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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우리가족 이야기

미래에 집안일 하겠다는 남자아이(중1)

by 큰바위얼굴. 2024. 4. 15.

치형 이야기다.

"엄마, 좀 더 쉬면 안 될까요?"

"안돼. 많이 쉬었어."

"엄마, 나머진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응. 안돼. 늦게 일어났잖아."

"엄마, 힘들어요."

"12시간 잔 아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일찍 일어나서 했어야지."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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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12시반 정도에 일어났다. 알고보니 어제밤, 아니 오늘 새벽 1시경 잠을 잤다고 하더라도 많이 자긴 잔 모양. 세상 모르게 잔다. 따사로운 햇살조차 썬텐하는 줄 아는 모양. 흔들어 깨워도,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려도 좀 체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니, 어쩌면 일어나서 할 일이 싫어서 거부하고 있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눈을 뜨면 즐거워야 하는데.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 아이는 엄마 눈치 때문에. 어디에도 붙들고 공부하는 이유에 본연의 이유는 빠져있다. 숙제를 잘했거나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한껏 좋아져 뿜뿜 자신감을 보이고, 보상으로 주어진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기분이 끝내준다. 그런데, 어젠 곧잘 해낸 일이 오늘은 왠지 일어나는 일부터 꼬일대로 꼬였다.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해도 엉기적 거렸고, 치.형.아. 라는 소리만 수없이 메아리 친다. 

"여보! 평소에 3시간이면 할 일을 오늘 종일 9시간에 걸쳐 하고 있어. 그것도 끝마치지도 못했고."

"..."

"여보!! 자꾸 여보가 치형이 편드니까 더 그래. 지금 시험기간인데, 이러면 되겠냐구."

"..."

잠이 부쩍 늘어난 아이, 갓 중학교에 올라갔다. 한 달 정도 지났다. 보약이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말이 들릴 만큼 힘들어 한다. 그 만큼 에너지를 쓰니까 라는 말이 딱 맞을 만큼, 그래서 귀가한 후 2시간 자고 일어나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열의를 갖고 학습하는 모습은 부모에게 흐뭇함을 자아내고, 빈둥거리며 멍 때리는 모습은 엄마에게 가시돋게 만든다. 복어처럼.

머리엔 김이 모락모락, 열화가 찬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잠이 많아졌다.

"공부가 하기 싫어요. 수학은 쓸모조차 없잖아요."

공부에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잘 되는 날이 있으면,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는 '잘' 이다. 잘은 노력을 말한다. 혹은 열의를 말하기도 하겠고. 뭔가 이루고자 하는 의지나 동기일 수도 있다. 뭔가 바라기 때문에 하긴 하는데 도대체 이걸 왜 배우냐고 따져묻는 아이와 그래도 요건 세상살이를 본격적으로 하기 앞서 배워야 하는 지식이라고 맞서는 부모. 그렇게 하기 싫으면 뭘 하고 싶은데 라고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으면, 뭘 하고 싶은데?"

"게임요. 신나고 재밌잖아요."

"재미라..."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50년 인생 헛살지 않았다는 듯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게임이 주는 재미 말고도 게임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공부가 지닌 의미와 하지 않았을 때 주어질 참혹한 미래상을 말하는데 두 눈이 말똥거린다. 꿈뻑 꿈뻑.

그래서, 실제 공부할 내용을 살펴보면서 공부가 지닌 '재미'를 알려주겠노라 탁자로 향했다. 위치, 위도와 경도, 대륙과 해양 등 광범위하게 위치를 설정하는 방법으로부터 주소, 최근 도로명 주소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그나마 직접적으로 연결된 내용이 보여 한껏 고무된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니 '지리 정보 기술'이 나왔다. 지리는 뭔지, 정보는 뭔지, 지리 정보는 뭔지, 이어서 기술은 뭔지, 지리 정보 기술이 뭔지 살펴본다. 실시간 위치정보, 맛집 표시 등이 사례로 나온다.

재미라, 솔직히 실시간 위치정보를 알게 해준다거나, 맛집 표시하는 기술을 지금 알아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어디 쉽게 인정할 수 있으랴. 앞에건 T맵처럼 운전할 때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실생활에 밀접한 기술이고, 맛집 표시와 같은 기술도 우리가 외식할 때 즐겨 찾는 기술이잖아 하면서 알면 좋지 않느냐며 말을 건넨다. 도대체 왜 내가 그걸 지금 알아야 하냐는 듯이 쳐다본다. 결국 재미를 찾지 못해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로 와서 누웠다.

"공부 안 하고 커서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살건데?"

"집안일하면서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살 수 있잖아요."

진심으로 들렸다. 헉. 꿈의 자리,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포지션, 잘도 찾아냈구나 싶다. 그렇다고 쉬이 인정할 수 없지. 첫째, 그런 여자를 만날 수나 있을까. 두번째, 만난다손 치더라도 외벌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되묻고 만다.

어처구니 없어 하는 엄마, 허를 찔린 듯이 기가 차다는 듯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리고 도대체 어느 여자가 그런 남자랑 결혼하겠니? 라고 묻는다. (나... 속으로 든 생각이다)

하기싫다는 아이와 해야만 한다는 엄마, 기복을 인정하고 지켜보자는 아빠. 그렇게 기가찼던 날이 지나고 전주행 길을 나서메 포옹하려니 뒷걸음질 치다가 마지못해 안겨드는 아내를 뒤로하고, 오늘은 흐뭇한 날이길 기도한다. 어! 어! 하는 소리와 우웅 웅 대답하는 소리에 가름마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면서도 잠시 피할 생각에 마음은 한 편 가벼워진다. 그래도 써봐야 하지 않겠어 라는 자문자답 소리를 듣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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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는 보고 자란다.

배드민턴 치고 밥먹고 오후4시 산책에 이르는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일상을 부럽다고 여길 지도 모른다. 확인되지 않음.

치열하지 않고 평화롭기만 한 세상 살이의 맛을 옆에서 느낀 듯하다.

즐겁고 재밌는 것만 골라서 해도 하루 해가 지나간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했나 보다.

대안이 명확하다. 솔직히 기대된다. 아내는 결혼 당시 일수를 받는게 꿈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그랬나 모르겠으나 그 말이 힘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치형이 또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어디 돈 많고 예쁘고 상냥한 여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출산율 저하, 인공지능 대두, 늦은 결혼나이, 성별 불일치... 여러 상황에서 하고자 한다면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 아이의 엉뚱함과 치기는 아빠를 닮은 듯 보인다. 엄마의 물음에 어눌한 답변과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는 건 아빠와 엄마가 섞인 모양이고. 그래도 다행이다. 놀고 먹을 줄 알았는데 집안일이라도 하겠다고 하니 엄마는 이어 집안일이 얼마나 고된지, 앉지도 못하는지,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지, 특히 요리할 때 앉지도 못한다는 말에 "그럼, 앉아서 하면 되잖아요?" 라는 반문에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쭈욱 설명하는 걸 보고 있자니 도대체 갈등인지 싸움인지 대화인지 교육인지 헛갈릴 지경. 더한 가관은 "아이는 어떻게 할 건데? 너 아기 안 낳을꺼야? 산모가 아기 낳을 땐 수입이 없어서 어떻게 생활할 건데" 라는 엄마의 물음에 치형이의 궁색한 말이다. 안 나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잘도 그러겠다. 3형제 속에서 막내로 태어나서 엄마와 아빠 입에서 허! 참! 기가찬 모습을 만들어내놓은 놈이 과연 잘도 그러겠다. 딱 니 닮은 아들 낳아서 너처럼 게임할테니 내버려두고 나중에 커서 돈 많은 여자 만난다는 소리를 들어봐야 알지 않을까? 그래서 되돌려주었다. 

그래도 한 편으로 저놈 저거 하면 되는데 게임이나 할라치고, 흠 '잘' 하지 않아도 '잘'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하면 좋겠는데, 에너지를 쓰기만 하려고 하니 어떻게 에너지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푹 빠져 지내는 시간 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배불리 먹고 즐기니 더할나위 없다. 감정이 고양되고 다시 다시 하고 싶다. 그런데, 그로 인해 놓친 수많은 것들이 아깝다. 그 시간에 어색한 뮤지컬을 봐도 좋겠고,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축구를 해도, 뭐를 해도 게임만 못할까마는. 쉽게 접한 쾌락에 다른 걸 돌아볼 겨를을 잃고 만다. 표현하기, 나타내기, 만들기. 특히 만들기 만큼은 해왔으니 손기술은 무척 좋을 텐데. 단순히 놀이가 아닌 것을 언제 깨달을 지. 만들기, 조립하기, 창작하기, 따라만들기, 흉내내기, 요리하기...

"아빠, 1시간 정도 시간 괜찮나요?"

"왜?"

"오늘 딱 호떡 땡기는데, 배도 출출하고 한 동안 호떡 만들지도 않았으니까."

꾀돌이가 되었다. 호떡데이 라고 2주 간격으로 아빠에게 호떡을 반죽하게 시킨다. 더구나, 저번에 반죽을 손수 해서 딱딱해졌기 때문에 이젠 반죽조차 내가 해야 한다는 걸 고려하면 거의 시키는 수준이다. 어찌 해야할까? 거짓말을 곧잘 하더니, 이젠 꾀를 부린다. 매를 들어야 할까? 산에 가서 해온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칼집을 낸 게 2개나 있다. 이번 창고 청소할 때 버리지 않고 우산장에 들여놓았다. 꾀에는 매가 제격인가? 칭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켜보자니 궁색하고, 물론 엄마가 다부지게 탁 붙어 앉아서 하는 교훈을 듣다보면 차라리 하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 꺼란 결과를 유추가능하지만, 공부하기 싫어하는 걸 어찌 해볼 수 없을까 하는 미션 컴플릿을 떠올린다. "그냥 좀 해봐." 라는 말로 의자를 떠날 때 했던 말이 사실 답이지 않을까. 어느 누가 처음부터 좋았을까. 그럼에도 치형이는 유독 운동을 좋아하니 책을 통한 즐거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책보고가라' 주인공에게 물어볼까?

지금 쓴 에너지는 너무 아깝다. 물론 쓴 만큼 재미로 가득찬 심성은 다시 재미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긍정 에너지로 작동할 건 좋은 일이긴 하다. 다만, 어릴 때 쓴 에너지로 인해 수많은 면면들이 버라이어티 하게 펼쳐질 여정에서 하나둘 사라져 버리면 남은 거라곤 단조로움 뿐이라는 걸. 정작 어릴 때 재미를 추구했는데 어른이 되어 단조로움을 얻는다라.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말린다. 기회로 삼고 해보라고. 너의 긴 긴 여정에 도움이 될테니, 공부하는 습관 자체가 너의 큰 무기가 되어 줄 거라고. 핑계나 계책 말고 정공법으로 배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둬 보라고.

하나에 빠져 지내는 걸 경계한다. 우습게도. 

빠져지낼 꺼리를 찾는다. 여전히.

인생 뭐 있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라는 말이 무성하다.

인공지능이 활략할 때 인류는 놀고 먹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과거, 산업혁명 때는 어떠했을까? 인터넷이 깔릴 때는? OA(사무자동화) 프로그램이 설치될 때는 인류의 일꺼리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는데 어디 그런가? 속도전을 방불케 하면서 덩달아 인류에겐 더 한 진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으니, 과연 인공지능이 인류의 노동력을 대체할까마는 인류가 놀고 먹는다는 기대 보다는 줄어드는 출산율 만큼 기하급수로 늘어난 인공지능이 빈 자리를 채우면서 귀해진 인류에겐 본래 태어난 숙명과도 같은 미션이 주어지진 않을까 하는 막연함이 남는다.

게임도 한 때다. 잠시의 도피일 망정, 현실이 아닌 장벽은 곧 나타날 매트릭스 세상에서 선택을 강요할 지도 모른다. 또한, 게임을 통한 무한 에너지 발생은 인류에게 재미를 준다기 보다는 감옥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벌써 했다라는 것에 대해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를 대봐라. 치형아

아마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망할 꺼다. 본래의 너를 없애고 몰두하게 하니까. 아마 기계문명이 발전할 수록 더 그럴 것이다. 친숙하기에 오히려 게임이 게임 같지 않게 될 꺼다. 단지 손동작이나 재빠른 판단이 짜여진 판 위에서 움직인다는 걸 인지하게 될 때 그만 둘 일이다. 왜냐하면 현실이 보다 더 급진전할테니까.

우주모함을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꿈을 상상해봐.

비겁한 패배자처럼 해보지도 않고, "왜 내겐 기회조차 주지 않았나요?" 라는 반론을 제기하지 말고, 제발 너만의 우주모함을 갖고 싶다면 그만한 자격이나 기술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판이 짜여진 세상, 지루하기만 한 세상이라고 자신하니? 권력과 명예가 덧없이 흘러내린 날, 시민 봉기가 아니라 자연스레 뒤바뀐 세상에서 능력이란 도전의식 혹은 냉철하고 용기 있는 자일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건 공부로 늘리는 시험성적은 아닐지언정, 공부를 통한 경험은 반드시 라고 할 만큼 필요할 꺼라고 본다. '지리. 정보. 기술.'을 왜 알아야 하나요? 라는 의문 보다는 왜 지리 정보 기술을 과목에 넣어 배우게 했을까 보다는 오~ 오~ 지금 이 세상의 기술이 요정도 구나 하는 가늠자로 살펴보고 과연 우주시대에는 어떻게 변화할까 추정해봐도 좋겠다는 생각. 앞으로 누군가 너에게 꿈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도 좋다.

우주시대에 살아가기 라고.

한 낮 단 꿈에서 깨어나보니 50이 되었다. 그나마 치형이, 영탁이, 영록이, 서희. 참으로 다채롭다. 잊혀진, 잊고지낸, 잊어도 좋은 추억들이 간직되어 있기에 더욱 기분이 좋다. 되내이고 되세기면서 되돌아봐도 참으로 다채롭다. 누군가 말하겠지. 추억을 경험이라고. 꿈을 가지라는 강요는 아니다. 단지, 게임에 치우치면 놓칠 당장의 즐거운 경험 뿐만아니라, 게임만 조금 내려놓으면 얻게 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다채로운 경험에 대해 조금만 의미를 부여해보라고.

하기싫어요 라는 말 대신 해볼께요 하는 치형이의 다부진 말에 부모는 흐뭇해 한다는 걸. 네 미래의 아내와 자식과 너 자신의 무궁무진한 삶의 편린이 우주 저멀리 퍼져나가길 바라면서, 호떡 싸들고 마중갈께~  아빠가.

 

p.s. 치형이는 서희와 성호에게 선물이요 사랑이요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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