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띠 띠 띠... 띠리링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며 휴대폰 화면을 보니 카톡메시지가 와 있다.
"정말 사는게 너무 힘들다ㅠ"
그래서 물어본다. "?"
"벌써 출근? 이따가 통화해"
어젠 좀 추웠지 아마 비가 왔으려나 기웃거리지만 어둑해서 잘 보이진 않고, 창문을 거의 닫고 잔 것을 잘했네 하며 화장실로 향한다. 기름진 코. 부쩍 양압기를 사용한 이후 온 몸의 기름이 코로 모여든 느낌이다. 양압기의 코마개를 씻고 리스테린 반 컵 정도를 입안에 머금고 테이블 위에 놓인 양압기로 향한다. 물받이를 가져와서 헹궈내고 거꾸로 세워놓은 후 양압기의 코마개를 그 위에 놓는다. 자연스럽게 건조되길 바란다. 다시 양압기로 향해서 긴 대롱을 배란다 빨래대에 걸어놓고 햇빛에 소독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씻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아마 비가 왔을꺼야. 좀 추웠잖아. 아마 비 때문일꺼야 라며 샤워부스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는다. 그런데 비가 안 왔으면 굳이 씻을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스쳐지나가지만 이미 젖은 몸이다. 코 기름이라도 씻자며 박박 문지른다.
06:00
띠리릭 쿵.
현관문 소리가 좀 크다. 잠든 동료를 깨우지 않길 바란다.
06:07
두 번 신호 위반을 한다. 아파트에서 나서는 입구에서 1번, 곧바로 있는 사거리에서 1번. 거의 매일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 차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위반을 하면서 항시 바란다. 사고 나지 않기를.
06:14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러 PC를 켜고 출근기록을 한 후, 산책길에 나선다. 오늘 시작은 좀 무겁게 느껴진다.
"정말 사는게 너무 힘들다ㅠ"라는 메시지가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래도 뛰자며 반팔과 반 바지로 갈아입고 나선다.
울적한 마음이 시원한 바람에 한결 나아질 꺼라 기대했지만 사는게 힘든 이유를 계속 반추한다. 해나와 예티가 엄한 곳에 또 쌌을까? 영록이? 영탁이? 치형이? 뭘까? 되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의문에 자꾸 무거워지니 털어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달린다.
평소와 달리 조금 일찍 달렸기 때문일까 무릎 쪽에서 찡 하고 통증이 올라온다. 결리는 느낌이 아직 몸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아냐, 오늘은 좀 이해를 해주라며 터덜터덜 털어내듯 절둑절둑 거림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달리는 하중에 무릎이 눌려 맞아들어갔다고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결림이 있음에도 애써 무시된 신호가 누적되어 몸에 부담을 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헛 둘 헛 둘..
일찍 출근하는 차량의 매연에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하고 숨을 고른다. 살며시 내쉰다. 살짝 막힌 왼쪽 콧구멍을 크게 불어 물기를 털어내는데 시원치가 않다. 정말 서희 말처럼 성형수술을 해야 할까? 그러면 수면무호흡증까지 나아질까? 라는 생각이 잠시 머문다. 헛 둘 헛 둘.. 매연이 지나가길 기다린 다음, 다시 달린다.
낡은 파란색 1톤 트럭이 길을 딱 막고 있다. 달려서 통과할 것인가? 달리기를 멈추고 조심조심 걸어서 통과할 것인가? 망설이다가 길바닥이 시커멓게 갈라져 있고 풀이 닿을 듯 하여 달리기를 멈추고 살며시 스쳐 지나간다. 한결 나아진다. 뭔가를 맞딱들이고 그걸 했기 때문일까? 조금이나마 달렸기 때문일까? 다시 달린다.
오늘은 길가에 심어놓은 작물을 다듬는 할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아쉽다.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푸근했는데. 달린다. 뚝방길 오르막에서 잠시 빠름을 줄이고 걸어오른다. 벌써 땀이 차기 시작함을 느낀다. 드디어 올라섰다. 뚝방길에서 바라본 아래는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람조차 시원하다. 시원하게 트인 시야에 더해진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이를 맞으며 뛰는 기분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서희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짧은 영상이나마 찍어서 보낼까 망설이다가 그만 둔다. 달리는 중이다.
저만치 두 명이 걸어온다. 노래 소리를 줄인다. 처음 본다. 살짝 곁눈질로 살핀 후, 스쳐 지나간다. 내 속은 아직도 갈등 중이다. 사는게 힘들다는 이유를 찾고 있고, 그로 인해 지난 흔적을 더듬게 되면서 드러난 사실들을 떠올리며 사는게 힘든 이유를 되묻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입장과 마음, 자식들, 나와 서희, 그리고 아이들, 맺은 인연들, 해낸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아픔을 떠밀어올리며 강조하는 느낌이다. 사는게 힘들다라. 달리는 중이다.
그래서 달린다.
달리다보면 잊을 것이다. 잊힐꺼야.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어. 맞아. 달리자.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의 나를 잡아삼킬 수는 없어. 난 지금이 좋단 말이다. 애써 마음에 중심을 세우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제 제법 땀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가를 타고 흐르는 땀을 눈을 꽉 감으면서 밀어낸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만큼 간질거린다. 헛 둘 헛 둘... 달린다.
잠시 걷는다.
막혔던 봇물이 쏟아지듯 땀이 급격히 증가한다. 쭈루룩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느껴진다. 그래 좋다. 나를 가두려고 한다면 기꺼이 갇혀주겠다면서 가두거라 하고 바란다. 터벅 터벅 걷는 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흔들리는 손에 긴장이 서린다. 의지를 불어넣어 흔드니 이 또한 살아있음이리라. 그냥 걷는 것과 달리 긴장감을 불어넣어 흔드는 손짓에 살아있음이 전해진다. 다시 달린다.
찰칵, 찰칵.
퉁퉁 부은 눈덩이, 진득하게 흘러내린 땀, 복잡미묘한 심경, 긴장감이 서린 몸짓, 온 방향으로 찍고 바라본 방향으로 찍는다. 만약 말이야 하며 속삭이듯이 말을 건넨다. 정말 지금 내 심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겠어? 굳이 담아야 할까? 이런저런 미묘함 사이에서 찍고 찍는다. 아래에서 위로 찍혀 하늘이 너무 거대하게 나온거 아닌가 싶어 다시 정면에서 살짝 들어 위에서 아래로 찍는다. 찰칵 찰칵. 그리고 달린다.
마주쳤던 두 명이 보일 때가 되었는데 하며 찾아본다. 보이질 않는다. 뚝방길 아래 낚시터에 세운 차량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하긴 무슨 상관이랴. 계속 달린다. 탁 틔인 시야 저만치 보인다. 반가움이 느껴진다. 처음 만난 이들, 저만치 갔다가 돌아오는 듯하다. 그들을 확인한 순간 안도감과 함께 반가움이 느껴진다. 다행이랄까. 뚝방길 위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일까? 뚝방길 위를 동시간대에 머물렀기 때문일까? 누군가가 반갑다는 기분이 좋다. 계속 달린다.
손짓 발짓 내딛는 발걸음 마다 힘차게 구른다. 잠시 마음을 정리하고 뚝방길을 걸어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달린다.
찰라, 스쳐지나간다.
사는게 힘들다면 놓아주라고. 연연하지 말라고. 필요여부 조차 따지지 말라고. 그저 스쳐지나간 인연을 아쉬워 하지 말라며. 정이 묻어 정을 주메 아픔이 과연 서로에게 이로운지, 과연 내 자신에게 이로운지 되물어보라고. 순간, 눈가를 쥐어짜내니 땀방울이 맺혔다가 흘러내린다. 땀인지 눈물인지 퉁퉁 부은 눈덩이를 하고 해맑게 미소짓는다. 다시 달린다.
걷고 달리고 다시 주차장이 보인다.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한다. 출근하는 차량 뒤로 매연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찰라, 아무 생각조차 없다. 피한다는 생각 뿐. 하긴 뭔들 이와 다를까 마는. 이제 걷는다. 청솔위드팜 코너 전봇대를 돌아서며 찰칵 찰칵 주먹을 얼굴 높이 만큼 들어오리고 찍는다. 장난을 친다. 난 달렸을 뿐인데 어둑해졌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일까. 의지를 불어넣어 손을 흔들메 달렸던 그 여운이 남아서일까. 달리는 중에 스쳐지나간 상념들, 과거, 흔적들, 아픔들, 떠올린 잡스런 생각들, 그리고 마주한 지렁이들.
두 마리 지렁이.
한 마리는 10분의 1 토막난 빨간 몸을 이끌고 뚝방길 위를 반 정도 건너고 있었다. 달리는 발걸음을 피하느라 스쳐 보았다. 정확치 않지만 새빨간 몸뚱이와 기어가는 모양새를 찰라 스치면서 보았기에 지렁이라고 추정한다. 꿈틀 꿈틀 새벽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뚝방길에 초입에 도달했을 때 마주했다. 긴 몸통에 개미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으로. 말라죽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길까 말까 망설이다가 스쳐지나 보냈다. 10분의 1 토막난 지렁이와 말라죽은 지렁이. 살아뭐해 라는 물음 보다는 산 흔적으로 다가온다. 진토가 되어 흩날리게 되는 그 순간, 다시 태어나겠지 한다. 돌고돌아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찰라를 살아가는 우리라고 다를까. 한 순간 순간을 하염없이 보내면서 어떤 감정은 꽉 붙들고 길고 긴 시간을 보낸다. 찰라처럼 살다 죽든 죽다 살아 10분의 1토막이 난 채 뚝방길을 횡단하든 막상 닥친 상황을 맞이함에도 마치 우린 방황을 하메 삶의 이유를 쫓는다. 보람을 쫓는다. 의미를 쫓는다. 아닐꺼야. 이완 다를꺼야. 심지어 환생을 바라메 지금과 다를 것이라며 안도한다. 뭐가 다를까. 다른 건 뭘까. 돈이 지닌 의미는 단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정도임을 알면서도 돈에게 가치를 메긴다. 돈에 좌우된다. 흔들거린다. 돈을 쫓으라고 대물림한다. 그러지 말자. 그렇게 지렁이는 말라죽었다.
살아있다.
뭘 하든 하지 않든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뚝방길을 내려오며 찰라 스쳐지나간 그 감정을 붙들어 잡는다. 죽은 할머니, 죽은 아버지, 어머니의 입장과 마음, 서희, 아이들, 직장, 일과, 산책, 해나와 예티, 정을 주고 준 만큼 붙들린 감정을 스쳐 보낸다. 바랄 것이 없다. 바라지 않는다.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치운다. 흘려듣는다. 바람을 느끼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위치를 인식하려고 한다. 뚝방길에 내려선 '나'를 바라보려 한다. 나는 나다. 흔적일 뿐 과거는 내가 아니다. 아니 내가 맞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를 이룬 건 지금의 나다. 잡아먹히지 마라. 잘못한 일이든 사고친 일이든 지난 과거는 단지 거기에 의미를 둔다. 지난 지금 그건 스쳐지나간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내 땀을 식히는 바람을 느껴봐. 쥐어짠 땀방울이 또르륵 눈가를 흘러내리는 느낌을 말해봐. 뭐가 더 있지. 생각한들 골몰한들 답이 있나.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저 살아갈뿐. 말라죽든 10분의 1토막이 나든. 내 눈에 비친 건 살아있는 지렁이와 죽은 지렁이로부터 얻은 '생존'에의 의지임을. 성호.
... 선후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면서 또다시 바라는 내 자신에게 한참을 나무란다. 지금 이 순간 부는 바람을 느껴보라니까. 또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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