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새벽배송 전쟁] ‘로켓(24시간)’도 느리다, 이제는 ‘한나절(6~8시간)’
중앙일보 2018.02.10 00:02
스타트업 중심으로 새벽배송 시장 성장 … 신세계 등 대기업도 속속 진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직장인 이영수(47)씨는 매일 밤 10시면 침대에 누워 이튿날 아침 식사를 위한 장을 본다. 이씨는 전날에도 한 새벽배송 전문 업체에서 아침 식사 메뉴로 우유와 단호박샐러드, 저녁 식사를 위해 고기 등을 주문했다. 상품은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팩과 함께 포장돼 정확히 이튿날 아침 7시 전에 배달됐다. 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돼 있었고, 야채는 깨끗이 세척돼 비닐팩에 담겨 있었다. 총 주문가격이 9800원을 넘어 배송비도 없었다. 이씨는 “자기 전 주문한 제품이 눈 뜨면 도착해 있어 신기하다”며 “신선도 등 상품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익일 배송(24시간 이내)’ 서비스로 촉발된 이른바 총알배송 서비스가 이제는 ‘한나절(6~8시간 정도) 배송’으로 진화하고 있다. 익일 배송이 주문 이튿날까지 배송해 주는 것이라면, 요즘에는 전날 주문한 제품을 이튿날 아침에 받아볼 수 있다. 늦은 밤에 주문한 제품을 새벽 두세 시에 집 앞에 갖다 놓으니 주문에서 수령까지 길어야 한나절(6~8시간 정도), 짧게는 반나절(3~4시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것이다. 새벽에 배송을 한다고 해서 ‘새벽배송’ 혹은 ‘샛별배송’으로 불린다. 주로 우유·반찬과 같은 음·식료품을 취급하는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이 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기업이 새벽배송에 뛰어들면서 배송시장의 새로운 격전지가 되고 있다. 업체들의 경쟁으로 배송 시간이 점점 줄고, 배송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은 반기고 있다. 배송 업계 관계자는 “취급 상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편리하고 빠르게 배송하느냐에 성패가 갈릴 것”이라며 “대기업의 잇단 진출로 새벽배송 시장은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트업에 대기업이 도전장
새벽배송 시장은 그동안 스타트업이 주도해왔다. 2015년 문을 연 마켓컬리와 배민찬 등이다. 더파머스가 운영하는 마켓 컬리는 다양한 식재료와 간편식을 오후 11시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오전 7시 전에 문 앞에 갖다 놓는다는 콘셉트로 출발부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배달의 민족이 운영하는 배민찬도 새벽배송 시장을 일군 업체다. 배민찬은 100여개의 업체 제휴와 자체 브랜드를 통해 1000여종의 반찬을 판매하는데, 신선도를 유지하며 이튿날 아침까지 배달해 주는 게 특징이다. 동원그룹이 운영하는 더반찬도 2016년부터 당일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7시 사이에 배달해 주는 서울·수도권 직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은 더반찬이 운영하는 차량과 배달 인력이, 전국 배송망은 일반 택배사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쇼핑에서 음·식료품 비중 확대
초기 소규모 스타트업이 직접 배송을 하며 시작된 새벽배송이 소비자의 호응 속에 큰 인기를 끌자 대기업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업체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4월 간편식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명가아침 등 30여개 간편식 브랜드를 한 데 모아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CJ대한통운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아직 서울·수도권에서만 가능하지만 앞으로 충청권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은 농산물 새벽배송을 해왔던 헬로네이처를 인수해 서울 전 지역에 새벽 배달을 시작했다. 유통 업체인 GS리테일도 지난해 10월부터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새벽배송 경쟁에 가세했다. 유명 베이커리 빵과 조리 식품, 과일 등 5000여종의 상품에 한해 오후 10시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새벽 1~7시 사이에 배달해 준다. 롯데닷컴도 프리미엄 식품전문관 ‘특별한 맛남’ 내에 ‘장보는날’ 코너를 통해 일부 품목에 한해 새벽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오후 2시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 7시 이전에 배달해 준다.
이처럼 새벽배송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새벽배송의 주요 취급 품목인 음·식료품의 온라인쇼핑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1월 2일 통계청이 내놓은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7조5516억원으로 2016년 11월 대비 21.7% 증가했다. 눈에 띄는 것은 같은 기간 음·식료품이 34.4%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전체 온라인쇼핑에서 음·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6년 11월(9.4%)에서 1년 만에 11.8%로 확대했다. 음·식료품 거래액은 2013년 3조3000억원 수준에서 2016년 7조1000억원으로, 지난해(11월까지)에는 약 8조76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책이나 의류 등과 음·식료품은 신선도 유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온라인쇼핑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그러나 새벽배송 등으로 배송 시간이 확 줄면서 음·식료품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성장세 이어질 듯
관련 기업의 몸집도 급속히 불고 있다. 2015년 29억원이던 마켓컬리의 매출은 지난해 53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회원수가 50만 명이 넘고, 하루 평균 새벽배송 물량만 6000건이 넘는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2016년 18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배민찬도 지난해 66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반찬도 지난해에만 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새벽배송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배송에 대한 만족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높게 나왔다. 배송, 구색, 가격, 품질, 포장, 홈페이지·앱 등 6가지 항목에 대해서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배송에 대한 만족률이 97%로 가장 높게 나온 것이다.
관련 업계는 이 같은 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새벽배송은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장 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와 간편한 소량의 먹을거리를 찾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새벽배송 시장이 더 달아오를 것이란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유통·택배 등 기존 기업의 잇단 진출로 취급 품목도 더욱 다양화하고 있다. 1월 28일 1조원 이상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신세계도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마트도 온라인 주문과 연계한 배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어 ‘더 쉽고 빠른’ 생필품 배달 경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가 이마트와 노브랜드몰 등 전국의 오프라인 점포를 온라인 주문에 활용하면 파급력이 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익일 배송의 원조인 ‘로켓배송(자정까지 주문한 건에 한해 이튿날까지 배송)’을 선보인 쿠팡 등 기존의 이커머스 업체들도 배송 서비스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 있고, 위메프와 티몬도 각각 자사의 당일 배송 서비스인 원더배송과 슈퍼마트를 정비하거나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배송 품목도 늘고 있다. 마켓컬리는 식재료와 간편식뿐 아니라 최근 유아동 전문관을 만들고 이유식·기저귀 등으로 새벽배송 상품을 늘렸다. 더반찬은 저염식·저당식·보양식·다이어트식 등 다양한 건강식으로 배송 품목을 늘려가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최근 풀무원 계열의 올가홀푸드와 닭가슴살 전문 브랜드 아임닭&아임웰의 간편식 제품도 새벽배송에 추가했다. 이 회사는 특히 의류 렌털 서비스 스타트업인 위클리셔츠와 손잡고 와이셔츠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월정액(4만9000원대)을 내면 위클리셔츠를 통해 살균·세탁·다림질이 된 셔츠를 매주 정기적으로 배달해 준다. 전날 오후 7시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오전 7시 전까지 받아볼 수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새벽은 교통 상황이 원활해 배송시간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현재는) 서울·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한해 이뤄지고 있지만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는 등 지속적으로 새벽배송 시장이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스기사] 미국에서도 ‘더 빨리’ 배송전쟁 - 美 유통사 타깃, 당일배송으로 아마존에 도전장
배송 전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아마존·월마트·베스트바이에 이어 타깃이 당일배송 경쟁에 뛰어들면서 미국에서도 배달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유통사 타깃(Target)은 최근 당일배송 서비스를 위해 스타트업 십트(Shipt)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2014년 설립된 쉽트는 연회비 99달러를 내면 고객을 대신해 물건을 구매한 후 집 앞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 미국 70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타깃은 현재 뉴욕에서 당일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십트 인수로 올 여름까지 전체 매장 1834개 중 절반가량에서 당일배송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타깃은 올해 말까지 대부분 점포에서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다. 타깃의 이 같은 배송 서비스 강화는 미국의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아마존을 의식한 결과다. 아마존은 35달러 이상 구매 고객에게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아마존 프라임’과 ‘아마존 프라임 스튜던트’ 고객을 대상으로 주문 후 2분 안에 제품을 배송하는 ‘즉시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역 제한이 있긴 하지만 당일배송을 뛰어넘는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아마존은 이 외에도 드론(무인 항공기·사진)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를 준비 중이다.
앞서 오프라인 유통 강자인 월마트도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와 리프트를 활용해 배송 지역을 확대하고 배송 시간을 줄이는 등 배송에 집중하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해 전 직원이 퇴근할 때 온라인 주문 상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해주는 퇴근 배송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퇴근 배송제는 직원의 통근 경로와 겹치는 배송지의 물품을 본인의 차량으로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초에는 2만개 이상의 품목을 대상으로 ‘무료 이틀 배송’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연회비 없이 소비자가 35달러 이상을 구매할 경우 이틀 내에 무료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외신은 타깃의 십트 인수 등 미국의 배송 전쟁에 대해 “당일배송은 높은 잠재 수요를 가지고 있다”며 “쇼핑객 5명 중 4명은 당일배송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미국 유통 업체는 현재 절반에 불과해 이 시장이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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