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결국 하나다.
의식주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나 함께할 가족을 위해서나.
나의 경우 직장과 결혼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고, '가계독립만세'를 제1 목표로 세웠다. 사실 돈에서 멀어지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말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에서 자유로울 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돈이 필요없는 삶도 있다. 돈을 쫒지않아도 좋은 삶이 있다. 다만 일부다.
돈이 필요하다. 뭘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은 관계에서 벌 수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신용으로 벌 수 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불리는 사람에게 돈을 버는 족족이 맡긴다. 다만 신용을 쌓고 돈 불리는 노하우를 얻기란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초점을 둔다. 대입조차 공기업 지역인재채용 할당제에 기대한다. 사실 대학이 자격증이 된지 오래다. 배우고 익히는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에도 대학은 마치 가야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앞서말한 돈을 버느 중간과정으로 여긴지 오래다.
대학은 가면 좋은 곳이다. 낭만을 쫒고 어울리며 전선에 나서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 실수에 너그러운, 즐거움을 찾기에 좋은 곳이다. 대학을 간다는 건 즐겁게 살 방법을 고민하는데 있다고 본다. 고민조차 즐겁다. 사실 대학에 가지 않고 고민해도 되는데 이는 쉽지 않다. 기회든 환경이든 주어지지 않으면 얻기란 요원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저 받아들이면 아주 간단한 문제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여긴다. 돈을 버는 거로 우선하거나 대학을 과정으로 보거나 직접 해봐야 알거나 하는 건 인식이 바뀌면 족한데 말로는 이해해도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친구따라 전남대 갈께요?
부모가 원하니 충남대 갈까요?
3수해서 더 높은 대학에 갈꺼에요?
부모, 친구, 3수 모두 고려해서 대학 갈께요?
전남대? 충남대?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전에 말했잖아요?
왜 되고 싶은데? ....
전자공학과 갈래요?
왜? ...
충남대는 싫어요.
왜?
가깝고 별루고 성에 차지 않아서요.
이렇다. 부모나 자식이나.
선생님, 어느 대학이 좋은가요?
혹시나 3수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나요?
앞서 말한 내용들이 공허하다. 먹어본 놈(?)이 아는 거라고 한다. 당신은 경험했으니 그렇게 여긴다고 한다. 다 읽었고 아빠 입장은 이해하지만 자기뜻대로 살꺼라고 한다. 떠먹여 줄 수는 없다. 성인인데. 그래도 난 '즐거운' 마음으로 휴대폰에 투닥투닥 거리고 있다.
돈을 버는 게 우선이 아니다.
그래서 투자든 재테크든 배우고 익혀야 한다. 벌면 뭐하나 모으거나 불릴 줄 모르면 벌고쓰는 '1배 인생'을 살 뿐이다. 그리고 월급 모아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물론 여기에는 조금 달리볼 여지는 있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스카웃되는 극히 일부는 능력에 따라 의식주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다만 겸허하지 아니하면 외롭겠지만.
다시말해, 모으는 것이 첫번째가 아니라 모은 걸 최소한 유지하거나 불리는 걸 즐겁게 익히면서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실 모으는 건 쉽다. 청소해도 벌 수 있다. 잘 먹어도 벌 수 있고 타인이 하기 싫어하는 걸 기꺼이 하려고 결심만 하면 돈은 벌 수 있다. 다만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체력이 필요하며 일당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당 보수를 높이기 위해 대입부터 고민한다. 남들과 비교한다. 이조차 허울 뿐인 명문대 라는 이름만 할까!
능력은 개발하는 것이다. 회귀하거나 사고를 당하면서 각성하는 판타지는 기대할 게 못 된다. 이는 인과에 어긋나기 때문이며 노력 없이 얻은 대가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노력 한다고 남들 보다 노력한다고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상대적이라는 점과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노력에 기대지 말고 노력하는 삶은 당연한거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사는 게 최고다.
즉, 능력을 쫒지말고 즐거움을 우선해서 찾았으면 좋겠다. 즐겁지 아니하면 행복하지 못하다. 즐겁게 노는 아이가 행복하다. 그렇다면 어찌 살 지 즐겁게 고민해보자.
대학은 하기 나름이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이건 지금처럼 되고싶은 무언가가 없는 자유로운 대입생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놀 대상으로 보자. 대학은 사회와 동떨어진지 오래다. 가장 좋은 취업은 교수 추천이다. 인정 받았다는 것이니까. 사회와 직접 연결할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미 사회와 많이 동떨어져 있고 정작 대학가서 배울 건 아빠와 마주이야기를 통해 나누었다.
대학은 미리 경험해보는, 낭만에 빠져보는, 즐거운 상상과 포부를 키우는,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중요한 것이지 대학 자체는 환경을 제공해 줄 뿐이다. 수능 100점이 갖는 의미는 인정에 있다. 인정으로부터 받은 자신감이 대학생활로 이어져서 오는 긍정의 힘에 있다. 즉, 수능 100점은 자기만족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처럼 대학이 아니라 시간이 중요한 거라고 하는 것처럼 수능점수 보다는 자기만족이 초점이며 자기만족은 욕심이 아니라 자기성찰에서 오는 받아들이고 수용해서 개선하는 일련의 성숙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성장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학이든 수능점수는 시간을 쓰는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학습역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나아가는데 의의가 있다. 버려라. 허울을 벗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라. 그 답은 너에게 있다. 100점에 있지 않고 그 시간에 있음을 명심하자.
즐겁게 노는 아이가 행복하다.
도담블럭방을 열 때 고민한 캐치프레이즈다. 부부가 머리를맞대고 궁리한 끝에 찾은 건데 그게 인생좌표였음을 느낀다.
우리집 가훈은 '힘'이다.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인생곡선에서 '사람답게'를 유추해 냈듯이 궁극은 힘이 아니라 본연의 것에 있다. 돈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게 우선이 아니라 돈을 불리는 걸 익히고 배우고 실천하는 그 시간이 즐거우면 족하다는 걸 이제 안다.
즐거움은 상상에서 온다. 피씨방에서 온라인 게임이 즐거운 건 게임자체가 승부욕을 내게 하거나 함께 해서 즐겁거나 아주 복합적으로 좋아서 빠져들게 한다. 그만큼 빠져들 요소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켰는데 빠져들지 않는 게 이상하다. 게임이 나쁜 게 아니다. 게임은 좋다. 즐거움을 준다. 다만 시간을 쓰게 한다. 반복된다. 생각하고 고민하지 못 한다. 빼앗긴 생각시간은 내 발전, 내 성숙을 늦춘다. 어쩌면 거기 머물게 한다. 포기하게 한다.
게임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시간이 자기성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참 내공을 쌓아야 할 때 인고할 시간에 해푸게 쓰고마는, 원하는 대학 가면 다 될 것처럼 여기는, 게임 또한 대학과 같다. 그 시간이 온전히 내게 이롭다면 좋다. 여유를 찾고 억눌린 무언가를 내려놓고 즐기는데서 회복하는 건 무척 유익하다. 다만 게임이 치유해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게임을 통해 자기여유와 자기회복을 찾는 것처럼 대학 또한 게임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시간을 얼마나 즐겁게 '사람답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하고나면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아까운 건 시간이다. 중요한 건 시간을 어찌 쓰느냐 이다. 대부분 시간과 타협한다. 능력이 높고낮은 것에 무관하다. 시간은 올곧다. 잠시 쉬어간다며 피씨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다가온다. '능력'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지 그 시간에 뭘 했는지는 부수적이다. 고르게 나아간다. 시간을 어찌 쓸 것인가? 본인의 자유의지이며 본인만 하려고 결심하면 족한 아주 저렴한 히든카드다. 사람들은 흔히 히든카드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회귀라거나 사고를 당해서 또는 어느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갈고닦아서 오는 결과일 뿐이고 그 중에 단연 최고는 시간 씀씀이다. 즐거움은 면학에 있지 않다. 면학 또한 시간씀씀이의 대상일 뿐이니 즐기니 아니 즐겁지 아니한가의 대상일 뿐이다. 즐거움은 성취할 대상이 아니다. 전후를 바꾸면 착각을 한다. 성취하면 즐겁다고. 성취는 즐거움의 결과일 뿐이니 성취라는 목표에 자기를 가두지 말자.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본인이 안다. 게임에 시간을 쓰듯이 시간에 시간을 쓰면 스스로 느낀다. 어찌 살 지는 안다. 지금 난 뭘 하면서 즐길지를 고민하고 있다. 돈은 아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스릴있게 맛 보았으니 족하다. 물론 돈 자체가 아니지만 돈이 벌리는 걸 해볼 생각이다. 돈 자체를 벌기 보다는 시간을 쓰고 즐거움을 주는, 그 방향에서 아내가 보육원 아이들에게 블럭방을 이용토록 한 건 잘 한 결정이다. 다만 좀 한정적이다. 즐거움의 대상을 넓혀도 좋겠다. 정말 레고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아이들이 모두 대상이었으면 좋겠다. 양님마케팅을 해볼까?
레고나 비즈가 무척 하고싶은데 돈은 없고 시간은 있는 아이들, 와서 놀다가. 그리고, 즐겁게 논 걸 자랑해~
돈이 벌릴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과연 지키고 있어야 하는가? 놀다가는 장소, 알아서 계산하는, 양심껏 눈치껏 돌아가는 장소, 양심을 배우는 장소를 내세워 문을 24시간 개방하면 어떨까?
과연 아이들은 놀기만 할까?
놀았다면 다른 친구들 생각해서 의자, 책상 정리하기 처럼 놀고 치우고 스스로 돌아가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사실, 양심마케팅은 현 부모 때문에 내세운 것이고 내가 실현하고싶은 건 놀이터가 되는 것이고 그 놀이터는 아이들 스스로 지키도록 청소반 또는 청소시간 또는 정리시간처럼 비록 티격태격하고 그 과정에서 우월성이 드러나도 차분하게 자기만족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언제라도 놀 수 있는 공간.
제시된 재료비와 타사간 이용료 비교표를 보고 만족한 만큼 내고, 낸 만큼 만족감도 커지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놀이터.
안전을 위한 cctv로 사각지대는 없애고 부모가 언제라도 보고 있다는 공개된 공간임을, 과연 돌아갈까?
의식주, 대학, 게임, 블럭방, 그리고 직장 또는 사업체는 시간을 들여 즐겁게 임할 대상이지 목적이 아니다. 돈 또한 즐겁게 임한 산물이지 목적이 아니다. 즐거운 상상과 그 실현, 사실 이게 답이다.
다만, 즐거움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고 즐거움은 명절에 가족이 모여 윳놀이, 빙고, 화투를 치고 나누고 함께한 시간 만큼 정이 쌓여 차곡차곡 추억꺼리가 늘어나는 게 좋은 것이고 함께한 시간 자체가 값진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할 건 어느 대학을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대학 가서 즐길 꺼리를 상상하고 그 실현시킬 기대감을 키우고 여러 상상과 맞지않은 부분을 즐거운 상상 쪽으로 이동시키는 그 과정을 즐기는, 상상의 나래, 배움의 활용과 실증, 그리고 이어짐 속에 사랑나눔이 일어나는 걸 알게 된 순간 찾아올 막대한 기쁨을 우린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즐길 대상을 목적으로 착각하지 말자.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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