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허구는 있다. 뜻한 바 대로 안 될 때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착각은 자유지만 실패에 대한 인정은 빠를수록 좋다. 5년이 되어야 결과물이 나타난다는 말은 지난 정권에서도 나온 말일 뿐이다.
물론 지금의 경제를 정부 탓으로 모는 건 무리다.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금리인상 등 외세가 강하다. 그럼에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원전정책 선회와 부동산 정책의 오락가락과 맞바꾼 듯하다. 최저임금 시행으로 인한 자영업자의 알바고용 차질과 같이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결정은 IMF 당시의 카드대란 때 나타났던 너무 일찍 풀어버린 허리띠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누구도 망하질 원하지 않는다.
이는 누구도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는 말과 같다.
미중의 무역전쟁을 눈치보는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정체 없는 각종 정책을 눈치보는 자영업자는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위의 교수 말에서 느낀 점은 대기업을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대기업 없는 나라도 국제사회에 경쟁하기 쉽지않다는 걸 말해준다. 다 헤쳐모여 할 것이 아니라면 정부를 눈치 보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회는 없어야 한다. 공포 아닌 독주 또한 반사회적이다.
눈치보기가 만연한 지금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항해중인지 방향을 잃었다. 아무리 지고한 가치라해도 눈앞의 방향타 보다 중할 수는 없다. 그냥 살기 때문이다. 아니 죽지못해 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등장한 허구란 일관된 정책의 모순을 말한다. 올곧이 자기만 옳다는 식의 일관된 주장을 말한다. 소통이 그 어느때보다 강조된다는 건 이를 뒷받침한다.
눈치보기의 끝이 실행없음이라면 실험결과 보다는 차라리 낫다. 정부는 설익은 이론을 실행해서는 안 된다. 해보고 말지 하는 순간 자기착각과 합리성 늪에 빠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공론화도 일관성도 아니다. 하는 일을 모두 멈추고 이제까지 했던 일들을 주욱 나열한 다음 가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멍든 곳은 다른데 혁신하자는 곳 또한 다르다. 우선 헛발질하는 정책과 예산의 쓰임부터 바로잡는 자아성찰이 필요한 때다. 결정을 뒤돌아보는 일, 그것이 끝없는 추락을 막을 유인한 대안일 수 있다.
물론 흙탕물에도 미꾸라지는 산다.
이 글을 쓴 나는 경제를 잘 모른다. 느낌을 말한다. 반복되는 정쟁을 막을 길은 인식의 차이를 메우는 일이다. 어느 한쪽만 옳다는 건 한 쪽 눈만 뜬 상황을 뜻한다. 두 눈이 맞아야 사회가 잘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정치를 말함이 아니라 실생활 속의 차이를 말한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화가 난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따지다보면 둘 중 하나다. 다투거나 감추거나. 어느 하나에 이다지도 많은 변수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달이 미흡하던가 내버려둔 결과다. 잘 설득하고 잘 알려야 한다.
소통은 내가 하는 일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견을 듣고 이를 담아내는 과정이다. 인정받지 못한 세력은 눈치보지 않는다. 정치든 노조든.
혼란스럽다. 시장은 혼란으로 가득한데 정체 모를 일관성 있는 정부정책을 보노라면 이렇게나 변화가 버거운가 한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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