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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농산물 직거래의 어려움

by 큰바위얼굴. 2015. 8. 11.

 

농산물 직거래의 어려움

 

한겨레 2015.8.10

 

 

올봄에 감자를 캐서 팔던 때의 일이다. 도시의 어느 소비자가 한 상자를 사서 먹고는 맛있다고 다시 한 상자를 주문해서 보내주었는데, 처음 것보다 알이 작다고 불만 섞인 전화를 했다. 올해 감자가 맛이 좋고 잘 썩지 않아 호평만 듣던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감자를 기계로 선별하면 그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선별기는 기계값도 문제지만 일꾼이 대여섯은 달라붙어야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소규모 농가에서는 쓸 수 없는 물건이다. 사람의 눈대중이라는 게 워낙 불안해서 한 집에 물건이 반복해서 갈 때면 신경이 꽤 쓰인다.

쌀이나 콩처럼 말린 상태로 파는 농산물과는 달리 감자나 배추처럼 신선하고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상태로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농산물은 판 뒤에도 은근한 걱정거리다. 실제로 농사를 시작한 초창기에 판매한 감자가 썩어버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감자는 캐서 1주일 정도 상처를 치유하고 수분을 뺀 뒤에 팔아야 하는데 경험이 없어서 바로 보낸 탓이었다. 또 작년에 판매한 김장배추 중에서는 봄에 김치가 물렀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볕이 잘 드는 밭에 심은 배추가 가을 날씨가 유난히 더운 탓에 겉은 멀쩡했지만 속에서 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듯하고 농사일의 즐거움이 싹 가시게 된다. 또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포기하고 공판장이나 농협에 한꺼번에 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는 좋은 가격을 받을 수는 없지만 물건의 품질에 관한 불만을 생산자가 아니라 중간판매자가 받기 때문에 뒷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물론 좋은 물건을 줘서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반면에 직거래 소비자들 중에서는 반품이나 변상을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끔 칭찬과 감사의 말을 듣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득이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보낼 때는 조금이라도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택배와 인터넷이 결합된 원격지간 거래보다는 가까운 거리의 소비자들과 직접 물건을 주고받는 거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요즘 이른바 친환경 농사를 한다는 농부들은 한살림이나 생협 같은 직거래 단체에 고정적으로 납품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생산물의 판매에서 각자도생이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는 농부들은 도시에서 귀농한 농부들을 중심으로 블로그나 밴드 등 이른바 에스엔에스(SNS)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농사짓는 모든 과정이 단계마다 사진으로 소개되고 간단한 설명이 뒤따른다. 때로는 도시민이 좋아할 만한 들꽃이나 에피소드 등을 곁들이기도 하고 도시민을 위한 체험 행사를 열기도 한다. 컴퓨터에 관해 무지한 나로서는 그 정성이 감탄스럽다. 농사일보다는 화면을 꾸미는 데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간혹 어떤 농부들은 절이나 예배당에서 고독하고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그림을 올리기도 하는데, 마치 몸매 좋은 여자가 속살을 드러내 보이며 상품을 홍보하는 것과 비슷해 보여 같은 농부로서 민망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또 최근에는 정부를 중심으로 농업을 6차 산업이라 부르는 일이 잦다. 3차 산업까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바라 4, 5차 산업이 무얼까 궁금했는데, 농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까지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라 해서 실소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농부라면 대농이나 집단화된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농업과 농촌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보존해왔던 소농과 고령농들은 이러한 농업 현실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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