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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세상보기

와이낫 (Why Not?) 시대 : 징조

by 큰바위얼굴. 2022. 10. 20.

Why와 Why Not의 차이를 아는가?

지금까지 우린 '문제' 해결을 위해 살아오면서 Why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일상 중에 Why? Why? Why?를 묻고 그거에 맞는 답을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왜 그런데? 그래서 뭐? 뭐가 문제지? 왜 그럴까? 라는 떠올림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없었거나 약했기 때문에 세우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 혹은 관점으로 보인다는 거지. 그런데,

지금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갖게 되었고,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해 왔던 시대라기 보다는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왕 먹을 것이라면 맛있게 먹고, 분위기까지 좋길 바라게 되었지. 그렇기 때문에 여러 징후들이 나타났다고 봐.

내집마련의 꿈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게 되었고, 월급으로 살아가기는 사실상 일상을 살기에 충분할 뿐. 미래의 어느 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충분할 것이라고 보진 않아 불안감은 계속 쌓여만 가지. 내심 우린 잘 살기를 바라고 잘 살기를 바라는 이면에서 잘 살아가는 기성세대를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긍정적일까?

지난 시대를 넘어오면서 먹고 살기 바쁜 시기에 세웠던 수많은 기둥과 지붕들이 이젠 새로 세우거나 새롭게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져만 갈 꺼야. 자율주행차 만 하더라도 우린 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 석유 기반의 경제를 전기 기반의 경제로 바꾸어 운전대에서 벗어난다는 자유를 상징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운전 이라는 일자리는 사라지고 운전에서 벗어난 운전사들은 그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그 시간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랄 것인가 라는 거지. 놀면 된다 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 그런가. 태어났다면 칼이라도 뽑아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웅심이 있는 자들은 쌓여만 가는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게 될 꺼야. 그로부터 시작된다. Why가 아닌 Why Not? 이라는 대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내심, 우린 바란다.

너만 잘 살면 되겠니? 나도 좀 잘 살아보자. 그런데 현실은 막막하고 자꾸만 차별만 느끼게 되면서 살기가 팍팍하다면, 아니 오히려 살기는 좋아. 그런데 살아가는데 필요한 혹은 누리는 물품들의 값은 오르고 올라서 월급으로 충당하지 못한다면 계속 빈곤하게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안돼, 안되는 구나 라는 마음이 계속 커져만 가겠지.

눌린 건 튀어오르기 마련이다.

아닌 것, 안 되는 것, 기성세대만 누린 것, 나 또한 누리고 싶은 마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룰을 따라가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그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이미 시작되었지. 만들어진, 만들어 놓은 룰과 세상의 틀이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리고 기성세대 또한 이제 바꿔볼까 라는 인식이 증가할 수록 그렇게 형성된 Why Not? 시각은 어느 순간 촛불을 당기게 될 것이고, 이는 단지 정치적인 전복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처럼 기부 라는 용어는 사라질 것이고 다른 대등하고 자연스런 용어가 대신할꺼로 봐. 지금 우린 이를 지칭하여 기본소득으로 접근했던 거로 본다. 가진 자가 나누어주는 시각에서.

중요한 건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인데, 주고받는 혹은 기성세대가 주는 관계로는 이를 풀 수가 없어.

더구나, 그 역할이라는 것이 주어진 자리에서 비롯되었다면 아주 쉽게 쫒겨나고 말꺼야. 기본소득은 아주 작은 시도에 불과해.

사라진 자리 만큼 남아도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가상세계와 스포츠, 여행과 캠핑에 몰두하며 두루 세상을 보며 함께 살아가겠지. 지금 그렇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누린, 누리고 있는 틀이나 원칙들이 나와 맞지 않게 여겨지는 거야. 그러면 어떨 것 같아?

어쩌면 생각만큼 쉽게 '바꾸면 되지' 라고 생각할테고 어느 순간 우린 자동차 보단 인도를 걷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의 의사결정구조, 대통령제, 문제해결과정 등이 새롭게 변모해야 하는 시점을 만나게 될꺼야. 영원한 건 없어. 마치 대통령제는 완벽하게 오래도록 누릴 것이라고 보는 잘못된 시각이 있어서 거기에 편승된 재벌이 영원할 것이라고 보지만, 역사는 말해주잖아. 깊이 있게 뿌리내린 만큼 코로나 처럼 쓰나미는 오게 된다. 극복과정에 있는 지금 세계는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떠도는 치기, 경쟁, 막되먹은 행동, 내 자신을 먼저 위하는 행위들이 드러내놓고 모두의 마음에 전달이 되고 있어.

마치, 미중 갈등이 게임처럼 보이잖아?

그래서 문제야. 그러다 말겠지 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러니까 말야. 이제 변해야 할 때구나. 그 신호로 해석됨이 맞다고 봐. 자, 이제 Why Not? 이라고 외쳐봐.

왜 안돼?

안된다구? 왜?

그건 너를 위한 것일 뿐 우리를 위한 게 아니잖아?

아마 상당히 많은 수의 기존에 만들어 놓은 체계, 제도, 틀, 규정, 룰이 자율(주행) 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미중갈등에서 보인 가깝게 여긴 권력과 명예로부터 별거 없군, 별거 없어 라는 마음이 커질 수록 이 마음은 Why Not? 과 만나게 되어 그러니까 그래서 왜 그런데? 왜 그러냐구? 묻는다.

이는 징조일 뿐. 이미 출발했고 진행되고 있다. 단지 그 속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을 뿐. 곧 다가올 대전환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Why? 가 아닌 Why Not? 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성호.


새벽 5시 방축천 변


출근길 Why Not? 시대에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 풀어본 말
https://youtu.be/SMJhyrUYYgg에 이어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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