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늘대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고 아침산책길에 새긴다." 라며 아내에게 카톡메시지를 보냈다.
US500은 어제에 이어 또다시 -1.1% 하락하여 4482를 나타내고 있다. 과연 나는 1.26. or 1.28. 매수할 것인가?
나 또한 궁금해진다. 사지 않을까? 매섭도록 하락할 때 사야하는 거니까.
불안이나 우려, 걱정은 사실 거두는 것이 맞지. 작년 9월말이 이랬거든. 정말 하루가 다르게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더군.
다만, 살짝 반등하여 다시 하락하는 꺽기 모양이 좀 나타나면 마음이라도 편할텐데 생짜로 하락한 시장을 보고 그냥 들어서기에는 사실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온전히 내 스스로 감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겁고 힘들다. 그러니까 가볍게 쉽게 하려고 마음을 다스리는 거지 한다.
아침산책길에서 신나게 떠든 이야기.
그리고 돌아와 정리해본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이런 말을 내게 전한다. 하다보니 증시든 일이든 관계든 아침산책이든 충주든 세종이든 오늘만날 옛 팀원들이든 토요일 찾아올 영록이 친구들이든 그 친구들과 삶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을 듣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해도 좋아" 라는 말을 영록이에게 전하고 싶든 앞에 전했던 수많은 메시지든 앞으로 전할 마음이 담긴 말이든 모두 다 일상 중에 일어나는 변수들일 뿐이다. 뭘 하든 뭘 생각하든 뭘 했든 뭘 하려하든 중요한 건 새롭게 바라보고 든 생각 아닌 건 아닌대로 표현하고 긴 건 긴 것대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공감하는 시간들. 오늘저녁 만날 옛 팀원들에게 따끔한 충고 보다는 "행복하지? 행복해 보인다. 좋네.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면 좋겠어." 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결혼이든 아이를 낳든 아이가 커가든 부부간 화목하든 부모가 돌아가시든 성공이든 실패든 못났든 잘났든 이런 건 모두 그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 중에 잠들기 전에 벌어지는 일일 뿐. 그것이 새롭게 살아가는 내게 지나치게 영향을 줄 이유도 새로운 마음으로 아닌 것을 긴 것으로 할 이유도, 싫은 걸 좋다고 할 이유도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아도 좋다 라는 말처럼 무책임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처럼 어제와 다른 말로 변죽이 들끓는다 라는 얘기를 듣다손 치더라도 자기가 자신을 믿는다면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아도 좋다. 어디 가지 않으니까.
오른쪽 책상 위 핸드폰 거치대 위에 놓인 스마트폰은 74%를 나타내고 있다.
음성을 동영상 파일로 전화시켜주는 프로그램을 가동중이다. 아침산책길에 신나게 떠들면서 음... 음... 고민했던 그 추억을 유투브에 올려서 기록하고 블로그에 모아모아 스토리를 꾀기 위함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물들은 모두 블로그라는 중심축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김성호의 일상 이야기' 라는 이름으로 일상기록이 어김없이 새겨지는 중이다. 혹자는 은퇴 전에 그 마음들, 준비한 내용들을 적어보라고 한다. 딱히 강사를 지향하지 않아도 좋다고 여겼다. 스토리를 엮어 내 보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저 내 일기장을 공개한 것일 뿐, 어떠한 사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마음 먹이니 오히려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더라 이 말. 목적을 돈에 두지 않고 삶 자체에 두니 그렇게나 마음이 좋더라 이 말. 살짝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 이 마음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아 고민한다. 기꺼이. 그런 마음조차 좋으니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집주변의 식당 아르바이트조차 좋다고 말리지 않는다. 이제. 바라는 바는 아침저녁 체력을 키우고 낮 중에는 교육을 받든 하려는 일을 준비하든 하나씩 배우고 익히는 시간, 혹은 일하는 시간, 왜냐하면 준비하는 시간 또한 만나는 사람과 일, 그리고 조사한 내용들 모두 일하는 시간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벌고 벌리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솔직히 속은 상하지. 준비는 하는데 벌이가 없으면 마음이 견디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은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풀려고 벌이에 나선다. 그런데 많이 이상하다.
"준비는 하는데 벌이가 없으면 마음이 견디지 못하니까" 라는 이유로 벌이에 나선다?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건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거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거나 마음을 마음으로 대하지 않거나 마음을 마음으로 보질 않으니 그런거다. 즉, 마음을 견디지 못한다 라는 건 '마음'을 주어로 넣어 마음을 마음으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힘들어 진다. 마음이 견디질 못하면 그 원인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벌이에 있지 않다는 말.
그 마음이 견지지 못하여 나선 벌이가 꾸준히 자신을 살찌우고 나아가는 자기가 정한 방향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아니한 우연에 기댄 성공이라도 바라는 거라면 글쎄 과연 그럴까? 라는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건 자신을 자책하거나 자신의 수준을 다르게 보거나 자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있거나 자신은 이런 모습이 아니야 라는 강한 부정을 하고 있거나 그나마 벌이를 통해 삶을 느끼고 있다고 위로하거나 다행이라며 벌이라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자신을 뿌듯해 하거나 벌이로 쓸 요량에 기대감을 품고 있꺼나 벌이가 벌이를 더 크게 키울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거나 어찌 저찌하든 벌이에 나선 이상 '그 벌이'에 묶여서 생각하게 된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마음이 견디지 못하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의견. 왜 견디지 못할까? 뭐가 걸리는 걸까? 좀 더 나은 삶이나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다짐인가? 먼 미래 오지않을 기대처럼 막연함에 힘들어 하는가?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할 꺼 같아서? 왜 마음이 견디지 못할까? 왜 회피할까? 우린 정답을 안다.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직면하지 않을 뿐.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건 견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결코 미래에 있지 아니하고 기대에 환상에 품은 성공에 있지 아니하다. 절대 기대감에 견디면 안 된다. 기대라는 건 크면 클 수록 상처가 될 뿐 성공하더라도 그 열매가 쓸 때가 있다. 정작 기대했던 만큼 아니게 되면 더 큰 기대를 품어 작은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어 매몰되어 버리더라 이 말. 기대는 삶을 일으키는 동기는 되지만 클 수록 상처가 늘어나는 몹쓸 감정이다.
1. 마음은 견디면 된다.
2. 일은 일대로 하면 된다.
3. 삶을 살아가는 계획은 계획대로 짜면 된다.
각기 다른 것을 한데 뭉쳐놓고 잘 안되네 벌이가 없으니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라고 여기는 건 착각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을 잘 못 본 자신을 탓해야 한다. 물론 지나치게 너무 가혹하게 자신을 대하지는 말고.
아침에 일어나 숙면을 취해 꾸었던 지난 꿈을 잠시 떠올려 보자. 흠.. 흠.. 좋군. 어제 꿈 속에 아는 사람인데 오랜만에 만났고 그런데 내게 아는채를 하더니 비탈길에서 굴러굴러 미끄러져 내려 머리가 두동강이 나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더라. 그걸 본 난 망연자실. 다만 그 상황에 빠져있지 않고 그 상황에서 조차 왜지? 왜? 왜? 만나서 얘기하다가 굴러서 굴러서 그렇게나 머리를 두동강이 나서 머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나는 그 상황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고 있어야 했을까!
당혹스럽지. 두동강이 난 머리, 안면있는 여자. 자연스레 생각하더라. 꿈 속에서 조차. 왜? 왜지? 그래서 오늘은 아니면 앞으로는 뭘 조심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자연스레 이어지더라. 안면있는 여자, 두동강이 난 머리. 내게 해를 끼친 결과로 이어지질 않기 위해서는 안면있는 여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 첫째 방어수단. 그런데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그 다음은 안면있는 여자를 만났다. 그러면 다음으로 휴대폰으로 안면있는 여자와 만났던 순간을 녹화한다는 것이 두번째 방어수단. 별 꺼리낌은 없었다고 느꼈다. 단지 꿈 속에서는 그냥 당했던 터라 카메라를 꺼낼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그러니 안면있는 여자를 만나면 사진기가 아니라 녹화기를 꺼내어 영상으로 찍어야 한다는 것이 두번째 방어수단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켜놓고 만난다? 과연 실생활에서 가능이나 할까? "잠시만요. 잠시만 녹화기 좀 켜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쉬울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론 어떻게 내가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생각하더라.
안면있는 여자를 만나지 않을 수도 없다.
만났을 때 녹화기를 켜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눈 앞에서 바로 굴러굴러 머리가 두동강이 나는데 어찌 두고만 볼 것인가? 비탈길이고 따라가기에는 늦었었다. 만나지 않을 수 없고 녹화기를 켜기도 수월하지 않다. 나를 만나 왜 그 여자는 비탈길을 굴러야 했는가? 이제 거기에 닿더라.
나를 만나 왜 그 여자는 비탈길을 굴러 자기생명을 버리고?? 아니 굴러서 머리가 두동강이 나서 그 머리가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야만 했을까?
나는 그 여자를 만나 무엇을 했을까?
그 여자가 비탈길을 굴러야 했던 원인이 내게 있지 않을까? (자책하라는 게 아니라 원인 추적중이다)
그렇게 원인을 열심히 찾아나서더라. 그리고 결국 꿈에서 깨어 "조심하자. 안면있는 여자를." 이라며 오늘하루를 시작했다. 특히, 몸조심, 말조심.
....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 놓인 휴대폰 화면에서 이젠 유투브로 업로드 하도록 이러저리 만진다. 어찌 정리할 것인가? 꿈이야기까지 포함했으니. 테마를 구분했더니 구분된 테마에 넣기가 영 쉽지 않다. 그냥 쭉 이어지는 일상이야기 임에도 굳이 구분했던 건 쉽게 찾기 위함인데 이제 그 경계가 모호해지니 요것이 나의이야기 인지 궁극에 해당하는 꿈과 꿈을 연결하기에 해당하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아무튼 궁극에 도달하는 길이 하나라면, 그 궁극너머로 가기 위한 꿈이야기는 다음 단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블로그 카테고리를 좀 손 본다.
궁극(Reach the End) -> 궁극에 도달하는 길
그리고, 그 위의 카테고리에 꿈과꿈연결하기 테마을 추가한다. 엥? 꿈이야기가 맞지 않을까?
둘다. 꿈과꿈연결하기1(꿈이야기)... 너무 길지 않나?
으.. 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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