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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이슈/시장상황

음식이 어디 맛뿐이랴

by 큰바위얼굴. 2017. 4. 13.

음식이 어디 맛뿐이랴

 

한국일보 2017.4.12

미식과 맛집은 나와 거리가 먼 화제다. 눈알이 뱅글뱅글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냉장고 문을 열고 되는대로 꺼내 먹는다.

아무 것도 없으면 밥을 물에 말거나, 간장에 비벼서 삼킨다. 식사는 위장을 채우고, 눈알의 초점을 잡아주는 것으로 족하다. 영양이 문제될 수도 있지만, 삶에서 결핍을 따지기로 한다면 어디 영양뿐이겠는가. 삶이 곧 결핍이다.

책에 대한 책과 미식이나 맛 집에 대한 책은 읽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끔 예외가 생긴다. 서평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서도 낱낱의 책을 소개하거나 해석하기보다 주체적인 책 읽기 방법을 몸소 보여준 정희진의 서평 모음집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 2014)가 그렇고, 평범한 장삼이사의 입길에 오르내린 오래된 식당이며 서민의 음식을 찾아 다녔던 박찬일의 <백년식당>(중앙M&B, 2014)과 <뜨거운 한입>(창비, 2014)이 그런 예외다. 여기에 헨미 요의 <먹는 인간>(메멘토, 2016)을 추가한다.

색다른 음식을 찾아 전세계를 쏘다녔다면, 그 사람을 팔자 편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말에서 1994년 봄까지, 아시아 각국과 동유럽ㆍ아프리카를 떠돌아다니며 음식 기행을 펼쳤던 이 책의 지은이 헨미 요도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은 호사가의 미식 취미나 보편 과학으로 위장된 음식 인류학, 그 어느 것과도 상관없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지은이는 미식이나 포만이 아닌 배고픔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얼마나 못 먹고 있을까? 배고픔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 분쟁은 먹는다는 행위를 어떻게 짓누르고 있을까?”

헨미 요의 첫 도착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수도 뒷골목에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식당에는 커다란 양철 쟁반에 브리야니(볶음밥)와 밧(흰 밥), 뼈에 붙어 있는 닭고기와 양고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지은이가 구토를 하면서 먹은 그 음식은 부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다카의 빈민 20만 명이 한 접시에 우리나라 돈 30원~75원짜리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산다.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지만, 사람도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 음식을 먹은 인간들 가운데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만이 음식을 맛본다.

생뚱하게도 지은이의 두 번째 기착지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키탄그라드 산이다. 뭘 맛보러 간 게 아니다. 1946년에서 1947년 초, 키탄그라드 산 속에 서른 명 넘는 일본군 패잔병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먹을 게 없어지자 서로를 잡아먹었고, 마지막에는 산기슭으로 내려와 주민들을 잡아먹었다. 마침 지은이를 일본군이 숨어있던 밀림 속으로 안내한 현지 노인은 1947년 잔류 일본군 토벌대의 일원이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노인은 아침을 거르고 출발한 토벌 작전 끝에, 잔류 일본군이 밀림 속에 지어 놓은 오두막을 급습했다. 그리고 허기를 채우고자 패잔병이 조리 중이던 냄비 안의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햇빛이 비치면서 귀와 손가락이 드러나서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토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 현대사에서는 지극히 보기 힘든 병사들의 조직적인 식인 행위는 마닐라의 연합군 사법 관계자들을 기겁시켰고, 194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전쟁범죄 재판에서 전모가 공개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조사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짐승들과 달리 인간에게 음식은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먹지 않고, 힌두교도는 소를 먹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을 야만으로 비난하는 이유도 인간만이 음식에 생존이나 영양을 넘어 상징이라는 별도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의 배고픔 앞에 상징은 속수무책이다. 지은이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한창인 자그레브에서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허겁지겁 먹는 것을 목격한다. 음식의 신성함이 사라지는 것만한 비참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썩은 음식 냄새를 가리기 위해 피워 둔다는 다카 뒷골목 포장마차 식당의 선향(線香)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하는 듯했다. 봄철, 왠지 식욕이 없다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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