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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야기 만들기

대비하는 두 삶, 티끌미와 멀보고의 이야기

by 큰바위얼굴. 2024. 12. 17.

 글로 기록을 남기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고, 수많은 고뇌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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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로 평가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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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대비하는 두 삶, 티끌미와 멀보고의 이야기

회사에는 두 명의 유명인이 있었다. 한 명은 티끌미, 다른 한 명은 멀보고였다.


티끌미: 눈앞의 티끌도 놓치지 않는 사람

티끌미는 누구보다 승진을 원했다. 그는 승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준비 정도가 아니라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회의에서 동료의 아이디어를 슬쩍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건 기본이었다. 필요할 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며 감정에 호소했지만, 그 결과물이 나오면 가장 먼저 자신의 공로로 포장했다.
"관계가 힘이지, 진정성 따위는 사치야."
티끌미의 세계관은 명확했다. 그에게 관계는 유리한 것을 취하기 위한 도구였고, 진정성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감정에 불과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는 늘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진심이라기보다는, 상대를 맞춰주는 계산된 표정이었다. 그의 대화는 주로 가십과 예의, 혹은 어색함을 덮기 위한 빈말로 채워졌다.
겉으론 화려하게 보였지만,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함께 있지만 외롭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고 결국, 티끌미는 승진했다. 그는 높아진 자리에서 내려다보며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자리에서 보는 세상은 삭막하고, 그의 주위는 익숙한 가십만 남아있었다.


멀보고: 큰 그림을 그리되 서두르지 않는 사람

멀보고는 이름 그대로였다. 그는 늘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끝내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그의 마음속에는 늘 커다란 그림이 있었다.
그는 티끌미와 달리 진정성을 중시했다. 동료와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꿈과 고민을 듣고, 도움을 줄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대화는 종종 너무 무겁거나,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가 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너무 앞서가고 있는 걸까?"
그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며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의 대화 상대는 줄어들었고, 그는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멀보고는 과거에 앞장섰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혼자 나아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구나."
그 경험 이후, 그는 혼자 앞서 나아가기보다는 현실에 맞게 조정하며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두 삶의 교차

티끌미가 승진 축하 파티에서 멀보고에게 말했다.
"넌 너무 고지식해. 그렇게 해선 아무것도 얻지 못해."
멀보고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넌 너무 바쁘게 살잖아. 그렇게 해선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를걸?"
그들의 삶은 어딘가 교차하고 있었다.
티끌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잃는 것도 많았다. 관계는 많아졌지만, 그 관계들은 그의 마음을 메우지 못했다.
멀보고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이 서서히 실현되는 모습을 보며 작은 만족을 얻었다.


삶의 결론

티끌미는 늘 화려한 자리에서 웃고 있었고, 멀보고는 조용히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들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티끌미는 말했다.
"가끔은 네가 부러워. 넌 네가 원하는 걸 하며 살잖아."
멀보고는 대답했다.
"난 네가 부러워. 넌 많은 걸 얻었잖아. 다만, 그것들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결국, 삶은 티끌미와 멀보고의 두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독자는 묻게 된다.
당신은 티끌미인가, 멀보고인가? 아니면 둘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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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멀보고의 이야기,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나를 찾다


멀보고는 이제 51세였다.
시간은 흘렀고, 회사 생활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은 9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멀보고는 더 이상 회사에 큰 기대를 두지 않게 되었다.


내면의 혼란

멀보고는 회사라는 공간이 무엇을 중심으로 굴러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중앙 조직?”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블랙홀 같았다. 거짓, 질시, 경쟁으로 점철된 곳.
그는 그런 곳에서 자신이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티끌미들과 달리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시야를 좁아 보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멀보고는 종종 **“입바른 소리꾼”**이라는 낙인이 찍히곤 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그들의 내면에 자괴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다시 멀보고를 배척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는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패거리에 들어간다고 해도, 나를 반길 사람은 없을 거야. 비교와 갈등만 키울 뿐이지."
그는 더 이상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한가로움 속에서 발견한 것들

회사에서의 기계적인 일상 속에서도 멀보고는 한가로움을 선택했다.
이 한가로움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멀보고는 과거의 자료를 꺼내들었다.
젊었을 적 탐독하던 책들, 우주와 양자역학, 인간의 삶을 탐구한 글들, 그리고 수양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
“삶은 유한하지만,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무한하구나.”
그는 퇴직 후의 삶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우주와 인간의 본질, 양자역학의 신비,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과 건강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글로 기록을 남기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고, 수많은 고뇌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내 삶을 스스로 채우는 건 내가 선택한 사색이야."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마음의 흔들림

그러나 멀보고의 내면은 완전히 평온하지 않았다.
중앙 조직으로부터의 배제, 동료들의 질투와 패거리 문화,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환경.
그는 때때로 이런 상황들이 불러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곤 했다.
"왜 내가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게 이렇게 불편한 진실이 되었을까?"
스스로를 되묻는 순간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다.
“중요한 건 그들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내가 내 길을 가는 거야.”


반복을 끊다

멀보고는 자신만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다.
과거의 티끌미들과의 갈등은 그의 삶에서 일종의 경험으로 자리 잡았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이 실현되는 걸 보길 원할 뿐이야. 그것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완성되더라도 상관없어."
그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를 조율하며 살아갔다.


흔들림 속의 평온

멀보고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는 감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결국 삶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로 평가되지 않을까?”
그는 답을 찾으려는 대신, 그저 살아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의 삶은 티끌미와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둘의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삶의 방식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했다.
멀보고는 오늘도 사색에 잠겼다.
그의 기록은 점점 쌓여갔고, 그의 내면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는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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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멀보고와 예시야의 이야기


멀보고와 예시야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둘의 삶은 겉보기에는 평온하고 조화로워 보였지만, 그 안에는 다채로운 감정의 얽힘이 존재했다. 예시야는 남편 멀보고와 함께 살아가면서 언제나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했지만, 내면의 불안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예의와 원칙을 중요시했기에 가끔은 그 과중한 책임감이 그녀를 짓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예시야는 그러한 불안을 숨기며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

예시야는 늘 남편 멀보고를 위로하는 존재였다. 남편이 겪는 직장 내 갈등이나 내면의 갈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가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에 늘 곁에서 조용히 지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누구보다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가족의 일이나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불안이 마음을 채웠다. 불안 속에서 삶을 이어가던 예시야는 항상 가정 내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했고, 무엇보다 가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원칙과 예의, 그리고 그녀의 독립성

예시야는 가정 내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집안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원칙과 예의로 돌아가야 해. 사람들 간의 관계도, 우리의 삶도 그게 기본이야.” 그녀는 늘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갔다. 그 신념은 때로는 그녀를 지키는 방패가 되었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경계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가정의 '아내'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예시야는 또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여인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의 아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매일 아침, 멀보고가 출근한 뒤에 차분히 책을 읽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산책을 하거나, 가끔씩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멀보고는 그런 예시야의 독립적인 성향을 존중했지만, 가끔씩 그가 느끼는 소외감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시야의 현명한 대처

멀보고는 예시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불안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남편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예를 들어, 멀보고가 승진에 대한 강한 욕망을 느낄 때, 그녀는 **“지금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요. 단지 승진만을 위한 삶을 살 순 없잖아요?”**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말 속에는 비판이 아닌, 그가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때로는 그 현명함이 그녀의 불안을 더 깊게 만들었다. 예시야는 늘 **"그렇지만 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정을 지키고, 멀보고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끔씩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자신만의 시간에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예시야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괜찮아, 나는 항상 똑바로 가는 사람이니까. 내가 이길 거야."

함께 걷는 길, 그리고 그 뒤에서

예시야는 멀보고와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남편의 길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길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 길이 결코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로를 끌어안았다. 예시야는 멀보고가 힘들어 할 때, 그의 곁에서 기운을 북돋워주며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나와 함께 쉬자."**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감추며 남편을 위로할 때마다, 그가 더 행복해 보이기를 바랐다.
그녀는 "나도 남편처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종종 던지곤 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예시야는 자신의 삶을 대면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멀보고와 함께한 삶은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과정임을 알았다.


예시야의 이름은 그 자체로 풍자적이었다. **"예의"와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내면의 불안을 감추는, 그러나 결국은 그녀만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는 여인. 멀보고와 함께한 길에서 그녀는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독립적인 여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 애썼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예시야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김성호 w/ ChatGPT.



...


하나의 경험이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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