적인 몸의 변화도 느낀다.

이제 와서 보면, 축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폐해를 알지만 여전히 고기를 먹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면에 썼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22%가량이 가축 생산 및 소비 때문에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육류 및 유제품 섭취를 반드시 줄여야 하는 이유다. 자동차, 버스, 트럭, 기차, 배, 비행기를 모두 합쳐도 축산업보다는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지난해 8월에는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한 달 넘게 불탔다. 축산업을 위한 목초와 사료용 곡식 재배지를 얻기 위해 기업농들이 일삼아온 화전과 난개발에서 촉발된 화재라고 추정되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파괴된 아마존 열대우림의 80%는 축산업 때문이었다. 이런 모든 정보를 그저 앎의 영역에만 가둬두어 왔다. 앎과 삶 사이에 완벽한 일관성을 맞추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 불일치를 불가피하다는 듯 공공연하게 밝힐 일은 아니었다고 뒤늦게나마 반성한다.

부끄러운 일은 또 하나 있다. <더 게임 체인저스>가 결정적으로 육식을 끊도록 이끈 것은 육식이 내 건강과 운동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니 동물성 단백질 섭취는 필수’라는 핑계에 기댔다. 하지만 <더 게임 체인저스>에 비건 식단으로 바꾸고 퍼포먼스가 더 좋아졌다는 운동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걸 보니 그 핑계조차 사라져 버렸다. 555㎏을 들어올려 기네스북에 등재된 스트롱맨, 격렬한 몸싸움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프로 미식축구 선수들, 그 밖에 다양한 종목의 세계 최정상급 운동선수들이 대거 등장해 비건 식단이 자신의 운동 능력을 어떻게 향상시켰는지 증언했다. 그 와중에 고기(적색육과 백색육 모두)를 먹은 후 최소 6시간 동안 혈액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을 눈으로 확인하자 조금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육식이 지구와 그 지구에서 살아야 할 미래세대에게 어떤 비용을 전가하는지 알면서도 내내 육식 끊기를 망설이다가,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위협에서야 결심을 한 셈이다.

한번 마음을 먹자 (완벽하진 못해도) 실천은 어렵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선택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식물성 대체고기는 과거의 콩고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맛으로 좋은 대체재가 되어준다. 각종 콩요리 통조림, 병아리콩으로 만든 후무스 등을 손쉽게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일반 식당에서 조금 더 선택지가 생기기만 한다면, 외식할 때조차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고기를 끊기로 했다고 하자 많은 사람, 특히 어르신들이 “풀만 먹으면 기운 달리지 않아?”라고 걱정을 건넸다. 옛날 생각만으로 갖는 우려다. 요즘은 두어 번의 클릭만으로도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으며, 선택지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비건식품 시장은 127억달러(약 150조원) 규모이며 2026년까지 연 10%가량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을 노리는 다양한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이들의 몸집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식물성 대체고기로 만든 햄버거 패티로 유명한 임파서블푸드는 현재까지 2조4000억원가량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누적 4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임파서블푸드의 식물성 버거는 소고기에 비해 토지를 99% 덜 차지하고 물을 85% 덜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89% 덜 배출한다고 한다. 경쟁사인 비욘드미트는 4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으로 2019년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소고기만이 아니라 닭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해산물, 유제품과 계란까지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상품이 연구되고 또 출시되고 있다. 기후위기의 해법 중 하나가, 그리고 거대한 시장이 여기에 있다. (<더 게임 체인저스>는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1092052005#csidx4ce4c6d46bee87aaf6aa8b4bb472c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