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
그렇게 눈에 밟혔다. 산책을 나가면 여기저기 코를 킁킁대던 해나와 예티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해나는 늘 앞장서 달려가고, 예티는 뒤에서 주춤거리며 바닥 냄새를 맡는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귀여운지.
줄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방향은 늘 예측할 수 없다. 해나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나를 이리저리 흔들게 하고, 예티는 바닥 냄새를 맡느라 한참 멈춰선다. 내가 그들을 이끄는 건지, 그들이 나를 이끄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산책길. 이런 관계도 나쁘진 않다.
도램마을 10단지를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새벽의 고요를 음미했다. "밖으로 나가자!"라는 말에 해나와 예티가 신나서 줄을 당긴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마자 해나는 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듯하고, 예티는 나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걷는다.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공기가 차갑다. 하지만 하늘은 맑고 별들은 희미하게 빛난다. 어둠 속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들이 새벽의 여명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산책은 늘 그런 숙명을 안고 시작된다. 그저 걷는 것. 끝없이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멈춘다고 해서 그것이 죽음은 아니겠지만, 흐름에 몸을 맡기면 자연스레 나아갈 뿐이다. 강아지들과의 산책은 그 흐름을 함께 걷는 일이었다.
"당신에게 마지막 여행이 되길" 이란 말을 곱씹으며 걸음을 옮긴다. 이 순간은 마치 마지막 여행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일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했지만, 나는 걷는 것이 축복이라고 느꼈다. 강아지들과 함께하는 이 새벽은 일상의 한 조각, 혹은 아주 작은 축복의 한 순간이다.
흐름 속에서 어떤 힘도 모든 걸 통제하지 못한다. 그저 흘러가고 흘러갈 뿐이다. 해나와 예티와 함께한 이 새벽 산책도 마찬가지다. 문을 열고 나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주한 이 시간이 참 좋다.
오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좋다, 참 좋다.
..
그리고, 오후
다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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