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2개월, 어떤 변화?
한겨레 2017.3.1
실업자 무작위 선정해 매달 70만원
수당 잃을까 구직·창업 꺼리던 이들
기본소득 발판 삼아 새출발 힘 얻어
16세기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서 제안
정치인·기업가들도 ‘시대정신’ 공감대
EU 시민 64% 지지…재원은 ‘뜨거운 감자’
핀란드 제2도시 탐페레 인근 마을에 사는 두 자녀의 아버지 미카 루수넨은 지난해말 정부의 직인이 찍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한 달에 560유로(약 70만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게 됐다는 통지문이었다.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각했어요. 혹시 허위 통보가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습니다.”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올해 1월1일부터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한지 두 달이 지났다. 전국의 25~58살 실업자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향후 2년간 매월 560유로를 그냥 주는 것이다. 루수넨은 그 중 한명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수혜자들에게 나타난 변화와 여전한 논란 및 과제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기본소득이 자동화, 일자리 부족, 저임금의 해법이 될 것인가’에 주목한 심층 르포에서다. ▶관련기사=핀란드, 기본소득 실험…매달 71만원 그냥 준다
루수넨은 최근 일자리를 구했다며 “(기본소득은) 내 수입에 덤으로 얹어진 공짜 보너스”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다른 수혜자들. 특히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이들이게 기본소득 지급은 엄청난 변화를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까지는 실업자가 창업을 할 경우 최근 6개월 동안 아무런 수입이 없었어도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저축해 돈이 없으면 창업은 불가능했죠.” 그런데 기본소득은 그런 우려를 지우고 실업자들의 새 출발을 격려한다는 이야기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가 기본소득 실험 시행을 홍보하는 동영상의 한 장면. 핀란드 사회보장국 누리집 동영상 갈무리
또다른 기본소득 수혜자 유하 예르비넨은 사업이 파산한 뒤 5년 동안이나 실직 상태였다. 그동안 결혼식 비디오 촬영,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공짜로 해주며 지냈다 그는 “기본소득 실시 이전에는 그런 일들에 보수를 받을 경우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기본소득’이란 개념의 뿌리는 깊고 오래 됐다. 16세기 초 영국 사상가이자 정치가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생계형 절도범들에게 끔찍한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설파했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적극 참여했던 미국 정치인 토머스 페인(1737~1809년)은 지주들의 토지세를 재원 삼아 모든 국민에게 21살이 되면 15파운드를 지급하고 50살이 된 이들에겐 평생 매년 10파운드를 주자는 혁명적 발상을 내놨다. 이후 기본소득은 많은 사상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와 영국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 등이 기본소득을 주창했고, 1960년대 미국에선 시민권 운동과 맞물려 ‘최소소득 보장 접근법’과 시민보조금 지급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실현되진 못했다. 1980년대에도 서유럽에서 시민임금 생존소득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유토피아>에서 기본소득 개념을 설파한 16세기 영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 토마스 모어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가디언>은 오늘날 기본소득은 이미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본소득이 우리 시대의 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과 기업가, 정책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인 일론 머스크, 미국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오는 4월 프랑스 대선의 사회당 후보인 브누아 아몽, 우리나라의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열성적 주창자로 들기도 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모든 국민에게 예외없이 일정액을 무조건 지급한다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변형한 것이다. 수입 여부와 상관 없이 주는 건 맞지만, 기존의 실업수당 등 사회복지 급여를 폐지하고 관련 행정비용을 최소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피트리코 마틸라 사회복지·보건 장관은 <가디언>에 “시간이 흐르면서 복잡해진 사회복지 시스템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었다”며, 수혜자들의 부담 없이 단기 취업과 창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럽에선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지만 막대한 재원 마련 방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이 회원국 시민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명 중 2명(64%)이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했다. 최대 이유는 ‘경제적 근심 경감’과 ‘기회 균등’이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노동을 그만 두겠다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재원 마련을 위한 세제 개편을 수용할지에 대해선 부정적 태도가 많았다. 영국 싱크탱크인 ‘기술·제조업·상업 촉진을 위한 왕립학회(RSA·이하 학회)의 앤터니 페인터 소장은 연간 4000파운드(약 560만원)의 기본소득을 영국인에게 주는 데 필요한 예산 180억파운드(약 25조원)는 소득세 3% 인상에 맞먹는 것으로 추산했다.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생산 자동화 추세도 또다른 과제를 던진다. 이미 1930년대에 경제학자 케인스는 기술발전이 인간의 노동시간을 주당 15시간까지 줄일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레스터대의 피터 놀란 교수는 “수많은 일자리가 자동화할 것이란 예측은 기술적 가능성에 근거한 것이지 실제 기업들이 자동화기술을 적용하는 방식과 범위에 대한 증거에 근거한 게 아니다”며 ‘노동의 종말’ 이론은 비현실적 가정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물류산업의 경우 기업들은 자동화 기술을 고용자들을 대체하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지구언들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줄이고 분 단위로 노동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싱크탱크 파레콘의 안티 야후히아이넨 소장은 일부 비양심적 고용주들이 기본소득을 구실로 불안정한 노동 모델을 확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본소득이 정치와 경제의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한 이유다.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784752.html#csidx7a9c2189ae420eaa94c020748462f10
'축산이슈 > 시장상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서 AI 발생…미국산 계란, 닭고기 수입 금지 (0) | 2017.03.06 |
---|---|
또 다른 금융위기의 조짐 (0) | 2017.03.06 |
가축 주치의 제도 (0) | 2017.02.22 |
AI, 태풍처럼 수시로 찾아오는 천재지변으로 바라봐야 (0) | 2017.02.20 |
손정의, 소프트뱅크의 질주 (0) | 2017.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