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태풍처럼 수시로 찾아오는 천재지변으로 바라봐야
ㆍ전문가 “관점 전환” 지적
ㆍ한국에서만 유독 대량 살처분…야생조류 발생 많은 일본·유럽 고의 포획 없이 폐사체만 조사
“조류인플루엔자(AI)는 태풍처럼 수시로 발생이 가능한 천재지변으로 여기고 대비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가금의 발생 건수는 훨씬 적지만 야생조류의 발생은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야생조류의 경우 15일 현재 21개 도·현에서 212건의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반면 가금의 경우는 7개 도·현에서 10건의 양성 사례만 발생했을 뿐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야생조류보다 농장 가금에서의 발생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일 현재 야생조류에서의 AI 발생 건수는 53건으로 폐사체와 살아있는 개체에서 36건, 분변에서 17건 확인됐다. 가금의 경우 10개 광역시·도, 41개 시·군의 340개 농장에서 주로 산란계와 육용오리가 AI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가 AI 전파의 주범으로 꼽는 야생조류의 감염 건수가 일본이 더 많고, 지역도 광범위한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AI 대발생은 인재임을 알 수 있다. 살처분 수는 한국이 지난 10일 현재 3312만마리인 데 비해 일본은 지난달 15일 기준 114만마리 정도다. 독일,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등에서도 다수의 야생조류와 가금에서 AI 감염 사실이 확인됐지만 한국 같은 대학살이 벌어진 경우는 없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정부 당국이 AI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반도에서 태풍 때문에 빈번하게 인명·재산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매년 크고 작은 태풍이 태평양에서 발생해 한반도에 피해를 입히며 기상청과 정부 방재당국은 태풍철이 오면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비를 권고한다. 기상청 예보에 따라 국민들은 태풍이 북상하면 어선을 내항으로 대피시키고, 축대를 보강하고, 유리창에 신문지나 테이프를 붙여 깨지지 않도록 한다. 천재지변인 태풍을 탓할 시간에 미리 대비함으로써 피해를 줄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매번 AI 발생 때마다 철새 탓만 늘어놓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수시로 태풍이 북상해 피해를 입히는 것을 알면서도 태풍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이 AI를 천재지변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동성 야생조류, 즉 철새들은 상시적으로 AI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철새의 전 세계적인 이동을 막을 길이 없다는 점에 있다. 주로 북극권에서 철새들 사이에 일어나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길이 없는 상황에서 철새에서의 AI 발생을 통제가 불가능한 인자로 보고 방역대책을 세우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AI 발생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임에도 유독 한국에서만 대량 살처분이라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대응이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AI, 팬데믹 가능성”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부터 AI가 전 세계적인 유행병, 즉 팬데믹(Pandemic)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FAO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H5N8 혈청형의 AI가 발생한 지역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중동 등이다. 지난 15일 현재 발생국은 최근 발생이 확인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카메룬, 카자흐스탄을 포함해 38개국에 달하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H5N8은 2014년 AI 사태의 원인이 된 혈청형이다. 국내의 이번 AI 사태에서는 H5N6과 H5N8 두 혈청형이 동시에 발생했다.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한국의 AI 대응에서 철새에 대한 태도는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일본, 유럽의 경우는 AI 양성 여부 확인을 위해 일부러 야생조류를 포획한 사례가 거의 없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폐사한 개체나 구조한 개체의 검사를 위주로 AI 양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생조류는 AI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건강한 개체들은 대체로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 죽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야생조류는 물론 포천에서 양성 사례가 처음 나온 이후 고양이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인 바 있다. 한국의 철새 포획을 통한 AI 감염 여부 검사는 메르스 사태 당시 메르스 양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길 가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여 검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행태인 셈이다. 유럽, 일본의 경우 수변공원에 다수 서식하는 고니류를 중심으로 한국보다 폐사한 사례가 많았지만 한국에서처럼 AI 전파의 주범인 양 백안시하지는 않는다.
국제기구 역시 철새를 AI 주범으로 몰면서 서식지를 파괴하고, 서식지를 소독하는 행위에 대한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FAO는 각 회원국에 대한 권고에서 “서식지 파괴를 통해 야생조류의 바이러스를 통제하려 시도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없다”며 “소독제를 야생조류 서식지역에 뿌리는 조치는 역효과를 일으키며 질병 통제 관점에서도 효과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 “축산차량 이동현황 관리해야”
지난 3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확인된 가창오리 등 폐사의 경우도 처음 32마리에서 다음날 8마리였고, 그 이후로는 폐사체가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다. AI로 인해 한꺼번에 가창오리가 죽어나가는 것이라면 폐사체가 점점 늘어나야 하지만 줄어드는 것을 보면 가창오리 개체군 가운데 약한 개체들이 AI로 인해 도태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14년에도 20일 정도에 걸쳐 확인된 가창오리의 폐사체는 148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군집한 개체들이 떼죽음을 당하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야생조류는 대체로 자신이 종말숙주(Terminal Host)가 되어 혼자 감염되고, 전파는 시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야생조류가 농장의 가금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AI 방역의 핵심이지만 한국의 방역당국은 이 같은 장기적인 대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현재 철새 도래지와 지나치게 가까운 가금 농장을 장기적으로 이전시키고,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먹이 주기와 더불어 서식지 보전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AI 예방을 위해 과학적이고, 실제적인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지난 8일 열린 과학기술총연합회포럼에서 현재 방역 수준이 극히 미흡한 영세 농가에서 이용 가능한 간이 차단방역시설을 개발해 보급할 것과 철새 및 쥐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반복적으로 AI가 발생하는 농가에서 직접 사용이 가능한 진단키트의 보급과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폐쇄회로(CC)TV 등을 이용한 축산차량 이동현황 관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송 교수는 빠른 AI 발생 확인을 위해 현재 마른 분변 위주로 이뤄지는 정부 방역당국의 예찰을 신선한 분변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2010~2013년 채취한 시료 수는 1만8672개이지만 양성률은 0.15%(29개)에 불과했다. 환경부가 2014~2016년 3802개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양성률은 0.29%(11개)였다. 반면 송 교수가 이끄는 건국대 연구진이 2009~2016년 1만3323개의 신선한 분변 시료를 분석한 결과 양성률은 1.14%(152개)였다. 야생조류가 배설한 지 얼마 안된 분변을 채취해 분석하는 예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서울시에서 AI 양성 개체가 확인됐다고 해서 “서울도 뚫렸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야생조류에서는 수시로 AI 바이러스가 검출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처럼 주변을 차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이나 서울시는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오히려 시민들 불안을 부추기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이전에도 서울시에서 AI가 발생한 적이 있고, 어쩌다 한 개체의 감염이 확인된 것으로 서울 방역망이 AI에 뚫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꼭 필요한 조치 외에 과도한 것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축산이슈 > 시장상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2개월, 어떤 변화? (0) | 2017.03.03 |
---|---|
가축 주치의 제도 (0) | 2017.02.22 |
손정의, 소프트뱅크의 질주 (0) | 2017.02.16 |
유통주의 통폐합 (0) | 2017.02.07 |
구제역 발발, 2010년과 비교 (0) | 2017.0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