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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발전연구

칠레産 삼겹살 1㎏ 납품하기까지… 한국 70번 오가며 연구

by 큰바위얼굴. 2013. 12. 30.

반성이 필요하다. 칠레의 조그만 닭 농가가 걸었던 길을, 우리의 대우가 걸었던 길을, 축산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행 사례를 들어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축산업이 살아남으려면 내수시장에 만족하지 말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만 한다. 자중지란할 축산물 유통의 눈을 밖으로 돌리자.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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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産 삼겹살 1㎏ 납품하기까지… 한국 70번 오가며 연구

 

 

조선일보 2013.12.30

칠레 최대 농축산기업 아그로수퍼… 호세 구즈먼 CEO에게 듣는 '칠레 삼겹살의 한국 상륙기'
1999년 마장동 시장 첫 방문,
美·유럽선 값싼 삼겹살 한국선 비싸게 팔려 놀라 "시장 가능성 충분" 판단
자르는 법부터 다시 배워,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게 사료 배합, 품종까지 바꿔…
국내서 팔리는 칠레 豚肉 95%를 공급하게 돼
"韓농가, 내수에 연연 말라",
닭고기 최대 생산국 美에 5배나 많은 닭고기 수출…
글로벌 스탠더드로 무장해 수출 시장 개척해 나가야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기 5년 전인 1999년. 칠레 1위 농축산물 기업인 아그로수퍼의 안드레아스 다카노미야(현 아그로수퍼 일본법인장)씨와 토마스 캄포스 소타(현 유럽·아시아 총괄)씨가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아그로수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 돼지고기·닭고기를 납품해 왔는데, 한국인도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시장조사를 위해 한국에 들른 것이다. 그들이 처음 향한 곳은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글로벌 시장으로서 한국의 가치를 처음 깨달았다. 칠레나 미국·유럽에서는 베이컨 원료로 쓰는, 값싼 부위인 삼겹살이 한국에선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에 놀랐다.

호세 구즈만 CEO에게 아그로수퍼의 성공 비결을 묻자
호세 구즈만 CEO에게 아그로수퍼의 성공 비결을 묻자 "세계로부터 배우고, 항상 마음을 열고, 기회를 찾으라"고 대답했다. / 이명원 기자

한국인 입맛 맞추기

그들은 시장에서 한국 축산물 유통업자들을 만나 한국 시장을 열심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그로수퍼가 배웠던 것은 한국 돼지고기의 맛이 아주 좋다는 것, 그러나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외식업은 납품받는 고기의 품질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아그로수퍼는 운송비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 칠레산 삼겹살을 공급하는 것이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그들은 한국에선 삼겹살에 고기와 지방의 층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겹겹이 쌓이는 것이 상품(上品)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선 사료를 먹이는 방법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이른바 '교차 사료', 즉 지방을 만들어내는 사료와 근육을 만들어내는 사료를 차례로 먹이는 것이다. 그들은 이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회사가 자체 사료 공장을 갖고 있다는 강점을 활용해 사료 배합을 더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아그로수퍼 제품을 취급하는 정창수 CS푸드 대표는 "2002년 이들이 가져온 시제품을 맛봤는데 한국의 상품(上品)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면서 "삼겹살을 한국의 규격에 맞추는 것은 물론, 한국인이 좋아하는 암퇘지 위주로 납품하고, 한국인 입맛에 맞게 품종까지 개량해 납품을 준비해온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그로수퍼였지만, 삼겹살을 자르는 방법부터 한국 소비자에게 맞게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커팅 기계를 전부 한국에서 사갔고, 칠레 직원들을 한국으로 데려와서 자르는 법을 교육하고, 한국 기술자를 칠레로 초빙해서 배웠다. 이후 한국 시장을 맡게 된 토마스 캄포스 씨는 2002년 처음으로 한국 유통업체에 삼겹살 시제품 1kg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까지 그가 칠레와 한국을 오간 횟수가 70차례를 넘었다.

아그로수퍼의 칠레 내 위치

개방을 기회로

이렇게 한국 시장에 들어오게 된 칠레산 삼겹살은 현재 전체 수입 삼겹살의 12%, 국내 돼지고기 총소비량의 3.3%를 공급한다. 칠레 삼겹살의 한국 상륙기는 FTA 시대 한국 농·축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아그로수퍼 호세 구즈먼 CEO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그로수퍼는 1955년 작은 양계장에서 출발해 지금은 칠레 최대 농·축산물 기업이 됐다. 비결이 무엇인가.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차가 커온 과정과 비슷하다. 칠레는 작은 나라다. 작은 나라의 작은 회사였지만 꿈은 원대하게 가졌다. 아그로수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세계시장에 진출해 큰 회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30~40년 전 칠레 정부가 시장을 개방하고 FTA를 추진할 때부터 세계에서 틈새시장을 어떻게 뚫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개척해 왔다.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는 보수적인 재무 관리와 품질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다. 우리는 50년 동안 내수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그로수퍼의 수직 계열화 경영

세계 최대 닭고기 생산국 미국에 닭고기를 수출하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선진국 시장에 많이 파는 비결은?

"우리는 꿈이 있었다. 한국에 처음부터 돼지고기를 수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2004년에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됐는데, 그 5년 전부터 시장조사를 했다. 한국에 가서도 우리는 사무실 안에 있지 않았다. 한국의 거리를 걸어보고, 시장에 가보고, 식당에 가서 한국인들이 돼지고기를 어떻게 먹는지 관찰하고, 그들에게 묻고 배운 것을 노트에 기록했다. 고기와 지방의 비율, 크기, 형태,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연구했다. 칠레와 미국이 FTA를 맺을 때는 닭이 아주 중요한 협상 이슈였다. 칠레에선 미국산 닭고기가 엄청나게 수입될 것을 우려했다. 우리는 거꾸로 미국에 닭고기를 수출해 보자고 생각했다. 남미 축산업계에서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미국과 경쟁한다는 것은 무모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미국이 칠레에 수출하는 것보다 5배나 더 많은 닭고기를 미국에 수출한다. 이런 것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꿈을 꾸는 것을 통해 얻어진다."

―돼지고기 생산에 칠레의 환경이 한국보다 유리한가?

"칠레가 저렴한 비용으로 농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면 완전히 오해다. 칠레는 땅값도, 인건비도 싸지 않다. 칠레는 돼지 사료가 되는 옥수수의 30%, 콩의 100%를 수입한다. 산이 아주 많으며, 농업을 하기에 좋은, 넓은 평원이 없다."

한국 삼겹살도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아그로수퍼는 영세농에서 출발해 기업화했고, 사료 생산부터 축산·도축·가공·유통까지 통합 운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왔다. 한국도 이런 것을 원하고 있지만 잘 안된다.

"한국의 지난 역사를 보면 그 안에 해답이 다 있다. 한국에는 아주 큰 글로벌 회사들이 있다. 이들의 시작을 생각해 보라. 50년 전에는 집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내 쌀가게를 하거나 설탕 공장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남들이 100년 걸려도 못한 것을 40~50년 만에 끝내지 않았나. 그런데 왜 농·축산업에서는 안되나. 긴 여행도 한 발짝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한국 농민들에게 칠레산 삼겹살은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는데, 당신이 한국의 농축산물 업자라면 어떻게 하겠나.

"장기적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면, 30년 전 아그로수퍼가 했던 것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고기 수출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도 돼지고기를 수출한다. 아그로수퍼는 미국 서해안 지역에도 삼겹살을 수출한다. 한국 양돈 농가가 내수에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아그로수퍼

1955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인근의 한 작은 양계장에서 출발, 지난해 매출 2조4000억원을 올린 칠레 최대 농축산 업체. 영업이익률은 17%에 이른다. 세계 곳곳에서 돼지·닭고기·칠면조·연어·가공육 등을 생산해 직접 판매한다. 한국은 돼지고기를 한 해 100만t 소비하는데, 이 가운데 매년 20만~30만t을 수입한다. 칠레산은 수입 삼겹살의 12%, 국내 삼겹살 총소비량의 3.3%를 공급한다. 국내에서 팔리는 칠레산 돼지고기의 95%를 아그로수퍼에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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