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난 싹이 꺽였다가 다시 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서울의 봄은 피었을까?
핀 건가?
집단이 이룬 추구는 옳고 그름 대비 체계를 이루기 마련이니 과거나 지금이나 바른 사람 대비 인기 배우가 나타나서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건 나 또한 그렇고 그런 속에 속하기 때문. 벗어나길 바라는 만큼 사명감이 퇴색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 과연 가치가 있느냐는 이룬 성과를 자기만족에서 바라볼 수 있겠는가가 관건. 아니해도 좋을, 알아보질 못해도 좋을,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바탕에의 접근이 새싹이 되길 바란 만큼 인연이 이어지듯 발전을 거듭할 것이기에 연연하진 말되 그렇다고 끊어낼 요량도 아닌. 다만 알아볼 만한 그 때를 내가 정하는 건 필요하리라. 굳이 굳이 굳이 앞당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볼 줄 아는,
보게 되면 더한 요구나 욕심이 붙는,
그걸 바란 게 아님에도,
말이 앞선 사람이 늘고,
볼 줄 아는 사람이 줄면
이는 내 탓이라기 보다는 그저그런 한 세상.
피곤하다.
노곤하다.
그의 삶에서,
역정과 고난을, 가족의 쓰러짐을 듣게 되니 과연 옳고 그름의 정의가 우선일까? 평화를 이룬 집착과 욕심이 점철된 모습 속 삶에 기댈까? 지친 몸 만큼이나 사그러진 사명감 외에 남은 삶의 의지로 이끌어가는 혹은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에 닿아 시선이 아닌 가치로 메겨지길 기대해본다. 그와 그의 가족된 삶처럼. 안식을 보았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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