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0월의 차가운 공기가 창문 틈새로 스며들었다. 바람은 잠들지 않은 듯, 나무 이파리를 부드럽게 스쳐가며 살짝 우는 소리를 냈다. 침대 위에서 나는 숨을 깊게 내뱉었다. 양압기가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며 내뿜는 공기 소리는 마치 기계적인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었다.
강아지 해나는 오른발 아래 이불 위에 붙어 있고, 예티는 허리 왼쪽에 찰싹 달라붙어 잠든 채로 뽀로롱, 뽀로롱 소리를 낸다. 강아지들의 작은 숨소리가 묘하게 위로가 된다. 마치 내 인생의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흩날려주듯. 그 소리는 이불 위에서 얕게 내려앉은 가을 이슬과도 같았다.
옆에서 이를 갈며 자고 있는 서희의 소리마저 익숙했다. 바로 저 다른 방에는 치형이와 영록이가 잠들어 있고, 멀리 용인에서는 영탁이가 군훈련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뻐근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진잠 집에서, 장모님은 대구 아파트에서 각자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남동생 윤호는 며칠 전 풋살 하다가 무릎을 다쳐 이김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고, 정아네는 진잠에, 정숙이네는 세종에 있는데, 그들의 집도 지금쯤 깊은 밤을 보내고 있겠지. 이 조용한 새벽, 나는 이 모든 인연들이 얇고 부드러운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삶이란 격자는 그 실들을 서로 엮어 만드는 게 아닐까?
퇴직을 앞에 둔 나의 마음은 복잡하지만, 이 새벽의 정적 속에서 생각해 본다. 퇴직이란 어쩌면 단순히 또 다른 어울림의 연속에서, 내가 만나게 될 이들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민턴장에서 몸을 움직이며 잠시 활력을 찾고, 사람들과 어울려 웃으며 삶의 공감대를 나누는 그 순간들이 결국 중요한 것이 아닐까?
서희와 함께 민턴 후에 나누는 대화, 이웃들과 나누는 잔잔한 일상. 퇴직이 다가오지만, 그건 마치 민턴의 게임이 끝난 후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같은 거다. 결국, 죽음 이후도 그저 인식 저편에서 환경이 바뀔 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생'(= 있음)은 계속된다. 살아있음이란 찰나와 같지만, 그 찰나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떠나고 다시 만나면서 격자를 완성해 가는 게 아닐까?
이 순간, 뽀로롱 소리를 내는 강아지들의 숨소리, 아내의 잠버릇,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 많은 인연들이 나를 새벽의 고요 속에서 잠시 머물게 한다. 김성호 w/ ChatGPT.
...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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