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07:42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운동을 하고, 빨래를 한 후 널어놓는다. 내일을 기약하며,
어제는 모악산으로,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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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중에 채널을 고르다보면 취향이 베어나온다. 아마존 새둥지 호텔, 페루 절벽호텔. 떠나고 싶은가?
이도저도 아닌,
중용을 알게 되니 선뜻 나섬이 없이 관조한다.
어제 '살맛나는 세상'을 통해 가르치는 선생의 면을 보았다. 뜻과 보람, 가르치는 삶, 끊임없는 추구, 아버지 조각상 등을 보며 부러웠다. 다만, 그의 삶이요 안착이리니 나 또한 선생이 될 수도 가르치는 삶의 면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오래지않아 속내에 닿게 되니 조금 더 신중해진다. 가르침은 누구를 위함인가? 그를 통한 추구는 바라는 바인가? 또다른 지향이지는 않는가? 민턴과 다른 면이 무엇인가?
한다 라는 건 일어나 아침운동, 생각, 기록, 등산, 활동, 뜻밖의 경험이 진행된 저녁, 경험을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다를 바는 무엇인가?
만족한 휴식을 위한 활동인가?
후회하지 않는 추구인가?
기다리고 있다. 약속한 이를,
과연 다른가?
속리산에서 하나씩 활동 범위를 넓혀 수십가지의 일상을 해내는 그의 생, 과연 살맛나는 세상인가?
그 기반이 부러운가? 성공이 뜻한 바인가? 15년 영업직을 뒤로 하고 고향에서 계곡과 산, 고추농사, 송어, 펜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움에 기꺼움 보다는 버거움이, 오히려 이웃과 아내로 구성된 6명이서 식사하는 모습이 편해보이는 건 이전의 활동 때문인가?
그 자체의 모습 때문인가?
https://meatmarketing.tistory.com/m/7132
https://meatmarketing.tistory.com/m/7114
과연 두 개의 면이 다른 바가 무엇일가?
만족, 안심, 재미... 기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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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개의 면에 같은 바는 무엇인가?
만족, 안심, 재미... 기꺼움...
그래서 같다. 시차와 공간차로 벌어질 세상에서조차 생은 곧 행, 그 자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의미와 존엄, 사랑과 행복은 잘 만들어진 열매라서 행함의 부도덕함이나 부덕함에 상관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올곧음이란 곧 반다급부의 면 또한 함께 있으니 항시 면과 면이 달라지는, 행함에 없이 있어 찰라의 순간 있어 없이 이어지는 걸 바라듯이 어디에도 어느 순간에라도 경계를 세우지 말며, 의심을 지우고, 편안하게 거짓이든 도둑질이든 사기든 바른 말이든 훌륭한 업적이든 구분이 없으니 선함이 곧 추구할 바라는 철학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찰라 행함은 그 자체로 족하다고 본다. 선함이 곧 태초의 시작일까? 없이 있게 되어 악함이 그러하여 끊임없는 수양과 실천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선과 악은 개념, 바뀌는, 변하고, 시대적, 상황적, 관념적 변화를 맞으리니 무변과 유변이 어우러진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보다는 오메가메 생각 차이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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