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1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된 한 종오리 농장에서 방역 요원들이 오리알을 폐기하고 있다. 영암=연합뉴스

‘416건 대 30건’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4일까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건수와 올 겨울 같은 기간 AI 건수를 비교한 수치다. 살처분 규모도 3,379만마리에서 433만마리로 줄었다. 겨울마다 확산됐던 AI가 유독 올해 잠잠한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 농가에 휴업보상금을 주고 일시적으로 오리 사육을 제한한 ‘오리휴지기제’의 덕이라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오리는 닭에 비해 감염 증상은 늦게 나타나는 반면 바이러스 방출량은 많아 AI ‘불쏘시개’라는 악명을 갖고 있는데, 오리휴지기제로 전체 AI 발생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농가들은 오리휴지기제가 ‘산업 말살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육 규모가 크게 줄면서 봄철 오리 값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AI 차단 효과는 크지만 오리 농가의 생업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리휴지기제의 딜레마다.

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오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오리휴지기제를 시행하고 있는 농가는 총 234곳(320만5,000마리)이다. 전체 오리 농가 497곳(753만마리) 중 47%가 사육을 중단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해 9월 육용오리 농가 중 ▦3년 이내 AI 2회 발생 농가 ▦발생 농가 반경 500m 이내 농가 ▦지자체ㆍ계열사 선정 AI 취약 농가 등 ‘고위험’ 농가를 선정해 오리휴지기제를 실시했다. 1차 선정 농가 89곳은 당초 평창 동계올림픽이 마무리되는 2월까지만 휴지기제에 동참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최근 패럴림픽과 철새 북상 시기 등을 고려, 오리휴지기제를 1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농식품부의 결정은 오리휴지기제가 실제 AI 확산 저지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올 들어 4일까지 고병원성 AI 발생 건수는 농가 18건, 야생조류 12건 등 30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AI가 농가에서만 353건 발생했다. 야생조류에서 AI가 검출된 경우도 63건에 달했다. 이번 겨울 AI 발생 건수는 지난 겨울 대비 7%에 그친 셈이다.


AI가 확산될 때마다 천문학적으로 쏟아 부었던 살처분보상금도 급감했다. 정부는 2016~2017년 AI 발생으로 2,306억원의 살처분보상금을 지원했다. 반면 올해는 추가 발생이 없는 한, 375억원 가량만 투입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리휴지기제 운영 비용은 총 21억원이다. 사육을 쉬는 농가에는 마리당 510원을, 오리알을 생산하는 농가나 계열사에는 알 1개당 420원을 지원한다. 정부 입장에선 오리휴지기제로 AI 발생도 막고 예산도 크게 절감한 셈이다.


그러나 오리사육제한은 오리전문식당 등 관련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게 농가들의 반발이다. 한국오리협회 회원들은 지난달 26일 전남도청에서 집회를 열고 “오리휴지기제와 입식 제한으로 오리 생산이 급감하고 가격은 급등해 오리산업 전체가 붕괴 위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오리 최대 주산지인 전남 나주시와 영암군은 지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실제로 오리 산지 가격도 크게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오리 산지 평균 가격은 3㎏ 당 8,148원으로 전년(7,114원)보다 14.5%나 올랐다. 3~5월에는 가격이 더 오를 전망이다. 농업관측본부는 5월 산지가격이 최고 9,200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단 정부는 오리휴지기제를 안착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기중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장은 “5월부터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중앙 정부 대신 지자체장이 자발적으로 사육제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