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와 부동산 거품 초래할 금리 인하
경향신문 2015.3.30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기본 금리를 1.75%로 인하했다.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의 주문에 따라 단행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부는 금리 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 악화에 대응해 안심전환대출을 공급하고 있다. 3% 이상의 변동금리와 만기 일시상환 조건의 가계대출을 2.6%의 고정금리, 분할상환 조건으로 전환해주는 내용이다. 지난 24일부터 20조원을 공급했지만 인기가 좋아 불과 며칠 만에 소진되어 추가로 20조원을 더 공급한다고 한다. 안심전환대출도 기존 가계채무자에게 금리 인하 혜택을 주는 셈이다.
금리 인하와 안심전환대출 확대 조치로 빚을 많이 진 서민들은 다소 혜택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완화 조치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형평성 문제이다. 원리금 상환을 연체한 저신용자와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서민들은 안심전환대출에 따른 이자부담 경감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다음으로 금리 인하는 이미 잔뜩 커져 있는 가계부채를 더욱 키우고, 또 자산 거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말 이미 1089조원에 달한 가계부채는 금리까지 내려가면서 곧 1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다. 국제 비교에 쓰이는 자금순환표 기준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64.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당시 미국 115%, 일본 129%, 독일 93%, 영국 151% 등에 비해 우리나라가 훨씬 높다. 또한 금리 인하는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자산소유자의 부를 키워주는 한편 주택 전·월세와 상가임대료 상승으로 주택임차 서민과 상가임차 자영업자들을 괴롭힌다. 자산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금리 인하 형태의 보조금을 일부 가계채무자에게 제공할 때 실제 실속을 챙기는 것은 부동산 소유자다. 벼 재배농가의 소득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쌀 직접지불금을 논을 빌려준 지주가 전부 가로채거나 농지임대료를 올려 일부 가로채고, 이를 배경으로 농지가격이 올라간다. 어린이집에 보육료를 지원하니까 어린이집에 높은 프리미엄, 즉 권리금이 붙어서 거래된다. 이른바 보조금의 자본화 현상이다. 금리 인하 조치에 힘입어 저리로 대출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면 주택가격이 상승한다. 전세를 놓던 사람도 이자가 싸니까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주택임차가구는 높은 월세 부담을 지게 된다.
금리 인하가 가져올 가계부채 누적과 자산가격 앙등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저소득층, 빈곤층에게 주거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저리로 공급하여 빈곤층의 자가주택 소유를 독려한 미국에서는 2008년 경제위기 전 10년 동안 실질주택가격이 82%나 상승할 정도의 부동산 거품이 발생했고 결국 세계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 반면 저소득층에게 주택담보대출 확대 대신 주거보조금을 지급해 주거를 보장했던 독일에서는 같은 기간 실질주택가격이 14%나 내렸다. 금융이냐, 재정이냐 주거정책수단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둘째, 부동산 임대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 주거보조금을 지불해도 주택소유자가 임대료를 올리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뿐이다. 주택임차료 인상을 물가상승률 내지 건축비 상승률 수준으로 규제하고, 임대차 기간 보장도 2년에서 최소한 5년으로 늘려야 한다. 권리금 법제화, 임차기간 5~10년 보장 등 상가임차인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데 이것도 빨리 통과해야 한다.
셋째,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지난해 7월 2조6000억원에서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로 4조6000억원으로 늘어난 뒤 12월에는 6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2월에도 4조2000억원이 늘며 예년 증가액의 세 배 수준에 달했다. 이자만 내는 주택담보대출의 원금 상환이 2019년부터 급증하면 상환 불능 가구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LTV를 50%(수도권)~60%(지방)로, DTI도 40%(투기지역)~60%(수도권)로 다시 강화해야 한다.
금리 인하는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여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려는 일반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이것은 빚을 더 내서 집을 사고 소비를 늘리라는 신호가 된다. 부채와 자산가격 거품을 막는 미시적인 규제를 함께하지 않으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2008년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도사태처럼 경제위기를 초래할 뿐이다.
<장상환 | 경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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