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무너진 농촌, 길 잃은 농정
경향신문 2018.9.19.
최저임금에 이어 부동산이 논란이다. 정부는 조세정책과 금융정책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개탄과 질타의 소리도 높다. 그러나 격차가 발생하는 메커니즘 전체를 차분히 살펴야 한다. 당장 가격을 쉽게 조절하는 요술 방망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많은 문제들이 그렇지만, 부분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그 전체를 파악해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임금과 부동산 가격은 부분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차원의 산업·지역 변동이 서울 집값과 자영업 팽창에도 영향을 미친다. 산업과 농촌이 무너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거품이 생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농업·농촌의 붕괴 상황을 보면 사회 전체 시각에서의 무감각·무대책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지난 6일 열린 (사)농정연구센터의 심포지엄에서는 생생하고 충격적인 사실들이 보고되었다. 우리는 보통 농촌을 생각하면 농사를 지으면서 전원적 생활을 영위하는 평화로운 가족농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이래 쌀을 중심으로 한 재배업은 생산이 쇠퇴했고 축산부문은 성장했다. 1990년과 2015년의 농업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하면, 쌀은 36.6%에서 13.4%로 감소했다. 축산은 22.0%에서 40.4%로 증가했다. 농가소득은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농가 1호당 실질농업소득(1995년 기준)은 1994년 1734만원을 최고점으로 해서 2015년에는 1025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농외소득을 합한 실질농가소득도 1996년 3689만원에서 2015년 3389만원으로 줄었다. 이제 조선시대 이래 지속되어온 쌀농사 위주의 소농사회는 붕괴되었다.
축산업과 채소·과일이 주축이 된 농업은 환경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축산업은 수입사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공장시스템을 구축했다. 축산이 배출하는 막대한 분뇨 쓰레기는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가축질병이 만연해 대량의 동물살해는 일상사가 되었다. 농약 사용량은 계속 증가 추세이고, 비료 사용량은 여전히 1980년대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농촌이 깨끗한 곳이라 말하기 어렵다. 농촌에서 새 삶을 꾸리자거나 농촌에 휴식하러 오라고 권하기가 민망하다.
게다가 농촌에는 불평등마저 가득하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소득도 낮지만 내부 격차도 더 심하다. 도시와 농촌의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수입을 비교해보면, 2016년에 도시는 5.7배 수준이지만 농촌은 무려 11.3배에 이른다.
고령자나 농업에만 매달리는 경우에 빈곤상태가 많다. 상층 농가는 농외소득과 농업소득을 병행하거나 아예 농외활동에 집중하는 경우일 것이다. 지금 저임금층, 자영업자, 무주택자들의 좌절감이 깊지만 이들이 사는 도시는 농촌에 비하면 오히려 평등한 곳이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책은 구태의연하다. 1990년대 이후 농가인구, 농업소득, 쌀 소득은 크게 줄었지만 농촌에 사는 인구는 줄지 않았다. 농촌에 농업이나 쌀농사와 무관한 사람이 더 많이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만 지원을 하고, 그 지원의 편중성은 계속 높아졌다. 농촌에는 이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생산자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다수의 주민들 사이에 장벽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쌀 경작면적에 따라 지불하는 직접지불금이다. 현재 추세라면 대규모 면적을 경작하는 소수 쌀 농가에 지원금이 집중될 것이다. 심지어 이런 통계도 있다. 농사를 짓는 데 쓰는 전기에 대해서는 낮은 전기요금이 적용되고 있다. 연간 100㎾ 이상을 소비하는 농가는 0.7%인데, 이들이 전체 농사용 전기의 47%를 사용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보면, 100㎾ 이상 전기를 쓴 11만3000호는 한 농가당 4300만원의 혜택을 보았고, 100㎾ 미만 전기를 쓴 162만7000호는 한 농가당 32만원의 혜택을 입었다.
이제 농촌은 농업 생산으로만 먹고사는 곳이 아니다. 생산은 농촌과 국토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 농촌 내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쌀값 회복, 재해예방 및 복구지원, 영농소득지원 강화 등 대증적 대책을 그간 농정 성과로 제시했다. 긴박한 상황 인식과 전환의 비전이 없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농정이 이전 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 “문재인 정부에 농정은 아예 없다”는 탄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으로 누구를 탓하랴 하는 생각도 든다.
지식인들이 바닥 현장의 동향에서 멀어지고 공부에 게을렀던 측면이 없지 않다. 농민·노동자·소상공인들의 운동도, 소비자운동·환경운동도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할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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