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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어떻게살것인가

죄송해요

by 큰바위얼굴. 2021. 9. 8.

 

 

 

 

 

 

 

 

 

 

 

 

 

 

 

 

 

 

 

 

 

 

 

 

 

 

 

 

 

 

 

 

 

 

죄송해요
수능 신청기간이 9월 3일까지였네요
어제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알았는데 도무지 당시에 바로 상황을 전하기가 어려웠어요
너무 지쳐있었고 공부는 언제 시작해야하나 용기를 못내고 있었지 이런식으로 끝내질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제가 수험생으로써든 아들로써든 자격미달인것 같아요
후회하기 싫은데 돌아보니 너무 후회스런 인생이네요
엄마 아빠가 애쓰며 길러서 믿어준 선택이 이런 결과가 된 것에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힘 빠지고 지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괜찮아.

사실, 피씨방 가는 모습을 보며 뭐 라도 하니까 다행이다 라는 안심 한편에 곧 수능 준비를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긴 했는데,
정작 바라는 건

"돌아보니 너무 후회스런 인생이다"는 말. 여전히. 그게 불만이다. 아빠는.

지금. 후회하지 않으려면!
혹은, 멋진 제2의 인생을 살려면
후회 대신 회귀한다면
왜 자꾸 딴 데다 맞춘 생각으로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걸까 의문이 든다.

1. 남과 비교하지 않기
2. 과거를 가져오지 않기
3. 내게 이로운 것 하기

아빠가 말한 게 거짓처럼 사라졌나봐.
지켜보는 게 네게 이롭다고 봤는데
여전히 갇혀 있구나 싶다.
정작 바라는 건,

"힘 빠지고 지치게 만드는 건"
의욕없고 자신없는 네 모습이지 결코 수능-대학이 아냐.

분명한 건
지금 모습으로 수능 봐서 기대이상의 대학을 간들 기뻐했을까?

영록아,
백신접종일을 놓치고
수능도 놓치고
앞으로 놓치고 놓치고 계속 놓쳐도 돼.
후회하고 죄송하고 용서를 빌고

기뻐하고
웃고
즐거워하고
함께 밤새 놀았던 때가 있듯이
그 또한 아쉽지만 자연스런 거야.

다만, 동전의 양면처럼
후회와 반성은 미련한 거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후회나 용서라는 말이 아니야.
특히 이건 결과도 뭣도 아니구.

아빠나 엄마가 듣고 싶은 건 뭘까?
아빠나 엄마가 바라는 건 뭘까?
동생들은 형에게 뭘 바랄까?

성공?
서울대?
자신만만함?
피씨방?

우린 모두 고민하고 고민한다.
각자 몫으로. 나 또한 계속 찿고 모색하지.
지금 삶의 모습이 최선일까?
더 나은 삶은 불가능할까?
뭘 해도 좋다면 난 뭘 할까?
지금 시점으로 환생했다면 어떻게 살까?

너를 기준으로
너의 후회나 용서를 바라기 보다,
너를 낳아 기뻐했고
너의 논리정연함에 놀랐고
너의 자신만만함에 대견했던 때.

여기에서조차
논리정연함이나 자신만만함이 핵심이 아니라, 너 니까 기쁘고 너와 함께 하니까 즐겁고 좋은 거잖아.

너는 축복이요
은혜다.

네게 바라는 건
조건이나 이름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저 함께 하는 지금,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걸 함께 하면 좋겠다.

뭘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아.
뭘 하지 않아도 좋아.

고민을 얘기하고
걱정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

피씨가 아닌
너를 바라보는
엄마와 동생들과 마주하길 바란다.

이젠 알겠니?
답장도 안 하구.
그런 게 삐지는 거다. 흥 칫 뿡

(난 달라질꺼야.. 그러면서 빈둥거린다. 후회해... 그러면서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한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후회를 안 하면 된다. 후회할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후회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수능이나 성공이나 틀에 박힌,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치 인생은 즐겁게 자신차게 살아야 한다는 듯한 것조차 모두 그래야만 하는 건 없다.
뭘 해도 좋고
뭘 하지 않아도 좋고
빈둥거리면 그냥 하면 되고
눈치 보기 보다는
눈치 안 보는 게 낫다.
... 1시간째 지우고 쓰고 지치네. 이런 말도 자주 듣다보면 인이 박혀 싫은 소리가 되듯이.

그냥 좀 너 답게 살아라. 응?

 

 

 

  • 스스로 `自`2021.09.08 07:11

    그리고 07:00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씨방에서 4시반에 나갔데. 연락이 안 돼!"

    "알았어. 기다려봐."
    하고 먹으려고 늘어놓은 밥과 반찬을 정리하며 생각한다. 우선 영록이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았다.

    다시 화장실에서 차분히 생각한다.
    연차 내고 출발해야겠다.

    이때 다시 전화가 왔다.
    울먹이면서 "집에서 자고 있데. 미안해. 미안해"

    반작용에 놀랐고
    행동력에 놀랐다.
    가슴이 아리다.
    죽음 만큼은 피하고 싶다. 정말.

    답글
  • 스스로 `自`2021.09.08 07:12

    살아가는 생명은 ㅁㆍ두 죽는다.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런 거다.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운동을 통해 관리를 통해 늦출 수는 있다.
    다행이다.

    답글
  • 스스로 `自`2021.09.08 07:20

    눈물에 젖어 아내가 해준 된장국으로 속을 달랜다.

    답글
  • 스스로 `自`2021.09.08 14:57

    아내가 첨부한 사진과 댓글에 결국 눈물이 나오고야 말았다. "나두"

    답글
  • 스스로 `自`2021.09.08 23:24

    피씨방 탐방. 역지사지. 간만의 일탈.

    피씨방에 갔다왔다. 대놓고 간 건 정말 오랜 만이다.
    시간 참 빠르더라.
    이것저것 하다보니 시간이 그냥 갔다. 무료하진 않았다.

    매일 이렇게 사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5000원에 꼬박 4시간 하니
    허리가 아프다. 몸 생각이 절로 난다.

    나올 때 피씨방 주인을 봤다.
    내 나이 쯤 되더라. 좋을까?
    윙윙 피씨 소리에 9시부터 새벽4시까지.

    시간 쓴 만큼 재미는 있다.
    보람은 글쎄.
    내일 또 할까?
    하고 싶지만 한 후의 후회나 아쉬움이 크다.

    이건 내 경우이니 참고하구.

    내가 권하는 건,
    복싱이든 활력 운동을 했으면 싶다. 일단 해보는 건 어떨까?

    ~라고 영록이 카톡에 보냈다.

    답글
  • 연금술사2021.09.30 15:48 신고

    다 읽고나니 눈물이 핑도네요. 굉장히 좋은 아버지이시네요. 저희 아버지도 저렇게 대해주셨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저도 저런 인자하고 너그러운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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